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라는 말, '결정장애'와 이렇게도 통하네?

[404호 실험실 엿보기 6편] '오이지'는 왜 덕후들을 만났나

등록 2016.03.22 15:23수정 2016.03.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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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에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구글, 서강대학교, 디지털 사회연구소, <블로터>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청년들과 함께합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실험으로 핵심 키워드는 '처음'입니다. 10대∼20대를 대상으로, 모바일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그 도전의 현장을 소개해 드립니다. [편집자말]
20대 중후반, 사회에 발 딛도록 등 떠밀리는 시기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볼 새도 없이 우르르 남들 하는 대로 떠밀리기 십상이다. 여기엔 '사회적 기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사회에 나가기 직전의 20대 중후반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는데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영향 받아 선택을 하게 돼요. 대학생이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고, 취업에 성공하면 결혼해야 하고...우리 사회에는 획일화된 기준이 참 많죠."

<오마이뉴스>가 참여하는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뉴스 제작 심화 교육 프로그램) '오이지'팀의 팀장 안경찬씨의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 오이지팀이 선택한 주제는 '결정장애'다. 단순히 '오늘 점심 뭐 먹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가벼운 결정장애가 아닌, "사회적 통념 때문에 20대가 주체적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에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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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오이지'팀의 팀장 안경찬씨 ⓒ 김예지


사회적 기준은 생각보다 훨씬 공고해, 약간만 다른 길을 걸어도 '이상한 사람' 취급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주목한 것이 '덕후'다.

"획일화된 기준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덕후'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금의 힌트를 주고 싶었어요."

특히 안경찬씨가 인상 깊었던 이는 기생충 덕후다. 그는 "기생충 덕후 정준호씨는 '개인 취미생활에 덕후 딱지표를 붙여서 낙인을 찍어야 하나,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으니 그런 딱지를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공감이 갔다"라고 말했다.

"정준호씨는 '아무것도 안 한 시간들이 정말 많은데 그것에 대해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 말도 참 와 닿았어요. 저도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 후회를 많이 했는데, 그런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스스로를 좀 더 아끼게 됐어요."


오이지팀은 덕후를 담은 인터뷰 외에도, 20대가 직면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오바타' 게임, 결정장애를 사회적 문제로 접근한 전문가 인터뷰도 함께 제작했다. 경찬씨는 "오이지팀의 콘텐츠를 보고 독자들이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존중하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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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갈림길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암묵적 기준에 따라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우리, 20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오이지팀 제작 콘텐츠. ⓒ 오이지


"오이지처럼 쭈글쭈글한 20대 모습 그려보고 싶었어요"

다음은 11일 안경찬씨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12주간 이어진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이 10일 모두 끝났다. 소감이 어떤가.
"아쉬운 게 크다. 다 끝나고 쉴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시원섭섭하다. 콘텐츠 제작에 매달린 막판에는 정말 하루 종일 이것만 했다. 지난 주엔 집에 2번 들어갔던가. 콘텐츠 결과물을 놓고 보자면, 영상의 형식 등에서 다양한 걸 해볼 수 있었을텐데 그걸 못해서 아쉽다. 기획할 때 구상했던 것과 실제 결과물 사이에 간극이 있는데, 1차로 제작해 보고 시행착오를 겪은 후 다시 수정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 같다. 그런데 한꺼번에 결과물을 내야 해서 더 이상 손댈 수 없어 아쉽다."

-'오이지'라는 팀명은 무슨 뜻인가.
"숱하게 마주하게 되는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힘들게 고민하지 말고 쉽게 생각해~그래서 'OH~easy'다. 20대 안에 오이지처럼 쭈글쭈글한 모습들이 담겨있다고 봤다. 오이지는 친구들도 있다. 타인의 기준에 휘둘려 하라는 대로 '당근당근'을 외치는 당근맨, 각종 자격증을 싹쓸이하는 '해적맨', 대학을 안 나오고 아르바이트 하는 자장면에 달린 양파같은 신세의 '양파맨' 등 다양한 20대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오이지 팀이 만든 콘텐츠의 핵심 주제어가 '결정장애'다. 이걸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의 20대가 주체적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에 주목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 사회의 암묵적 강요 속에 답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봤다. 특히 20대 중후반은 사회에 나가기 직전의 나이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는데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영향 받아 선택을 내리는 게 태반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는 것, 이런 것들이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봤다.

우리 사회에는 획일화된 기준이 참 많다. 대학생이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고, 취업에 성공하면 결혼해야 하고, 마치 사회적 통념처럼 돼있다. 거기서 약간만 벗어나도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다. 다양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본인에게도 그런 통념이 작동하는 걸 자주 느낄 거 같다.
"올해 30살이다. 졸업을 한 상태다. 학교 다닐 때 취업과 관련된 일은 거의 안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했다. 뮤지컬 동아리 활동하고 대학생 선교단체 활동도 하고. 작년에는 노컷뉴스에서 20대 공감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도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취업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그런데 다들 토익, 자격증 취득 등 너무 똑같은 준비만 하고 있더라. 그런 준비를 해서 일반적인 회사에 들어갔을 때 내가 행복할까 생각하게 됐다. 주변에서는 '그런 거 할 때냐, 빨리 취직해야 하지 않냐, 나이를 계속 먹어 가는데 지금 취직하지 않고 결혼 안 하면 평생 못한다'는 말들을 계속한다. 그 속에서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럴 때가 아닌데...' 싶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진행형이다."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가 존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덕보기-세상의 모든 덕후를 엿보기 [덕보기-세상의 모든 덕후를 엿보기] 패션 덕후 임진희 & 기생충 덕후 정준호.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오이지 팀 제작 콘텐츠. ⓒ 오이지


-결정장애의 모습을 어떤 콘텐츠로 구현했나.
"3가지로 나뉜다. '오바타(O-vatar, 게임)'를 통해서 20대들이 직면한 상황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콘텐츠가 하나다. 또, 획일화된 기준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덕후'라고 생각했고 '덕보기(O-bservation, 인터뷰 영상)'를 통해서 이들의 얘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렇게 살아도 잘 살수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줘서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힌트를 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오 박사 인터뷰'를 통해 선택을 둘러싼 각종 불안을 사회적 문제로 접근한 전문가 인터뷰를 담았다."

-콘텐츠를 제작하며 많은 '덕후'들을 만났을텐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
"철도, 기생충, 스타워즈, 패션, 산타, 글 수집, 애니메이션 덕후 등을 만났는데 기생충 덕후 정준호씨가 가장 인상 깊었다. 영역 자체가 특이하기도 하고, 기생충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또 덕후에 대해 '개인 취미생활에 딱지표를 붙여서 낙인을 찍어야 하나,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으니 그런 딱지를 붙이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공감이 갔다. 인터뷰 하면서 그 분이 '아무것도 안 한 시간들, 버린 시간들이 정말 많은데 그것에 대해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도 참 와 닿았다. 나도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 후회를 참 많이 했는데, 그런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스스로를 좀 더 아끼게 됐다."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한 건 무엇이었나.
"긴 인터뷰를 모바일 환경에 맞게 만들려고 했다. 4명의 인터뷰 대상자를 두고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사람 단위로 영상을 자른 게 아니라 주제 단위로 묶어서 2명씩 한 영상에 넣었다. 기생충 덕후와 스타워즈 덕후가 한 영상에 나오면 다음 영상에는 기생충 덕후와 철도 덕후가 나오게 했다. 첫 번째 영상을 보고 기생충 덕후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다음 영상을 연관소비하게 하는 전략이다. 게임을 만든 것도 엄청 새로운 시도였다.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고, 그걸 통해서 감정적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다른 데서 잘 안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오이지팀의 콘텐츠를 본 독자가 어떤 메시지를 얻어갔으면 좋겠나.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가 존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도 그런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나도 그렇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게 아직 없다. 앞으로 무엇을 택할지 모르지만, 내 선택을 내가 존중하고 싶다."
#오이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결정장애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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