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때문에 자신이 만든 궁전에 갇힌 황제

[북인도 라자 문화기행 ⑭] 아그라성, 자한기르와 샤자한의 자취가...

등록 2016.03.23 14:37수정 2016.03.2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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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그라성과 아마르 싱 게이트

아그라성과 아마르 싱 게이트 ⓒ 이상기


아침에 버스를 타고 아그라성으로 간다. 아그라성은 무굴제국의 수도에 만든 방어성(Fortress)이자 궁전(Palace)이다. 아그라가 무굴제국의 수도가 된 것은 1558년 제3대 황제 악바르에 의해서다. 악바르는 1556년 파니파트(Panipat) 전투에서 힌두교 왕 헤무(Hemu)를 물리치고 나서, 아그라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해 수도로 선택한 것이다. 그는 파괴된 성을 재건하기 위해 라자스탄 지역에서 나는 붉은 사암으로 성과 궁전을 지었고, 1573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우리는 성의 남쪽 아마르 싱(Amar Singh) 게이트에 도착한다. 아그라성에는 동서남북에 네 개의 문이 있는데, 현재는 남쪽의 아마르 싱 게이트와 서쪽의 델리 게이트로 통행할 수 있다. 그러나 델리 게이트는 인도군 낙하산부대의 출입문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다. 아마르 싱 게이트는 일명 악바르 문(Akbar Darwaza)으로 불린다. 그것은 1568년 그에 의해 이 문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a  코끼리 게이트 하티 폴

코끼리 게이트 하티 폴 ⓒ 이상기


아마르 싱 게이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 밖의 해자를 지나야 한다. 해자를 건너기 위해서는 나무판으로 만든 다리를 지나야 한다. 이 다리를 상하로 들어 문을 막으면 외적이 접근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문에는 좌우로 여닫는 철문이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이번에는 두 번째 문인 하티 폴(Hathi Pol)이 나온다. 하티 폴은 코끼리 게이트로 두 개의 높은 기둥이 문 양쪽을 받치고 있어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문을 지나면 아그라성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경사가 나타난다.

이 길 역시 양쪽으로 벽을 쌓아 들어오는 외적을 위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 외적이 두 개의 문을 돌파하고 들어올 경우에는 이 경사로에 기름을 부어 외적이 올라오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고 한다. 정말 원초적이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창과 칼, 화살, 대포 같은 무기로 막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기름으로 적을 막는다는 이야기는 이곳에서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샤자한 게이트까지 올라간다.

악바르가 건설하고, 자한기르가 주로 산 건물

a  자한기르 욕조

자한기르 욕조 ⓒ 이상기


샤자한 게이트는 황제가 대중들을 알현하는 궁전인 디완 이 암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우리는 나중에 디완 이 암을 보고 샤자한 게이트를 통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바르 시대 벵갈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 악바르 마할과 자한기르 마할을 먼저 보기로 한다. 이 건물에 두 황제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악바르에 의해 건설되고, 자한기르가 주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잔디 정원 뒤에 붉은색 사암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을 보러가다 보면, 정원 한가운데 돌로 만든 반구형 석조(石槽)를 만나게 된다. 높이가 1.5m, 지름이 2.4m나 되는 커다란 목욕통으로, 황태자였던 자한기르가 이곳에서 장미수(Rose water) 목욕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욕조 가장자리에 새겨진 페르시아어 자한기르 욕조(Hauz-i-Jahangiri)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a  자한기르 궁전

자한기르 궁전 ⓒ 이상기


자한기르 궁전은 이름처럼 자한기르와 그의 부인 누르 자한(Nur Jahan)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자한기르가 황제에 오른 것은 1605년이며, 그 후 1627년까지 이곳 아그라성에서 무굴제국을 통치했다. 자한기르 궁전은 인도 양식과 중앙아시아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대칭, 개방성, 기하학적 문양, 건물 위의 정자 형태 차트리 등이 특징적이다. 일부 건축가들은 이 궁전의 특징을 단순성(Simplicity), 명료성(Clarity), 완전성(Integrity)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1627년 자한기르의 뒤를 이어 등극한 샤자한도 1648년까지 이곳 아그라성에 살았다. 그는 북쪽 공간에 흰 대리석 궁전을 지었으며, 대표적인 궁전이 카스 마할, 디완 이 카스, 디완 이 암이다. 그러나 1648년 샤자한은 수도를 샤자하나바드(Shahjahanabad)로 옮긴다. 샤자하나바드가 현재의 올드 델리다. 그는 그곳에 아그라성과 같은 형태의 붉은 성(Red Fort)과 자마 마스지드를 지었다. 붉은 성은 무굴제국의 왕궁이고, 자마 마스지드는 델리를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이다.


a  아그라성 평면도

아그라성 평면도 ⓒ 이상기


샤자하나바드는 무굴제국이 몰락하는 1857년까지 200년 이상 수도로서의 역할을 했다. 우리는 이번 여행 마지막 날 델리로 가, 붉은 성과 자마 마스지드를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디아 게이트와 간디 무덤인 라지가트를 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게 패키지여행에서 겪는 안타까움이다. 무굴제국의 마지막 수도 델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황제 자리 찬탈 당한 샤자한, 궁전에 갇히다

a  앙구리 박과 카스 마할

앙구리 박과 카스 마할 ⓒ 이상기


샤자한이 만든 궁전을 보려면 포도나무 정원으로 불리는 앙구리 박(Anguri Bagh)을 통해 카스 마할로 들어가야 한다. 현재 앙구리 박에는 포도나무는 없고, 화초들이 심어져 있다. 정원은 가로 68m, 세로 52m의 직사각형이고, 가운데로 폭 5.5m 십자형 길이 나 있다. 정원의 한가운데 수조 형태의 단이 만들어져 있다. 앙구리 박의 동쪽에는 황제와 황후의 거처인 카스 마할이 있고, 남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에는 궁녀들의 거처인 쉬시 마할이 있다. 이들 왕궁은 1631년부터 1640년 사이 샤자한에 의해 건설되었다.

카스 마할은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성스러운 궁전이란 뜻으로, 아그라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앙구리 박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카스 마할 정면에 마당이 나타난다. 마당 한가운데 수조와 분수대가 있고, 그 앞으로 정면 5칸의 개방된 궁전 건물이 보인다. 우리는 궁전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펴본다. 인도의 궁전에서 볼 수 있는 양각으로 조각한 벽장식, 화려하게 상감한 피에트라 두라, 격자창 등이 눈에 띈다.

a  무삼만 부르즈 내부

무삼만 부르즈 내부 ⓒ 이상기


카스 마할 옆에는 8각형의 탑 형태 건물인 무삼만 부르즈(Muthamman Burj)가 있다. 이곳은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건물 한가운데 가로 12.3m 세로 6.7m의 향수 분수가 있고, 그 둘레에 피에트라 두라로 장식한 기둥과 벽 그리고 방이 위치하고 있다. 내부 장식은 카스 마할 못지않게 화려하다. 그것은 카스 마할보다 보존이 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658년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황제자리를 찬탈 당한 샤자한은 이곳 카스 마할과 무삼만 부르즈에서 1666년까지 유폐되어 살았다. 그는 이곳에서 동쪽에 있는 아내의 묘당 타지마할을 보며 인생무상을 체험했을 것이다. 무삼만 부르즈 한쪽에는 장식이 없는 작은 모스크가 있다. 메나 마스지드(Meena Masjid)로 왕가의 사적인 예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이곳 역시 들어갈 수가 없다.

a  디완 이 카스에서 바라 본 마치 바완

디완 이 카스에서 바라 본 마치 바완 ⓒ 이상기


우리는 이제 황제의 사적 업무 공간인 디완 이 카스로 간다. 이 건물 역시 1635년 샤자한에 의해 완성되었다. 대신들과 만나는 외부의 개방된 홀과 황제의 집무실인 내부의 폐쇄된 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1634년에 만들어진 공작 왕좌(Takht-I-Taus)가 있었는데, 1648년 수도를 델리로 옮기면서 레드 포트로 옮겨졌다고 한다. 디완 이 카스 밖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리석 판이 있는데, 그중 검은 색 판은 자한기르의 왕좌((Takht-I-Jahangiri)로 알려져 있다.

디완 이 카스를 나온 우리는 앞쪽에 있는 2층 짜리 마치 바완(Macchi Bhawan)을 살펴본다. 이 건물은 가운데 잔디 광장이 있고, 그 주변을 아케이드 형태로 만들었다. 이곳 1층에 시장인 바자르가 형성되고, 궁녀들이 2층에서 내려와 물건을 사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바완의 북서쪽 코너에 궁녀들의 거처인 나기나 마스지드(Nagina Masjid)가 있다.   

디완 이 암을 보고 성을 나오다

a  디완 이 암

디완 이 암 ⓒ 이상기


이들 내부 궁전을 보고 우리는 외부 궁전인 디완 이 암으로 나온다. 디완 이 암 역시 건물이 서향으로 있고, 그 앞에 커다란 운동장을 설치한 형태다. 디완 이 암의 남쪽으로는 정원을 꾸며 마치 천국처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정원의 바닥에 잔디를 깔고 야자수 등 나무를 심어 조경을 했다. 디완 이 암 역시 샤자한에 의해 1630년대 지어졌고, 대중이 참가하는 공식적인 의전과 행사 장소로 사용되었다.

디완 이 암은 궁전의 기둥이 정면 10줄, 측면 4줄이나 되는 개방형 건물이다. 그러므로 내부는 27개 공간으로 나눠진다. 내부 장식은 디완 이 카스나 카스 마할처럼 화려하지 않고 단순한 편이다. 우리는 내부를 한 바퀴 돌고는 운동장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그곳에는 작고 이상한 건물이 하나 있다. 그곳에 적힌 명문을 보니, 인도 북서부 지방을 다스리던 부총독 존 러셀 콜빈(John Russel Colvin)의 무덤이다. 그는 1857년 인도 제1차 독립전쟁 당시 이곳 아그라성에서 죽었다.

a  콜빈의 무덤

콜빈의 무덤 ⓒ 이상기


우리는 이제 디완 이 암 서남쪽 정원을 따라 샤자한 게이트 쪽으로 이동한다. 그러고 보니 아그라성의 공식 사원인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를 보지 못했다. 샤자한 게이트를 나오면, 우리가 처음 들어간 자한기르 궁전이 왼쪽으로 보인다. 이제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아그라성을 한 바퀴 돌아본다. 아그라성은 성벽이 높기로 유명하다. 높이가 20m에 이르고 둘레는 2.5㎞나 된다. 동쪽으로 야무나강이 흘러 천혜의 요새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요새의 남문 아마르 싱 게이트를 통해 다시 성을 빠져나온다. 나올 때 보니 관광객들이 더 많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해자를 내려다보면서 성벽이 높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성 앞 도로에 이미 버스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아그라 칸톤먼트역으로 가서 카주라호(Khajuraho)로 가는 기차를 탈 것이다. 오전 11시 45분에 아그라를 출발해서 오후 7시 50분 카주라호에 닿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기차를 타는 셈이다. 중간에 경유할 큰 역으로는 괄리오르, 잔시, 마호바가 있다.
#아그라성 #자한기르 궁전 #카스 마할 #무삼만 부르즈 #샤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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