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는 슬리퍼를 신고 가지 않는다

'의례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

등록 2016.04.04 15:12수정 2016.04.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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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나 미술 작품 전시회에 가면 매표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는 곳이 있다. 바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주는 곳이다. (요즘은 대기 없이 스마트폰으로 바로 구입도 가능한 경우도 있다.) '오디오 가이드'는 전시 중인 미술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녹음된 기계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하나씩 볼 때마다 음악을 넘기듯 오디오를 하나씩 재생하면서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에 담긴 작가의 의도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보통 삼천 원 정도의 유료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해설과 함께 작품을 관람하는 것을 선호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멈춰서 그것을 계속 바라보고 관찰하고 자기 나름대로 감상하기보다는, 이어폰을 끼고 해설의 길이(시간)에 맞춰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에게 '전시회를 제대로 관람'하는 행위는 권장된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러 번 관람하기엔 관람료 부담이 있기에, 처음이자 마지막 관람에 작품을 제대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작품의 배경 설명을 아는 것은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는 작품에 대한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을 막기도 한다.

마치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만난 시를 시어 하나하나 줄 쳐가며 읽는 것 같다. 미술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실기 위주의 수업은 주로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것 위주였고, 각자의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은 없었다. 기말고사만 있는 미술 필기 시험은 작품에 대한 능동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 아니라, 정답이 있는 문제로만 이루어졌다. 우리는 '스텐실'이 무엇이며, 밀레가 <이삭 줍는 여인들>을 몇 년도에 그렸는지를 외워야 했다.

미술 과목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도 철저히 암기 위주다. 학생 개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묻는 시험은 서로에게 골치가 아프다는 핑계로, 학생도 선생도 '누가 봐도 정답인' 내용을 달달 외워 치르는 시험을 선호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예술을 감상할 때 자신의 주관적 느낌을 상세히 말하기보다는 "나 이 작품 너무 좋아!(간단한 감상) 이거 르네상스 시대에 누가 그린 건데~(객관적 사실)"라며 암기한 지식을 뽐내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본인이 느낀 그대로를 말하는 것은 '아, 아는 것도 없는데 말하면 창피만 당하겠지'라는 생각에 꺼리게 된다. 미술관에서 조용히 주어진 해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도덕 감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정답을 권하는 사회'는 작품에 대해 일반적으로 주어진 해석만이 옳으며 그 외의 해석은 답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을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권위자(=미술관)가 권장하는 '성(聖)과 속(俗)'의 구분을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하여 기존의 사회를 그대로 유지시키고, 기존의 지배-피지배 관계 즉, '정답 제공자-정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라는 관계로 고착시킨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미술관의 풍경은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나 동네 슈퍼 가는 복장의 관람객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한 번도 미술관 작품 앞에서 시끄럽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사람들의 눈총을 어마어마하게 받을 것이다. 이처럼 미술관이 '특별한 곳', '우리가 맞춰야 하는 곳'이 된 것은 사회가 미술관에 가는 것을 하나의 특별한 '의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방학 숙제엔 늘 '미술관 다녀온 후 감상문 쓰기'가 있었다. 학기 중에는 미술관에 가라고 권장하지 않으면서 방학만 되면 미술관에 가란다.


성장 과정에서 미술관에 가는 것을 밥 먹듯이 했다면 (그러도록 권장 받았다면) 우리에게 미술관이 지금처럼 특별한 곳으로 여겨졌을까? 미술관은 우리 일상 속에 친근하게 서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미술관에 가는 것을 특별하게 여긴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는 날에는 옷을 '차려 입는다.'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러한 의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미술관에서는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한다.

밥 먹듯 미술관에 가고, 커피 마시듯 음악회에 가자. 우리 사회 속 '특별한 것'들을 하나씩 줄여나가자. 그것이 '성과 속'의 구분을 하나씩 깨는 길이다.
#미술관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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