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고문체험 방조 교육부, 세월호엔 왜 칼 뺐을까

'4.16 학습' 훼방하고 나선 교육부, 이유 살펴보니

등록 2016.03.31 22:45수정 2016.03.3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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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초중고생들이 체험학습에 많이 가는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벽관. 해당 모습은 벽관 체험학습 등을 소개하기 위해 KBS가 유튜브에 올려 놓은 것이다. ⓒ 인터넷 갈무리


전국 초등학생들이 해마다 참여하는 서대문형무소의 고문체험학습을 방조해온 교육부가 전교조가 만든 <4.16 교과서>에서 제시한 '세월호 상상학습' 등을 문제 삼아 수업 금지령을 내린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이 책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수업 등을 위해 만든 교사용 참고 자료다.

학생들의 세월호 상상이 정서적으로 부적절하다고?

교육부는 지난 25일 세월호 추모수업에서 이 책자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전국 시도교육청에 요구한 바 있다. 근거로는 "(학생이)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다고 가정하는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학생의 정서적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31일, 교육부가 만든 '4.16 교과서 주요 검토 결과'를 살펴봤더니 교육부는 이 책자의 초등교사용과 중등교사용 내용에서 각각 9개와 8개 등 모두 17개의 문제점을 정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초중등 교사 등 모두 20여 명이 해당 책자를 분석한 뒤 문제가 많이 지적된 내용을 교육부가 정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문제 삼은 상당수의 내용이 "일부러 문제를 만들기 위한 생트집"이라고 전교조는 반박하고 있다.

교육부는 '검토 결과' 문서에서 초등교사용 책자 21쪽과 중등교사용 책자 29쪽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문제 삼았다.

"내가 세월호에 있었다면 배가 침몰하는 순간 어떤 것들이 생각날까요?"(초등용)
"내가 세월호 안에 있었다면 했을 만한 말을 상상하여 채워 봅시다."(중등용)


초등교사용 <4.16 교과서> 21쪽 내용. ⓒ 윤근혁


교육부는 문서에서 위 내용에 대해 "배에 타고 있다고 가정한 상황은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정서적 불안감을 조장할 우려가 있어 교육자료로 부적절함"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전국 초중고에서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학습을 강조해왔다. '화재예방', '민방위 훈련' 등 안전사고 예방교육 등에서는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학생들을 교육하고 참여시키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정규 체험학습 교육과정에서 인기가 높은 서울 서대문형무소의 경우 고문체험은 물론 쇠창살로 만든 벽관체험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벽관은 사람이 죽었을 때 들어가는 관처럼 생긴 물체를 벽에 세워놓아 그곳에 들어가 보도록 하는 '매우 공포스런' 고문 시설이다.

충남 천안에 있는 유관순 기념관도 비슷한 벽관이 설치되어 있다. 상당수의 초중고는 이들 벽관에 들어가 보는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KBS는 유튜브에 이 같은 벽관 체험활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올려놓고 있다.

"모든 체험학습도 중지해야" 비판에 교육부 "교육 목적이 문제"

<4.16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한 초등교사는 "교육부가 세월호 상상수업에 대해 지나친 불안감을 유발하는 수업이라고 금지했는데 이는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면서 "같은 잣대라면 지금 전국학교에서 벌이는 모든 안전체험, 지진체험, 재난체험학습 역시 당장 중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벽관체험 등은 교육부가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뭐라고 답할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그런 것은 교육적인 목적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4.16교과서 내용과는 달리 판단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4.16교과서는 전체적인 흐름 자체가 아이들 수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정서를 위축되게 만든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같은 분석 자료에서 초등교사용 책자 2쪽에 실린 "진실을 은폐하려는 불의한 정권"이란 표현도 문제 삼았다. "부정적 국가관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책자를 살펴봤더니 교육부가 문제 삼은 내용은 '4.16교과서를 펴내며'라는 제목으로 실린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의 인사말에 나온 것이었다. 교육부가 해당 내용이 마치 학생용 교육자료인 것처럼 눈속임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교육부는 해당 책자의 사실왜곡 사례로 다음 3가지 등을 들었다. 언니를 잃은 여동생이 쓴 편지(초등교사용 25쪽)에 "아직 아무도 벌을 받지 않았대요"라는 표현, 책자 대주제 안내 페이지에 실린 "(세월호) 법을 만들어야 할 국회와 정부는 오히려 집요하게 방해하고 반대했다"(초등교사용 59쪽)는 표현이 그것이다. 또한 "특별위원회 여당 추천 위원들이 자진 사퇴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방해했다"(중등교사용 99쪽)는 내용도 문제 삼았다.

교육부는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고 진상규명특별법도 2014년 11월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사실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별위 여당 추천 위원들이 자진 사퇴한 것도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업무 방해'라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책자는 다른 부분에서 선장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46쪽)와 진상규명특별법 제정(76쪽) 사실을 정확히 적어놓았다.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당 책자 집필자는 "유가족 글을 그대로 옮기면서 집필시점의 문제가 있었을 뿐이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 당시 방해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니냐"면서 "교육부 검토 자료는 자기들 스스로 전체 맥락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판단'을 놓고 '사실왜곡'이라고 뒤집어씌운 교육부

게다가 교육부 주장대로 '특별위원들이 자진 사퇴한 것이 개인적인 일'이란 점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중도사퇴가 '업무 방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판단의 문제를 놓고 사실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전교조는 교육부가 문제 삼은 내용 중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미소의 여왕'이란 동화의 끝 부분은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지난 30일 보도자료에서 "해당 내용은 문학작품을 옮긴 것이지만 열린 결말을 가로막는 내용이 있어 비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교조 관계자는 "동화 뒷부분 서술 내용이 아무리 동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더라도 '지나친 내용이 있다'는 지적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
#4.16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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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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