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지하실을..." 한 할아버지의 과감한 제안

어르신들의 악기 연주 봉사단, 새 보금자리가 생겼습니다

등록 2016.04.12 15:24수정 2016.04.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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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문자가 왔다. 아코디언 하는 어르신의 문자다.


"선생님! 우리 4월인 지난주부터 복지관에서 악기연주 수업과 연습 안 하고 무심동로 지하에서 연습해요. 한번 놀러 오세요."
"네네! 아이구 그러셨어요? 강사한테 소식은 들었지만 4월부터인지는 몰랐네요... 제가 틈이 나면 꼭 가볼게요."

문화예술과 복지를 접목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음악도 잘 모르는 내가 사심을 곁들여 음악 악기 프로그램을 하나씩 개설한 것이 벌써 9년째 되었다. 어렵게 악기를 구하고 소음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는 복지관이 아닌 지역주민센터를 교육 장소로 빌렸다. 아코디언과 우쿨렐레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오래 배우신 어르신들을 주축으로 '은빛소리봉사단'도 만들어 참 많은 공연을 했다.

주민센터의 공간 사용 금지 통보, 우린 떠돌아다녔다

9년째 되던 마지막 해에 나는 퇴사했다. 복지관도 운영난으로 음악 프로그램을 폐강한다고 했다. 그래도 어르신들은 조금씩 회비를 걷어 '이왕 배웠던 것, 즐겁게 봉사 활동을 계속하자'고 결정했다. 계속 강사에게 새로운 곡을 배워 연습을 이어갔다. 그러던 지난 연말, 주민센터에서 교실 사용을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많은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고, 주민센터에서 예산 나가는 것도 없이 공간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동장이 바뀌고 담당 공무원이 바뀌어도 매주 1회 2시간 교육받고 연습하는 공간 사용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신규 동장이 부임하고 1층의 집무실을 교육실이 있는 2층으로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 사용이 금지된 것이다. 평생교육프로그램 담당자의 말은 간단명료했다. "교실 사용에 대한 다른 프로그램과의 형평성 문제와 소음문제 때문"이란 것이다.

그런데 주민센터의 2층과 3층 강당에는 매일 1~2개 프로그램을 한다 해도 비어있는 시간이 사용하는 시간보다 더 길다. 그리고 아코디언과 우쿨렐레 소리보다 더 큰소리를 내는 국악 사물반도 별다른 문제 없이 운영되는 걸 보면 소음문제도 그냥 말뿐인 것 같다.

주민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주민문화센터의 공간에 대해 담당 공무원이 '갑'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고 분개한 어르신들도 있었다. 나는 처음에 설득과 읍소 작전으로 담당 공무원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동장님이 안 된다고 하셨다" 또는 "이미 그렇게 결정이 났고 다른 프로그램에 사용할 예정"이라는 답만 반복되었다.

그래서 동장을 만나 한 번 더 부탁하기로 했다.

"동사무소 예산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어르신들이 그냥 교육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에 봉사하겠다고 모여서 일주일 단 2시간 사용할 뿐인데요."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엄동설한에 어르신들이 어떻게 무거운 악기들을 들고 옮기겠어요? 춘삼월이 올 때까지 몇 개월 만이라도 유보해주세요. 춘삼월 즈음에는 옮길 수 있도록 교육공간을 확보해볼게요"라고 말했다. 동장님은 큰맘먹고 허락하는 표정으로 "그건 들어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노인복지관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공간사용이 가능하도록 부탁했다.

본격적으로 모든 복지관과 문화원 등에 일주일 2시간 정도 공간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러 돌아다닐 예정이지만, 그래도 음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악기 연주를 배우게 한 노인복지관이 은빛소리 봉사단 어르신들에게 편하다. 80대의 독거 어르신은 "따스한 복지관 밥을 먹고 공부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부탁했다.

마침 관장이신 신부님께서 한동안 지역에 안 계셔서 답을 못 들었다가 개강 시즌인 춘삼월이 다 되어서 공간 사용이 허락이 났다. 어르신들은 처음에 많이 좋아했는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악기 보관 장소가 부족하고 이전과 강의 시간대가 달라져 좀 불편했던 것 같다. 새로 지도하는 강사는 봉사활동을 연습하기 위한 공간이 아무래도 아쉬웠던 모양이다.

은빛소리 음악봉사단 회원 중 한 분이 과감하게 말했다. "우리 집 지하실이 좀 넓으니 그곳을 깨끗이 청소해서 사용하자"고. 교육 강사는 매주 1회 시간을 정해서 지도하고 그 외 시간에는 회원 누구든지 와서 악기를 연습하자고 했다. 단 봉사 연주하게 되면 매일 모이기로 했다. 회원은 "악기를 따로 보관하지 않고 그냥 케이스에 넣어두면, 무겁게 운반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전에 합창반을 운영할 때의 추억이 생각이 난다. 합창반이 만들어졌는데 피아노가 없었다. 그러자 합창단 회원 중 할머니 한 분이 수백만 원 하는 피아노를 들여서 합창 연습을 하고, 충북 대표로 국립극장 해오름무대에서 몇 번 공연했다. 보람찼던 기억이다.

마찬가지로 아코디언반 회원 할아버지가 자기 집 지하를 내놓으셨는데, 사실 그 지하는 7층 건물의 지하로 세를 놓아도 매월 월세가 썩 괜찮게 들어올 빌딩이다. 이렇게 나름대로 절약하며 평생 이루어간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내놓는 사람내음새 진한 분들도 있다.

우여곡절 많았지만... 결국 새로운 둥지가 생겼다

이제 새로 입사해서 100일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적응되었는가 싶지만 연일 새로운 사건이 밀려와 집중하고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은빛소리 음악봉사단이 무척 그립지만 당분간은 어르신들이 옮긴 공간에 못 가볼 것 같다.

5월 어버이날이 되면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나이 또래인 어르신들이 모인 공간에 카네이션과 떡을 가지고 가서 허해진 내 가슴 안에 사랑을 채우고 나누러 가야겠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일하지만 이전에 기획자로 일하던 경험을 가지고, 축제나 요양원 등  공연할 곳을 물색하면 어르신들도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났어도 마음은 함께 한다고 좋아하실 것 같다.
#은빛소리음악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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