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개표 영상 무단 폐기' 논란일자 편람 고쳤다

18대 대선 개표 영상 무단 폐기 의혹...뒤늦게 관련 편람 내용 고쳐

등록 2016.03.06 19:41수정 2016.03.0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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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가 각 지역 선관위에게 18대 대선 개표 당시 개표의 전 과정을 촬영케 한 뒤 그 영상의 보존 관리를 방치하다가 무단 폐기 논란이 일자 올해 초 개정한 편람에서 관련 지침을 고쳤음이 확인됐다.

중앙선관위는 2006년 8월 "공직선거 법정사무편람"을 개정해 "개표진행 전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토록 하는 지침을 넣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개표진행전반에 대하여 비디오를 촬영, 질서문란 행위 대처 및 향후 각종 사건, 사고에 증거자료로 활용토록 함"이라고 적혀 있다.

각 지역 선관위는 편람의 이 지침에 따라 18대 대선 당시 개표장에 CCTV나 캠코더, 고정식 비디오 카메라 등을 설치해 개표의 전 과정을 촬영하였다. 기자는 이 사실을 알고서 대선 개표가 규정에 따라 제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하고자 여수를 비롯한 전남 7곳의 대선 개표영상에 대해 지난해 1월 전남도선관위에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a 선관위 직원의 개표장 촬영 6.4 지방선거 당시 캠코더로 개표장을 촬영하는 여수선관위 직원

선관위 직원의 개표장 촬영 6.4 지방선거 당시 캠코더로 개표장을 촬영하는 여수선관위 직원 ⓒ 정병진


하지만 전남도선관위는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영상 공개를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는 중앙선관위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이 나서야 마지못해 목포선관위 영상만을 공개하였다. 나머지 지역 6곳 선관위 중 한 곳은 개표영상을 촬영하지 않았고, 다섯 곳은 유실 또는 폐기되어 공개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이에 기자는 전국 252곳 지역선관위를 대상으로 대선 개표영상을 정보공개청구하였고, 그 중에 27곳(10.7%)만 개표 영상의 일부 혹은 전부를 보관하다가 공개하였다. 대부분의 선관위는 편람의 지침에 따라 개표 영상을 촬영하였으나 '보관하라'는 지침이 없어 유실, 폐기하였다고 밝혔다.

18대 대선 이후 '부정개표'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고 그때마다 선관위는 개표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강변해왔다. 그런데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개표 영상의 공개를 요구했더니 대부분의 선관위가 보유하지 않은 상태였다.

공공기록물법에 의하면 국가 기관이 시청각기록물을 생산한 경우 '공공기록물'로 등재해 보존연한에 따라 보존하도록 규정한다. 만일 담당 공무원이 공공 기록물을 '무단 파기'하면 7년 이하의 징역 3천 만 원 이하의 벌금, '중과실로 멸실'하면 3년 이하의 징역, 2천 만원 이하의 벌금의 처벌을 받게 돼 있다(공공기록물법 50조, 51조).


또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 운영제한'(제25조)에서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경우"와 "범죄의 예방 및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CCTV의 설치를 허용하지만 그 경우에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내판 설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개인정보 처리의 목적과 보유기간" 등 "개인정보 처리 방침의 수립 및 공개"(제30조)도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18대 대선 당시 선관위의 '공직선거절차사무편람'에는 이런 규정에 따라 개표 영상을 촬영하고 보존하라는 지침이 들어 있지 않았다. 기자는 각 지역 선관위가 공공기록물법을 위반하였다고 보고, 관련 내용을 토대로 작년 8월 선관위를 검찰에 고발하였고 이 사건은 현재 재항고가 진행 중이다.


a 개표영상 촬영 지침 공직선거절차사무편람 764쪽

개표영상 촬영 지침 공직선거절차사무편람 764쪽 ⓒ 정병진


그런데 중앙선관위는 2016년 1월 개정한 '공직선거절차사무편람'에서 관련 내용을 고쳤음이 드러났다. 우선 종전 "개표진행전반에 대하여" 촬영하라는 지침을 "개표소 질서문란 행위 대처 및 각종 사건 사고 발생 시에 증거 자료 활용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촬영토록 바꿨다.

더욱 중요한 변경 사항은 그 다음 내용이다. "비디오 카메라 녹화물 등은 제1장 제5절 2. 가. 선거관계 서류의 보관, 관리, 폐기에 따라 처리"라는 문구가 새롭게 들어갔다. 이는 개표장 촬영 영상을 공직선거법 제186조(투표지, 개표록 및 선거록 등의 보관) 규정에 따라 처리하라는 지침이고 선관위의 개표장 촬영 영상을 개표자료로 본다는 의미다. 한편 이 법령에 의하면 개표 관련 모든 자료는 '당선인의 임기 중까지'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다.

선관위의 개정 편람에는 비디오 카메라 등을 설치 운용하는 경우 "건물 출입구 또는 정문, 안내 데스크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사람들이 쉽게 판독할 수 있도록" 안내문을 부착하라는 내용도 신설되었다. 개표장의 CCTV나 비디오 카메라 설치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되지 않도록 이제야 바꾼 것이다.

이로써 선관위는 'CCTV나 비디오 카메라로 개표장 촬영'을 하면서도 관련 법령(공공기록물법, 개인정보보호법)의 저촉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 보지 않고 주먹구구식 행정을 펴다가 문제가 되자 뒤늦게 고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선 개표영상 #공직선거절차사무편람 #공공기록물법 #개인정보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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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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