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이 3500개나 되는 우물, 영화에 나올 만하네

[북인도 라자 문화기행 ⑩] 폐허로 남았지만 가치 있는 우물 찬드 바오리

등록 2016.03.09 10:14수정 2016.03.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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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테푸르 시크리의 조드 바이 궁
파테푸르 시크리의 조드 바이 궁이상기

아그라(Agra)는 자이푸르에서 동쪽으로 230㎞ 떨어져 있다. 자이푸르에서 아그라로 가려면 11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 방향으로 가야 한다. 중간에 비교적 크고 중요한 도시로 다우사(Dausa), 바라트푸르(Bharatpur),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r Sikri)가 있다. 다우사는 자이푸르 동쪽 55㎞ 지점에 있는 도시로, 인구가 6만 정도 된다. 바라트푸르는 라자스탄 주의 가장 동쪽에 있는 도시로, 자이푸르에서 178㎞ 떨어져 있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우타 프라데시 주의 서쪽 관문으로, 한때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우리는 이곳 파테푸르 시크리를 보고 아그라로 갈 것이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1569년 무굴제국 황제 악바르의 명령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571년 수도를 아그라로부터 37㎞ 떨어진 파테푸르 시크리로 옮겼다. 그러나 도시에 수자원이 부족해서 1585년 수도를 일시적으로 라호르(Lahore)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아그라성
아그라성이상기

무굴제국의 수도는 1598년 다시 아그라로 돌아왔고, 1648년까지 수도로 역할을 했다. 당시 황제였던 샤자한은 수도를 다시 델리로 옮겼고, 무굴제국이 망하는 1857년까지 델리가 수도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파테푸르 시크리와 라호르는 일시적인 수도였고, 아그라는 100년 수도, 델리는 200년 수도였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라호르를 제외한 무굴제국의 수도를 방문할 수 있었고, 그 흔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계단식 우물이 있는 찬드 바오리 

 하샤드 마타 사원
하샤드 마타 사원이상기

버스가 기르다푸라(Girdharpura)라는 작은 도시에 이르자 25번 국도와 교차한다. 25번 국도는 북쪽으로 알와르(Alwar)를 거쳐 델리 남쪽 구르가온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북쪽으로 아바네리(Abhaneri)를 찾아간다. 아바네리는 자이푸르에서 95㎞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아바네리는 계단식 우물인 찬드 바오리(Chand Baori)와 힌두교 사원인 하샤드 마타(Harshad Mata)로 유명하다.

찬드 바오리에 가기 위해서는 방강가(Banganga)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런데 건기여서 그런지 강에 물이 없다. 강을 건넌 다음 조금 가다 우회전해 아바네리 길로 들어선다. 이 길은 정말 시골길이다. 마을 입구에서 차를 내린 우리는 찬드 바오리를 찾아간다. 중간에 하샤드 마타 사원을 만난다. 하샤드 마타는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신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사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사원의 앵무새와 비둘기
사원의 앵무새와 비둘기이상기

그리고 비둘기와 앵무새들이 사원에서 놀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이를 먹고 있다. 이곳 인도에서는 새와 소 같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게 일반적이다. 보시라는 측면도 있고, 공존이라는 개념도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인도의 동물들은 행복한 편이다. 그렇게 생각해선지 비둘기와 앵무새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으나 힌두교 신자가 아닌 경우 제재가 있어 포기한다.

찬드 바오리 입구에는 2010년 인도 고고학 연구소에서 설치한 안내 간판이 있다. 그 내용을 보니 이 계단식 우물은 8~9세기 이곳 아바네리 지역을 통치했던 니쿰바(Nikumbha) 왕조의 찬다(Chanda) 왕에 의해 건설되었다. 깊이가 19.5m나 되는 사각형 계단식 우물로, 입구가 북쪽에 있다. 우물 북쪽에는 왕의 숙소 겸 공연장이 있고, 동서남쪽으로 계단이 있어 그 계단을 통해 우물로 내려갈 수 있다.


 찬드 바오리의 계단식 우물 부분
찬드 바오리의 계단식 우물 부분이상기

그렇다면 찬드 바오리는 우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왕과 백성이 소통하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나중에 우물 북쪽에 만들어진 작은 궁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왕궁은 5층으로 되어 있으며, 전면에 발코니와 테라스가 있는 전형적인 힌두 양식이다. 찬드 바오리는 구자라트(Gujarat)주 파탄(Patan)에 있는 계단식 우물 라니키밥(Rani-ki-Vav)과 함께 인도에서 가장 유명하다.  

찬드 바오리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


찬드 바오리 북쪽으로 들어간 우리는 먼저 우물의 동쪽에서 시작해 남쪽, 서쪽 방향으로 한 바퀴 돈다. 찬드 바오리는 계단이 19층, 층을 연결하는 작은 계단이 3500개나 되는 우물로, 계절에 따라 수위가 높아지고 낮아진다. 지금은 건기라 수위가 최저점으로 내려갔고, 사람들이 물을 사용하지 않아 녹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위 아래로도 깊이가 10m가 넘으니, 땅바닥까지 깊이는 30m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찬드 바오리의 궁전 부분
찬드 바오리의 궁전 부분이상기

나는 계단을 따라 철책이 처져 있는 곳까지 내려가 본다. 철책이 없다면 수위 가까이까지 내려갈 수 있다. 그곳에서 보니 우물 북쪽으로 신전 형태의 벽돌 기둥을 쌓고, 중간 중간 양각으로 장식을 했다. 그 위로 왕궁 형식의 5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건물 가운데 1층과 3층에 아케이드 형식의 현관을 만들어, 그곳에서 우물과 남쪽 방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우물은 백성들에게 물을 공급해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왕족이 물가에서 피서를 하거나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물이 주변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했을 것이고, 또 이 물을 이용 샤워나 목욕 같은 것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물 내부에 틀림없이 목욕시설이 있을 것인데,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니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800년 전후 이런 시설을 만든 사람이 찬다왕이라고 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찬다 찬드라라는 이름으로 보아 달신을 숭배하던 종족의 수장 정도로 상상해 본다.

 힌두교 신상
힌두교 신상이상기

 기둥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
기둥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이상기

다행히 우물 밖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 조각들이 상당수 남아 있어 니쿰바 왕조와 찬드왕 시대의 문화와 사회를 유추해본다. 니쿰바 왕조는 8세기 라자스탄을 중심으로 북서부 인도를 지배한 구르자라-프라티하라(Gurjara-Pratihara) 왕조의 한 분파로 보인다. 이들은 찬다왕 때 방강가강을 중심으로 문화를 번성시켰으며, 찬드 바오리 같은 건축을 통해 당시의 문화와 예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찬드 바오리에서는 기하학적 형태의 게단, 우물 밖에 남아 있는 벽감과 기둥의  조각, 신상 등에 주목해야 한다.

천상의 여인 압사라, 물동이를 든 강가여신, 비쉬누의 화신으로 보이는 신상 등이 눈에 띈다. 또 코끼리 형상을 한 가네샤도 보인다. 신상은 아니지만 기둥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도 그 기교와 아름다움이 정말 대단하다. 이들 조각은 인도 중세 지방 정권의 예술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예술적 전통은 10세기 카주라호를 수도로 번성했던 찬델라 왕조에 전해졌다.   

찬드 바오리가 영화 속 배경이 된 이야기

 영화의 배경이 된 찬드 바오리
영화의 배경이 된 찬드 바오리이상기

이곳 찬드 바오리는 여러 편 영화의 배경이 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중 가장 유명한 영화가 <정말 이국적인 메리골드 호텔>이다. 2012년 존 메이든(John Madden)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영국의 은퇴자들이 인도의 호텔에서 살며 겪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자이푸르, 우다이푸르 같은 라자스탄 주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대중적으로도 성공해서 2015년 속편이 제작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자이푸르의 시티 팰리스와 그 주변 시장이다. 찬드 바오리는 호텔 지배인인 소니 카포르(Sonny Kapoor)와 콜 센터 직원인 수자이나(Susaina)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이 영화에서는 암베르성도 나오고, 우다이푸르 피촐라(Pichola) 호수에 있는 호수 궁전도 나온다. 이곳은 현재 인도에서 가장 낭만적인 호텔로 알려져 있다. <정말 이국적인 메리골드 호텔>은 이처럼 가장 인도적인 장소를 찾아 영화를 만들어 성공할 수 있었다.  

파테푸르 시크리로 가는 길

 심벌즈를 치고 있는 생쥐
심벌즈를 치고 있는 생쥐이상기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파테푸르 시크리다. 아바네리에서 약 110㎞쯤 떨어진 곳이다. 그래서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 인도의 휴게소는 대개 고속도로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를 벗어나 있다. 이곳에서 기념품도 사고 화장실에도 가곤 한다. 이곳 휴게소 역시 입구에 메리골드를 코에 건 코끼리가 우리를 환영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기념품이 많다. 그런데 인도적인 양식에 서양적인 모티브를 결합시켰다.

예를 들면 동물과 신상에서 유머를 느낄 수 있다. 코끼리도 미소를 짓고 있고, 해골의 표정에서도 웃음이 보인다. 또 서양인을 겨냥한 은제 고양이, 쥐, 코끼리상도 보인다. 이들 동물이 장구를 치고, 심벌즈를 치고, 나팔을 부는 걸 보니 악단을 조직해도 될 것 같다. 휴식을 마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파테푸르 시크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파테푸르 시크리 궁전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또 다시 셔틀버스를 탄다.
#찬드 바오리 #아바네리 #하샤드 마타 사원 #영화 <정말 이국적인 메리골드 호텔> #파테푸르 시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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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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