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차노에서 만난 도를 믿을 것 같은 요가선생님

[맞벌이 가족 리씨네 여행에세이 40] 이탈리아 볼차노

등록 2016.03.03 10:10수정 2016.03.0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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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차노로 가는 동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매우 많이 만났다. ⓒ 이성애


#. 자전거 타기

이탈리아 캠핑장은 우리가 지나온 다른 곳들에 비해 운영이 섬세하다. 와이파이 사용 시간 책정도 30분, 1시간, 2시간 등으로 나누었고 이용료는 우리가 간 곳 중 단연 최고 비싸다. 분명 자전거도 대여의 형식일 것이며 가격이 싸진 않을 것 같았는데 직원이 보관소 문을 열어주며 그냥 골라 타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나는 플라스틱 유아용 좌석이 달리기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모두 아는 평범한 모양으로 뒤에 사람을  태울 수 있으나 덜컹거릴 때마다 허벅지가 심하게 아파오는 그런 것이었기에 집에 들러 방석 삼아 올려놓을 베개를 챙겨 왔다.


분명 옆집 아들이 정보를 제공하기로 호텔 옆길로 돌아 조금만 나가면 자전거 도로가 쫘악 펼쳐질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두세 번 가량 남의 사과밭으로 들어가다 핸들을 돌려야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쫒아갔다. 우리 캠핑장이 있는 곳은 바로 뒤에 도로가 있고 그 뒤론 급격히 높아지는 산이 있어 만약 내가 선 자리에서 산꼭대기를 바라보려면 뒷목에 주름이 크게 한 줄 생기는 각도였다.

우린 햇빛이 많이 남아 있는 쪽에서 산그늘이 있는 반대쪽 강을 향해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다. 물놀이를 하고 난 후 '놀고만 있어도 지능이 높아질 것 같은 놀이터'에 있던 아이들을 곧장 자전거로 태워온 터라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낑낑댔다. 50m 앞에 마트 표시가 있어 빵이라도 사러 간 남편은 "휴가 기간이래, 15일간"이라며 다시 돌아왔다. 어쩔 수 없다. 날도 어두워지려 하고 배도 고프고 멀리 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그녀가 우리에게로 왔다. 자전거를 타고. 어수선한 복장에 브래지어 착용을 생략한 채.

#. 도를 믿으실 것 같은 요가 선생님

환히 웃었다. 정말 환히. 여행을 하고 나서 낯선 이가 우릴 향해 그렇게 환하게 웃어준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상륙한 패션으로 내가 이름 짓기를 일명 '똥 싸서 뭉갠 후 쳐진 바지' , '알라딘이 입었을 바지'를 입고 있었고 민소매에 노브라, 목에 머플러 하나, 머리에 머플러 하나, 아랍 느낌의 가방, 보조 가방을 치렁치렁 매달고 있었다. 헷갈렸다. 집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오늘 노숙하러 나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곳 현지인의 평균적인 눈빛과 차림은 아닌 듯하고. 

아! 그러고 보니 그녀는 처음에 우리에게 이 근처에 풀장이 어디 있는지 물었었다. 우리 캠핑장도 잘 찾아 가지 못할 외국여행자가 이 동네에 풀장이 어디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고 그녀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볼차노'에 산다고 했다. 자전거 길이 잘 되어 있어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곳에 갈 수 있다 했다. 이탈리아 북부 중앙에 해당하는 이곳은 어려서부터 이탈리아어, 독일어를 배우며 요즘엔 영어까지 배운다고 했다.


그래선지 그녀는 타국의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녀의 영어는 유창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어나 일본어와 비슷한지 물었고 명칭에 대해서도 물었다. 점점 경계하는 촉수를 세워가는 나에 비해 남편은 핸드폰을 열어 한글 자판을 보여주며 모음과 자음이 어떻게 조합하여 글자가 되는지 보여주었다. 그녀는 한글을 보자마자, 정말 보자마자 아름답다고 했다. 그녀가 문자를 보고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짧았기에 '아름답다'는 그녀의 말이 그다지 진정성 있어 보이진 않았다. 내가 너무 야박한 사람이다.

그 다음은 요가였다. 느닷없이 요가를 아냐고 한다. 요가가 무엇인가. 우리 구역에 있는 인도란 나라에서 세계 곳곳으로 전파된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녀는 혼자 요가를 배웠고 지금은 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친다고 했다. 그리고 좁은 도로로부터 자전거도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삼거리에서 그녀는 요가를 시작했다. 현과 쭈에게 함께 따라 하길 권했고 남편에겐 통역을 부탁했다. "나무가 되고 싶니?"라고 그녀가 물은 후 남편이 한국말로 말해주었을 때 현은 전혀 고민도 않고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웃었고 현의 대답은 중요치 않다는 듯 이미 나무 동작에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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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 이성애


이제 해는 져서 옆에 흐르는 강과 함께 우린 모두 산그늘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남편이 나무 자세를 취할 때 난 정말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이었다. 요가 동작은 동물의 움직임에서 본떴다는 그녀의 말에 난 조금도 주저함 없이 "고양이"라고 말했고 그녀는 선생님처럼 눈빛으로 내 머릴 쓰다듬어주었다.

그때 이탈리아 현지인 부부가 산책을 하며 우리를 힐끗 보곤 지나갔다.  난 여기서 상황이 종료되길 바랐지만 그녀는 이미 바닥 가까이 엉덩일 붙이고 고양이 자세에 들어갔다. 정말 압권은 "야옹"이란 소리를 낼 때였는데 이 소리를 뒤통수로 들은 이탈리아 현지인 부부 중 남편은 항복한다는 제스처처럼 양 손을 좌, 우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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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또 무엇일까? ⓒ 이성애


물론 발랄한 남편은 말릴 새도 없이 바닥에 한 마리 고양이가 되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터덜"이라고 하자 남편은 "아~ 거북이, 터들" 하며 아는 척을 했다. 이번에 그녀의 눈빛은 남편의 머릴 쓰다듬었다. 거북이까지 취한 후 그녀는 여기까지 하자는 듯한 얼굴빛을 띠며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의외의 말을 했다. 지금 우린 여기서 헤어지지만 또 언제, 어디선가 예기치 않게 만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이곳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그 느낌이 아니었고 목소리는 매우 느렸기에 난 그녀가 말하는 의미가 동양의 사상과 맥이 닿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의미는 동양의 사상인 것 같다 했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부처의 가르침 같다고 했더니 또 고개를 끄덕였다. 동양인은 모두 불자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어쩐지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한 후 인사를 하고 약 8개 정도의 낱자로 만들어 진 듯한, 낯선 언어를 말한 후 그렇게 북쪽 볼차노로 갔다.

서양인이 동양의 사상에 빠지면 저런 눈빛과 느낌을 갖는 것인지 문득 궁금했다. 
덧붙이는 글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리씨네 여행기 #맞벌이가족여행 #유럽캠핑 #이탈리아 #볼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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