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경희 통일평화상 시상 상을 시상하고 있는 신인령 전 이화여대총장(왼쪽)과 제1회 수상자인 이요상 시민활동가
한영수
"이번 심사위원들은 그동안 민주·평화·통일 운동 단체와 기관들이 여러 개의 상을 제정하면서 역대 수상자들이 지식인 중심의 명망가에 쏠렸다는 점을 성찰하게 되었다"며 현장에서 직접 뛰며 활동하는 시민 활동가에게 수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심사위원들을 대표하여 고광헌 전 한겨레신문 사장은 말했다.
'이 땅에 남기지 못한 이름들을 대신해서 이 상을 드립니다'
분단과 전쟁의 아픔이 있기 전 환하게 웃고 있는 한경희 여사의 사진과 위와 같은 한 구절이 쓰여진 액자 형식의 상패. 오늘의 행사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행사를 준비한 이들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드디어 오늘의 이요상 수상자는 수상 소감에 앞서 고 한경희 여사의 가족에게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혼자 뛰어다닌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겠냐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오늘처럼 시민이 상을 받게 되는 날도 있군요. 이 땅에서 이름 없이 활동하는 수많은 활동가와 함께 받는 상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수상자는 수상소감 후 다가오는 4월 23일에 있을 '강정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한 관심과 기금 모금도 부탁하였다. 이요상 수상자의 자녀들이 준비해준 오늘의 뒤풀이 비용도 이곳에 기부를 하려 한다면서 뒤풀이를 마련하지 못한 것에 양해를 구했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을 하는 수상자.
봄이 성큼 먼저 찾아온 제주. 며칠 전 제주를 다녀왔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서귀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는데 그곳의 사장님은 매일 강정 마을에 간다고 하였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 시간을 늦추고 사장님과 함께 강정 마을로 향했다.
죄송하고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가본 강정 마을. 이미 과거의 사건으로 한쪽에 밀어뒀던 그곳에는 여전히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일 활동가가 되어본 나는 의자에 앉아 해군기지 반대 현수막을 들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경찰에 의해 의자에 앉은 채로 짐짝처럼 옮겨졌는데 대략적인 얘기는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의자가 들리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그날은 뉴스나 기사로 접한 일이 아닌 내 몸으로 공권력을 느낀 날이었다.
제주를 다녀온 이후로 제주 앓이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의 수상자를 이렇게 만나니 더 큰 축하의 박수를 치게 되었다.
이어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과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축사가 이어졌다. 김태동 교수는 작년에 있었던 강정평화대행진을 이요상 수상자와 함께했다며 '해군기지가 완공되어도 평화를 위한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이 인상깊었다고 하며 5월 5일에 있을 신만민공동회에 대한 관심도 촉구하였다.

▲한경희 여사의 둘째 아들 송기수씨 한경희 통일평화상을 제정한 송기수씨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한영수
오늘 행사 마지막으로 한경희 여사의 둘째 아들 송기수씨가 마이크를 잡았는데 어머니의 사진을 좀 더 보여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시절이 험난했기에 있는 사진도 없애야 했고 안기부에서 뺏어가기도 하였다. 특히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일기장을 그리워했는데 무죄판결이 난 후 국정원으로 문의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다 폐기했다는 한마디 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국가가 주어진 힘을 행사하는 것을 넘어선 폭력"이라는 송기수씨. 억울하게 2년 6개월의 옥살이도 해야 했지만 그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더 중요시하는 아들이었다.
"지금도 건빵과 사이다만 보면 어머니가 생각납니다"송기수씨는 이어 어머니와의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송기수는 한동안 할아버지 댁에 맡겨져 어머니를 1년에 1~2번 만날 수 있었다. 9살 때 한번은 어머니와 새벽에 만나 충북 음성역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산을 몇 개를 넘어가도 어머니와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신이 나서 힘든 줄 몰랐다. 그렇게 기차역에 다 달았을 때 3명 정도가 되는 (정보부 소속) 남자들이 어머니에게 다가와 도민증(주민등록증) 확인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어머니를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어머니는 그들에게 끌려가기 전 건빵과 사이다를 사다 주며 이곳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 말하였다.
건빵과 사이다를 다 먹고 기차들이 몇 대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아무리 지나다녀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날이 추워져 덜덜 떨면서도 '어머니가 나를 두고 도망가시지 않으셨을 텐데' 생각하며 계속 자리를 지켰다. 어머니는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 돌아왔다. 그리고는 기차 안에서 아들을 꼭 안으며 눈물을 흘렸는데 어린 송기수는 그 눈물의 의미를 몰랐다. 아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그냥 나를 사랑하셔서 운다고 하였다.
그는 10시간이 넘도록 어머니가 그 못된 놈들에게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안 봐도 뻔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지금도 건빵과 사이다만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는 송기수씨.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한 편의 먹먹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축하를 위해 참석한 분 중 대부분 민주사회 실현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 일 텐데 알아 뵙지 못해서 송구스럽다. 평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분들 모두를 돌아보니 제주 오름 오름마다 피어있던 들꽃이 떠올랐다. 얼마나 끔찍한 역사가 스며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곳곳에 퍼져있는 들꽃. 화려하지는 않아도 지지 않는 들꽃이 있기에 그 길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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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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