▲비오는 파리의 거리.
신유준
프랑스에서 10년 넘게 체류한 상미(리옹 2대학·인지과학 석사 1)씨는 "한국인의 생각이 스펙트럼 4~6 정도에 몰려있고 양 끝에 소수가 있다면, 프랑스인은 1~10까지 고루 퍼져"있다고 했다. 프랑스인은 공부가 정말 하고픈 사람만 대학에 가고, 이후에도 길이 아닌 거 같으면 과감히 전공을 바꾸고 그만둔다. 진로에 관해서 자유롭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전진(파리 어학연수생·파리대학 철학과 신입학 준비 중)씨는 한국 고등학생 시절을 "집행유예"로 떠올린다. 자아실현을 위해 방송·강연 참여, 청소년 토론회 기획, 학생대표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수험생 신분인 한 "도망치듯 꿈을 꾸는 것"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절망에 빠진 전진씨를 일으켜 세운 게 인문학이었다.
인문학적 앎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가슴, 체험, 직관, 예술, 종교로 다가가는 앎이다. 정해진 '지식'을 주입하는 한국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를 선택했다. 전진씨는 자신을 유토피아를 찾아 나선 '도망자'가 아닌 '자유인'으로 소개한다. "스스로 자신의 결정에 대해 타인의 납득과 동정심을 구걸"해서는 안 되며, 그저 "스스로를 더 잘 발견하거나 아니거나"일 뿐이고 프랑스도 그런 선택 중 하나라는 뜻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선 대학생이 기성세대로부터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면 된다'(≒'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획일화된 유토피아를 주입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고학력 대학생들이 자기계발론에 빠지며 자기 파괴적·공동체 파괴적이 되어가는 건 낯선 광경이 아니다(관련 기사 :
수시충, 편입충, 분캠충... '벌레의 전쟁' 벌이는 20대).
한국 사회가 학생의 개성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학력과 간판에 따라 '차별'을 받게 된다는 것. 이러한 부조리들이 '무엇이 대학 졸업장에 목매게 만드나'라는 첫 번째 질문의 답이, '사회적 무시'에 있다는 걸 환기한다.
#3. '낮은 등록금', '높은 근속 연수'의 이유상미씨가 보여준 프랑스 고등교육 연구부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2012년에 총 287억 유로(약 38조513억 원)를 고등교육에 지출했다. 이는 고등교육 비용의 70%를 충당하는 규모이며, 지난 30년간 50%가 향상되는 추세다. 프랑스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생 비자를 받은 외국인 학생에게는 주택 보조금도 지급한다.
아영(파리 2대학·경영경제 학사 1)씨도 등록금을 1년에 한국 돈 25만 원 정도만 내고, 생활비는 방값을 포함해 월 100만 원을 쓴다. 프랑스어를 잘하면(결코 쉽지는 않다) 아르바이트도 구할 수 있다. 외국인 학생들은 연간 1000시간에 조금 못 미치는 노동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최저 시급이 10유로(약 1만3629원) 안팎이므로 스스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상미씨도 주당 16시간 일하며 550유로(약 73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