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단일화라도 해라, 안 그러면 큰일난다"

[총선 '꿀잼현장' ② - 서울 노원병] 3자 구도, 새누리 이준석엔 '기회'

등록 2016.03.31 17:36수정 2016.04.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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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면 '격전 지역'이 주목을 받습니다. 후보들 간의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아 누가 당선 될 지 알 수 없는 지역을 그렇게 부릅니다. 하지만 단순히 당선 가능성만 따지는 건 재미가 없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경쟁이 치열할 뿐 아니라 다양한 스토리가 숨겨진 선거구를 '꿀잼지역'으로 골라 생생한 선거 현장을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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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현수막이 30일 오후 서울 노원역 인근에 나란히 걸려 있다. ⓒ 남소연


4·13 국회의원선거 서울 노원병 선거구 황창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29일 오후 노원역 인근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았다. 명함을 나눠주고 돌아서자, 소파에 앉은 한 손님이 황창화 후보에게 말을 걸었다. "안철수 의원이랑 막걸리라도 한잔 하던가 해서 (단일화) 꼭 하세요"라고 말했다.

황 후보는 "안철수 후보는 술을 못 한다"라면서 웃으며 답변하자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나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황 후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이날 오전 안철수 후보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연대 없이 정면 돌파하겠다"라고 못 박은 터였다. 황 후보는 "지역 인사를 다니면, 이준석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는 우려를 많이 듣는다"라고 전했다.

서울 노원병 선거구는 전국 253개 선거구 가운데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인 안철수 후보의 당락 여부는 향후 대선까지 야권의 정치 지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가 낙선하면, 정치적 재기가 힘들다. 반대로, 안 후보가 당선되고 국민의당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 그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진다.

노원병 선거구(2004년 17대 국회의원선거 이전에는 노원을)는 1992년 14대 국회의원선거 이후 삼자 대결이 이뤄진 2008년 18대 국회의원선거를 제외하면 새누리당 계열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다. 이런 야권 강세 지역에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현역 야당 국회의원의 재선을 의심하기는 힘들다. 안철수 후보는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60.5%의 득표율로,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32.8%)를 여유롭게 따돌리고 금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안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중간성적표를 받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28일 <중앙일보>가 발표한 엠브레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35.3%)·이준석(32.0%) 후보는 오차범위 내(±4.0%포인트)에서 접전을 벌였다. 황창화 더민주 후보는 11.4%, 주희준 정의당 후보는 5.2%다. 29일 SBS가 발표한 TNS 여론조사에서도 안철수(38.7%)·이준석(33.4%) 후보는 박빙이다. 황창화 후보는 13.0%, 주희준 후보는 4.1%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들은 18대 국회의원선거 결과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는 43.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40.1%)와 김성환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16.3%)가 단일화를 이뤘다면, 결과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떤 시나리오가 써질까. 29~30일 이준석·황창화·안철수 후보를 차례로 만났다.


[이준석 새누리당 후보] "노원구가 안철수의 정치적 도전에 이용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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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이준석 새누리당 후보가 30일 지역 주민들에게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 남소연


30일 오전에 만난 이준석 후보는 유권자에게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으며 인사했다. 동행한 사진기자한테 "사진을 많이 찍으면 주민들이 싫어한다"라면서 사진 취재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한 공인중개사무소를 가리키며 "새누리당을 지지하시는 분인데, 안철수 후보에게 덕담을 했다고 하더라고요"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 후보의 절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원병은 새누리당 후보에게 험지다. 3자 구도라고 하지만, 상대는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다. 이준석 후보는 상계동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선거사무소 펼침막의 문구도 '메이드인 상계동'이다. 이곳과 큰 인연이 없는 안철수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안철수 후보와 함께 참여한 어린이집원장 간담회에서 '상계동에서 어린이집에 다닌 후보는 저밖에 없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안 후보가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로서 지역 활동에 온전히 힘을 쏟지 못하는 점도 이 후보의 비판 지점이다. 29일 주민자치위원들이 주도한 국회의원후보 토론회에 안 후보는 대표 일정 탓에 불참했다. 이 후보는 "토론회에서 정책 대결을 하고 싶지만, 만날 기회가 적다, 뵙기 힘들다"라면서 비꼬았다. 그는 "지역구 관리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등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민심은 제게 더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서울메트로 창동차량기지 이전 등 지역 현안과 관련해 "도망갈 생각 있는 분이라면 해법을 안 내도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 10~20년 정치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라면서 "(안 후보가 당선되면) 노원이 한 개인의 정치적 도전에 이용당하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예민한 야권 분열 책임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안 후보는 홍보물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지역 현안 해결을 강조했다. 하지만 사이가 좋았을 때 해결을 해야지, 지금 봐서는 두 분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라면서 "또한 당을 나갈 정도로 친노패권주의의 핍박이 있었느냐"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의 나이는 31세다. 그의 부모가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젊은 새누리당 후보의 등장은 새누리당 지지 기반인 장노년층과 야권 지지자가 많은 젊은 세대 모두에게 고민을 안겨준다. "너무 이른 출마다" "때 묻지 않은 패기 있는 정치 신인이다"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준석 후보는 "'어린 놈이 뭘 알겠어' 하는 비판이 있지만, 이곳 새누리당 후보 중에 가장 강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황창화 더불어민주당 후보] "나를 희생할 수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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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황창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0일 상계종합사회복지관을 방문해 지역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황창화 후보는 57세로 노원병 후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이준석 후보의 아버지와 나이가 같다. 하지만 선거운동 방식은 가장 젊다고 할 수 있다. 황창화 후보는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젊은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25일에는 그가 출연한 <김어준의 파파이스>가 인기를 끌었고, 29일~30일에도 각종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했다.

그는 젊은 세대와의 대화에 능하다. 29일 오후 젊은 세대가 주로 모이는 노원역 주변에서 명함을 돌리면서 젊은이들에게 "저를 알게 되면, 제 매력에 빠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한 젊은이에게 "어느 학교 졸업했느냐"고 물었다. 한 학교의 이름이 나오자, 황 후보는 이내 "내 딸도 그 학교를 나왔다"며 말을 이어갔다.

황 후보는 이곳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임채정 전 국회의장의 정책보좌관 출신으로, 노원구와의 인연이 깊다. 국회도서관장 출신인 황 후보는 창동차량기지가 이전하면 대규모 도서관을 짓겠다는 포부를 내세웠지만, 안철수 후보에게 쏠리는 관심을 돌리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그를 만나 단일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나를 희생할 수도 있지만, 안 후보가 스스로 퇴로를 막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야권 지지자 중에 안철수 후보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있다. 안 후보를 중심으로 단일화를 해도 안 후보가 이기기 힘들 것이다. 또한 실망감 때문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준석 후보를 두고 "하버드대학교를 나왔다고 강조하는데, 노원구는 이미 경험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지역에서 지난 18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된 하버드대학교 출신 홍정욱 전 의원을 말한 것이다. "이준석 후보에게 콘텐츠나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후보는 고정 지지층 이상의 확정력을 보이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처음으로 선출직에 도전하는 황 후보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두 후보를 상대해야 한다. 그는 "낮은 인지도 탓에 제가 여러 번 인사해도 주민들은 저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라면서 "그렇지만 기성 언론이 주목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한다면, 일주일 이내에 제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무너뜨리는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재보궐선거 때 단일화 없이 당선, 이번에도 정면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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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30일 마들역 입구에서 출근인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30일 오전 6시 30분 안철수(54) 후보가 마들역 3번 출구 앞에 섰다. 출근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며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다.

바쁜 출근길에도 안 후보는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몇몇 주민들은 안 후보와 '셀카'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수행원들은 익숙한 듯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하나, 둘, 셋"을 외쳤다. 안 후보와 함께 인사를 하던 유청 서울시의회의원은 기자의 취재수첩을 보고는 "사인을 받아드릴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최근 안 후보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수도권 후보자 결의대회를 제외하면,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노원구에서 주민들을 만났다. 최근 온전히 지역 활동에 전념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상계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TV에서 자주 보이는 안철수 후보가 당이 아닌 노원구 상황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수도권 국민의당 후보들이 지원 유세를 요청하고 있다. 김영환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28일 안 후보에게 "노원구를 버리고 수도권 선거에 매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안 후보는 표심을 묻는 기자에게 "지난 3년 동안 앞선 의원 누구보다도 열심히 지역 활동을 했고, 성과도 많았다"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그는 "새누리당 지지자는 '(새누리당이) 익숙하게 실망감을 준다'고 하고, 야당 지지자는 '더민주는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저희 지지층은 정치 변화를 바라는 분들이다, 앞으로 더 잘하겠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이준석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여론조사 결과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도 밝혔다. 안 후보는 "2013년 재보궐선거 때는 제가 지는 여론조사도 많았지만, 선거에서는 상대 후보를 2배 가까운 득표율로 이겼다"라면서 "여론조사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제가 어떤 일을 하려는 것인지 말씀드리고, 지난 3년의 의정활동을 평가받기 위해 열심히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3자 구도에서 야권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면 이준석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지적에 대해 안 후보는 "지난 재보궐선거 때도 무소속으로 단일화 없이 당선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정면돌파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주민들은 어떤 후보가 노원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 살아온 이력과 정치활동을 보면서 잘 판단하실 것으로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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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nesdc.go.kr)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병 #안철수 #이준석 #황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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