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그대로인 지진 피해 건물. 옆에 한글이 적힌 것으로 보아 한국인의 상가인 것 같다.
이규봉
성당 주변의 정겹고 활발했던 정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스타벅스, 2층에 있던 한국인이 경영하던 중국집, PC방 그리고 주변 콜롬보(Colombo Street) 길가에 늘어서있던 그 많던 가게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건물들은 없고 스산함만 남아있다. 이곳에 있던 관광안내센터도 이전해 물어물어 찾아가 내일 갈 테카포 호수(Lake Tekapo)와 쿡 산의 인근 마을인 트와이젤(twizel)에 2박을 예약했다.
12년 만에 만난 앞집 할머니12년 전 살았던 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아내가 주소를 기억하고 있어 쉽게 찾았다. 이곳에 와보니 비로소 옛 기억이 난다. 혹시나 하고 아내가 우리와 벽이 붙어있던 앞집 문을 두들겼다. 친하게 지냈던 키위 할머니가 아직도 여기 살고 계신가 해서이다. 문을 열고 한 분이 나오는데 12년 전과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의 이사벨 할머니다. 둘 사이에 뜨거운 상봉이 이루어졌다. 올해가 90세란다. 그러니 우리가 있을 때가 78세였나 보다.
아직도 운전하며 다니고 있고 정원도 가꾸고 뜨개질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 뜨개질해 만들어 놓은 옷거리와 정성껏 담은 소스 한 병을 아내에게 준다. 지진 때 집이 피해를 받았으나 다시 리모델링하여 깨끗해졌다. 내부 살림도 옛 모습 그대로다. 2남 2녀인데 한 아들이 24세 때 교통사고로 죽어 그 사진을 아직도 보고 계신다. 우리가 살던 집의 복숭아나무는 없어졌다. 그 맛있던 복숭아가 생각난다. 우리 집을 승계받아 온 사람도 이곳에 연구년으로 온 교수와 그 가족인데 할머니와는 별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천국에서나 만날 수 있겠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나왔다.

▲ 12년 만에 만나 해후하는 이사벨 할머니와 아내
이규봉

▲ 12년 전에 필자의 집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이규봉
예전 그 맛있는 피자가 생각나 리틀톤(Lyttleton)의 사쯔모(Satchmo) 피자집을 찾아갔으나 상호명은 Root로 바뀌었고 3월부터 다시 개장한다 해서 아쉽게 돌아와야 했다. 사츠모는 철의 입술이란 뜻으로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루이 암스트롱의 별명이다. 유독 그 가게에는 그의 사진이 많이 걸려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다음 날 일찍 전망이 좋아 집값이 비싼 썸너(Sumner)로 갔다. 피해가 심했다는 말과 달리 지진 피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복구한 건가? 썸너에서 길게 바라보이는 해안에 다시 갔다. 이곳에 지어진 도서관은 다행히 지진 피해가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공부가 될까? 그 앞에는 낚시광들을 위한 방죽(pier)이 길게 바다로 나 있는데 지금은 게 철인가 보다. 어망에다 닭고기를 넣고 잡는데 어망을 올리니 작은 게들이 올망졸망 들어있다.

▲ 해안가에 세워진 아름다운 뉴 브라이튼 도서관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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