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표' 대신 '투표지심사계수기', 괜찮을까?

‘부실개표’ 막고자 도입했으나 처리속도 너무 빨라 효과는 의문

등록 2016.04.01 13:44수정 2016.04.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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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지심사계수기 100매 단위 투표지 계수 중인 투표지심사계수기 ⓒ 이완규


이번 4.13 총선 개표부터 '투표지심사계수기'가 처음으로 쓰인다.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가 부실한 개표를 방지하고자 도입한 이 기기가 취지대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중앙선관위는 작년 12월 24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지 심사 계수기 임차사업'을 공개 입찰해 업체를 선정하고 총선에 사용할 기기의 제작과 시연을 마쳤다. '투표지심사계수기'는 기존에 투표지 매수를 세는 데 쓰던 계수기를 '투표지 확인과 심사' 용도로까지 쓸 수 있도록 기능을 바꿔 새로 개발한 개표 장비다.

계수기와 가장 큰 차이점은 계수의 '처리속도'에 있다. 기존의 계수기는 1분당 800~1000매의 투표지를 처리했다. 심사집계부에서 후보자별로 투표지의 유, 무효를 확인 심사한 뒤 100매 단위로 묶고자 투표지 매수를 세는 용도였다. 반면 투표지심사계수기는 '계수'만이 아니라 명칭 그대로 '투표지의 심사'를 위해 개표사무원들이 쓰는 기기이며 그 처리속도가 1분당 150~300매다.

투표지의 매수를 세는 데만 쓰는 계수기라면 처리속도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지심사계수기'의 경우는 투표지 다발에 혹시 다른 후보자의 표가 섞였는지, 무효표가 들어 있지는 않은지 여부를 개표사무원이 맨눈으로 식별해야 하므로 처리속도를 무턱대고 높일 순 없다. 선관위가 투표지심사계수기의 처리속도를 150~300매로 제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선관위가 투표지심사계수기의 처리속도로 설정한 150~300매가 적정한가이다. 기자가 지난 3월 29일 선관위에서 정보공개로 받은 20대 총선 개표관리매뉴얼에는 '투표지심사계수기' 운용에 대한 다음의 지침이 나온다.

"※개표 초기에는 분당 200 정도의 속도로 운영하여 혼란을 최소화하고 장비 운영에 익숙해지면 속도를 조정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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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관리매뉴얼 20대 총선 개표관리매뉴얼의 투표지 심사 확인 요령 ⓒ 정병진


오는 총선 개표에서는 각 심사집계부마다 보통 3대씩 투표지심사계수기를 사용한다. 한 대당 2인 1조의 개표사무원이 앉아서 이 기기로 후보자별 득표수와 투표지의 유, 무효를 심사하게 돼 있다. 이전 선거까지 손으로 하던 개표 작업을 투표지심사계수기를 사용해 신속성과 정확성, 편의성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벌써부터 투표지심사계수기 사용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투표지심사계수기의 시연에 참여한 이완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투표지심사계수기 처리 속도를 200~300매로 높이면 사실상 맨눈으로 투표지의 확인 심사가 힘들다"고 지적한다.

현재 '개표 보조수단'으로 쓰는 투표지분류기(전자개표기)의 처리 속도는 구형(2010년형)은 후보자 6인 투표지를 기준으로 1분당 320매이고 신형(2014년형)은 360~400매다. 투표지심사계수기 처리속도를 300매로 높인다면 투표지분류기와 처리속도가 엇비슷함을 알 수 있다. 1초에 5매씩 투표지가 계수되는데 그것을 계속 지켜보며 혼표와 무효표를 가려내기란 매우 힘든 상황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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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관리매뉴얼 20대 총선 개표관리매뉴얼에 나오는 투표지심사계수기 사용요령 ⓒ 정병진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중앙선관위 선거1과 이상능 사무관은 3월 31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저희가 실험을 해봤는데 (식별이) 가능하다. 다만 오랫동안 계속하면 (눈이) 피곤하기에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해 놓은 거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투표지심사계수기' 같은 형태의 기기를 개표에 사용하는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는 안 해봤지만 없는 걸로 안다. 우리도 고민을 거듭하다가 개표사무의 편의를 위해 도입하였다"고 밝혔다.

"투표지심사계수기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고 하자, "선거 끝나고 법적 판단을 받게 되면 (그리)하겠지만 사람이 (투표지를) 눈으로 보는 데 보다 편하게 보게 해주는 건데 (불법 사용이라고) 그렇게 보진 않는다."고 하였다.

중앙선관위는 "그동안 심사집계부의 개표에서 수작업 개표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아 그것을 보완하고자 투표지심사계수기를 도입하였다"고 말한다. 개표 사무원 개인마다 수작업 개표에 편차가 많기에 어느 정도 균일한 범위를 설정해 개표의 속도와 정확성,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다만 "실제 개표 현장에서 어떤 속도로 개표하도록 지휘하느냐는 각 구, 시, 군 위원회 사무국장(혹은 과장)의 몫"이라고 밝힘으로써 자칫하면 분당 300매의 빠른 처리속도로 투표지심사계수기의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할 여지를 남겼다.
#투표지심사계수기 #수개표 #개표관리매뉴얼 #심사집계부 #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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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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