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끝난 필리버스터, 의미 되새겨야

등록 2016.03.03 08:15수정 2016.03.0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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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시간. 근 10여 일을 끌어온 필리버스터 정국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야권에서 수십명의 의원들이 참여한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의 부당함과 위험성을 알리자는 애초의 취지를 넘어 현재의 정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기회를 국민들에게 제공하였고, 이는 정말 오랫만에 시민들의 정치 참여 축제를 만들어냈다. 의회에서 고립되었던 야당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불리는 필리버스터가 단순한 여론환기라는 애초의 목적을 넘어서 전체 시민들에게 야당이 더 가깝게 다가가고 동시에 자신들의 투쟁을 알려 공감을 얻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민들에게 정치축제로 거듭난 필리버스터, 그러나 마무리가 아쉬었다

그러나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주장처럼, 필리버스터라는 호기에도 불구하고 마무리가 엉망으로 끝났다는 데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애초 팟캐스트에서 더민주의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밝혔듯이 이미 준비중이었던 제대로 된 출구전략이 별다른 잡음없이 시행되어 정말 오랫만에 타오른 시민들의 정치참여 열기를 선거로 승화시킬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이게 엉망이 된 것이다.

2월을 꼬박 넘겨 3.1절이라는 뜻깊은 시간으로 넘어가던 도중, 필리버스터에 열광하던 더민주 소속 의원들과 지지층들은 모두 중단소식을 뜬금없이 종편을 통해서 접해야만 했다. 이유는 바로 '여론의 역풍'을 우려했다는것. 당연히 며칠간 야당 의원들의 주장과 진정성에 감동하고 동조하던 지지층들과 시청자들은 한순간에 소위 말하는 '멘붕'에 빠져야 했다. 정작 지지층은 열광하는데 상대진영의 여론을 우려해 자당 지지층의 열망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니 당황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소통조차 없이 한순간에 백기투항하듯 끝날뻔

문제는 소위 말하는 '모양새'였다. 애초에 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위한 소수정당의 최소한의 절규였고 한국 국회법상 회기가 끝나는 3월 10일 이후에는 무슨 짓을 해도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많은 의원들이 언급해 상당수의 지지층들이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적어도 더민주 지지층 및 시청자들은 시민들의 정치참여 열망을 선거로 승화시킬 수 있는 품격있는 후퇴와 명분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3.1절로 넘어가는 야밤에, 최소한의 소통절차 없이 당지도부에서 일방적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했다는 결정이, 종편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 전까지 야간의총을 마치고 귀가하던 의원들이 이야기했던 '필리버스터 지속'이라는 말이 거짓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적에게 목숨 걸고 싸우다가 뜬금없이 백기투항해버린 형국이 된 것이었는데 문제는 이 결정이 소속 의원들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수많은 지지층들이 SNS로 문의했을 때도 더민주 소속 의원들은 '지속이다' '아니다'라면서 명확히 확인을 해주지 못하였고 이 지점에서 더민주는 정작 소속 의원들과 지도부 간의 교감이나 당내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난맥상을 노출했다. 정작 자당의원들과 지도부 간의 교감조차 엉망인 것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내부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당연히 이부분에 대한 강한 비판과 비난여론이 일어야 했다. 중단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이 지지층을 배신한 셈이다.

총선이 코앞, 내부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후 오해와 섣부른 행동이 중첩되어 벌어진 일임이 모두 드러났다. 최초 필리버스터 지속과 중단을 논의하던 더민주 야간의총에서는 최종결정을 비대위에 일임하였고, 이에따라 더민주 지도부에서는 긴급하게 김종인 대표주재하에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이 와중에 중단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결정이 이루어진 후 일사분란하게 당내 의원들과 지지층에게 설득과 소통작업을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소식이 당원들이나 의원들보다 먼저 언론에 터져나왔다는 점이다.

당시 비대위에 참여하였던 박영선 의원은 중단결정이 내려진 직후 연합뉴스를 통해 이를 공식화하였고 이는 그 전에 필히 선행되어야할 지지층과의 소통 과정이나 의원들과의 연락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한 명의 비대위원이 먼저 필리버스터 중단이라는 엄중한 소식을 언론에 노출시켜 내부적으로 준비중이던 출구 전략과 당원과 지지층의 이해를 구해야할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야밤에 전체 지지층이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이는 선거가 코앞이라는 점에서 당내 기강문제를 제기할수밖에 없게 만든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와 선거를 향해 모두가 전력질주를 해야할 시점에 정작 비대위원 한명의 돌발적인 행동이 당전체의 운영과 전략에 있어서 커다란 파열음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내의 기강을 바로잡기위해서라도 이러한 실수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는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것이고 실제로도 박영선 의원에 대한 징계와 사과 요구가 SNS를 비롯한 더민주 당내 게시판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일부 징계 요구는 서명이 800명을 넘어선 상태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필리버스터, 이종걸 원내대표가 살렸다

사실 이종걸 원내대표 또한 국민의당의 분당 이전까지 비노세력의 대표주자로서 비판을 받아왔던 인물이었다. 40여 일에 달하는 당무 거부로 더민주 지지층 내부에서는 탈당 1순위로 꼽히며 곱지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종걸 원내대표는 스스로 주장해서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던 필리버스터 마지막에 스스로 방점을 찍음으로써 더민주 지지층 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시민들이 열광하며 참여하던 필리버스터가 더민주 지도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멈춰지는 모양새가 되면서 지지층 내에서 강한 비판이 일자 스스로 마지막 주자로 나서 무려 12시간 이상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서 눈물로서 지지를 호소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진정성 있는 토론과 자세에 실망하였던 지지층이 다시금 지지를 보내면서 이전에는 엄청나게 비판을 하던 이들도 최소한 그 진정성만큼은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성급한 중단 결정과 매끄럽지 않은 중단과정으로 8일간 이어졌던 시민들의 정치참여 축제화된 필리버스터가 어색하게 끝날 위기에 처하자 원내대표가 스스로 단상에 올라 12시간이라는 한국 최장시간동안의 필리버스터를 진행함으로써 테러방지법의 부당함과 더민주의 진정성을 호소하는것을 넘어 자칫 엉망으로 끝날 뻔한 필리버스터의 마지막을 최대한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란 감성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12시간이 넘는 토론과 필리버스터 참여 자세란 결국 더민주에 실망하였던 이들을 되돌리는데 있어서 가장 유효한 무기라 할수 있을 것이다.

더민주에 남은 과제는 신상필벌과 체제정비

이제 필리버스터가 끝난 이상 더민주에게 남은 과제는 내부의 기강 확립과 체제정비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막지 못한 이상 결국 남은 것은 총선대승을 통해 테러방지법(을 빙자한 사실상의 국민사찰법)을 무력화시키거나 개정시키는 것만이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는 실망한 지지층의 이탈을 최소화하고 범야권 지지층을 넘어 전체 무당층 국민을 끌어오기 위해서라도 국민의당과의 분당을 감수하면서까지 추구하였던 당내 기강 확립이 제대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오버랩되었던 과거의 무력한 야당의 모습으로는 절대 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12월의 분당과정에도 변함없이 더민주에게 쏠렸던 지지는 내부 기강 확립과 야당의 선명성 강화에 대한 기대였고, 따라서 이러한 기대를 저버린다면 마지막 대안이라할 수 있는 현재의 지도부에 실망한 더민주 지지층들은 절망에 빠져 정치를 외면할 가능성마저 있다. 실제로 2007년 당시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MB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우려가 아닐것이다.

그러나 현재 더민주는 당의 결정과정에 대한 실수를 원인 제공자 외에 애꿎은 이들이 지고 있다. 잘못에 대한 진지한 반성없이 정작 필리버스터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던 초선 비례 의원들이나 아니면 작년에 영입되었던 손혜원 홍보위원장이나 표창원 교수 같은 신규 영입인사들이 실수에 대한 사과를 표하며 비판여론을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는것이다. 심지어 이 때문에 이종걸 원내대표는 12시간이 넘도록 필리버스터를 진행해야 했으니 이번 사태의 책임자에 대한 제대로 된 신상필벌은 더민주에 꼭 필요할 것이며 나아가 현 지도부를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한국 정치발전 실감한 계기. 이 의의를 살려야

어쨌건 10여일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궈왔던 필리버스터는 끝이 났다. 평소 1%도 안되던 시청률을 보이던 국회방송의 시청률은 지상파 MBC를 넘어서 8%를 찍었고 유튜브 중계방송 팩트TV 채널은 누적 시청자 수 600만을 넘겼다. 이 외에도 오마이TV나 다음TV팟등, 여타 다른 매체를 통해 국회방송과 필리버스터를 시청했던 시민들까지 따지자면 이번 필리버스터는 한국 의회 민주주의의 끝을 보여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평일 밤에도 필리버스터 시청율은 유튜브 한개 채널에서만 평균 2만 명이상을 유지했다).

미국처럼 했던 사람이 또 하거나 주제와 상관없는 자유주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개의 법과 관련된 이슈만으로도 전문적인 해설과 주장이 펼쳐지고 품격있는 토론이 진행되며 개개인의 참여 의원들이 수시간, 어떤 이는 10시간 이상 주장을 펼쳤다는 점에서 이번 필리버스터란 단순한 의사진행 방해를 넘어서 한국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인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토론하고 부당함을 논했다는 점에서 이는 한국민주주의의 꽃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평해도 결코 박한 평가가 아닐 것이다.

이제 비단 더민주뿐 아니라 전체 야권은 이러한 시민들의 정치참여 욕구를 확인한 이상 시민들의 열망을 현실화고 나아가 그 의의를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실현해 나가는 게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이다. 시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를 이루기 위한 정치에 이전처럼 그리고 이번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최선을 다한다면 한국 민주정치의 끝을 체험한 시민들은 결코 이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모든 야당 소속 의원들과 나아가 한국 정치의 발전을 체험하고 여기에 함께한 모든 시민들과 국민들께 감사와 경의를 바친다. 비록 테러방지법 통과를 허용했다 할지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발전을 목격했다는 점에서 결코 이 필리버스터는 역사의 한 순간으로서 평가받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필리버스터 #이종걸 #김종인 #민주주의 #테러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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