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꼭' 대자보 쓴 고2 "부끄러운 일 아니잖아요"

[인터뷰] "형님, 누님들 투표 꼭 해주세요" 대자보로 주목받은 만덕고 2학년 전지환 학생

등록 2016.04.19 11:58수정 2016.04.1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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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환군과 학교 교정을 걸으며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지환군과 학교 교정을 걸으며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태원

20대 총선 투표일을 하루 앞둔 12일, 부산대학교 학생회 전용 게시판에 한 고등학생이 쓴 '투표 호소' 대자보가 붙었다. 직접 손글씨로 작성한 3장의 대자보는 SNS를 통해 퍼져 나갔고, 이후 기사화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관련 기사: 어느 고2의 대자보 "형님 누님들 꼭 투표하세요")

전지환 학생을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전군의 부모님과 통화 후 점심시간을 맞춰 만덕고를 찾았다. 만덕고 교정에선 점심시간을 이용해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학생들 틈에 노란 리본을 단 학생에게 "혹시 2학년 전지환 학생 알아요"라고 물었다. 그가 "어, 전데요"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우연히도 전군을 만났다. 다음은 전군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점심시간, 만덕고등학교 교정에서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이곳에서 전지환 학생을 바로 만날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점심시간, 만덕고등학교 교정에서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이곳에서 전지환 학생을 바로 만날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송태원

- 실명까지 밝히며, 투표 독려 대자보를 붙이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투표 참여하자고 플래카드도 걸고, 방송에서도 투표하자고 하잖아요. 나이가 안 돼서 투표는 못 하지만 투표 참여하자고 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실명으로 해야 신뢰감이 더 가잖아요. 부끄러운 일 하는 거 아니니까요."

- 부산대학교에 대자보 붙인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먼저 글을 쓴 뒤에, 대자보로 옮겨 적었습니다. 부산대학교에는 제가 직접 못 붙였고요. 아는 형들이 도와줬어요. 한 명이라도 더 투표하면 좋잖아요. 대학생 형 누나들이 투표 많이 하면 인들이 청년들 목소리에 귀 기울일 거고, 자연스럽게 제가 대학생 되고 어른 되면 좀 더 나은 나라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부담감 전혀 없이 담담하게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좀 놀랐습니다."

- 대자보에서 세월호 참사, 위안부 협상,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청년실업에 대해 언급했는데, 여기에 대한 지환 학생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어요.
"세월호 참사 2주기가 지난 16일이었잖아요. 사람들이 '그만할 때 됐다'며 뭐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학여행 가다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 저도 수학여행 가다가 그렇게 죽을 수 있잖아요. 왜 정부는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을까요? 세월호 선장과 몇 명만 처벌받고 진짜 더 큰 잘못한 사람들은 아직 처벌 안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잊을 수 있을까요?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에 상관없이 정부에서 독단적으로 위안부 협상을 처리한 거잖아요. 그걸 보고 '대한민국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1학년 때 한국사를 배웠습니다. 만덕고가 혁신학교라서 토의 토론 수업을 일반 학교보다 많이 합니다. 역사적 사실은 변할수 없지만 어떤 사람은 그 사실에 대해 '잘된 일이다'라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서는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 하나의 국정교과서로 공부하게 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거나, 그 일에 대한 여러가지 비판적인 생각이 없어지는 거니까, 단지 더 많이 외우는 일이 되지 않겠어요. 교과서가 한 가지로 획일화되는 건 안 된다고 봐요.

그리고 대학생 형 누나들이 알바만 하고, 정규직은 되기 힘들잖아요. 조금 있으면 제가 겪게 되는 일이고요, 청년실업과 취업에 대해서는 고등학생도 관심이 많아요. 친구들 장래 희망 중에도 공무원이 제일 많고요.


청년실업의 경우엔 청년들이 많이 투표하면 청년의 표를 얻어야 하니까, 청년의 목소리에 국회의원들이 귀 기울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교육감 선거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직접적인 당사자니까, 고등학생도 투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다른 언론사에서 혹시 인터뷰 요청이 오지 않았나요?
"학교로 몇 군데에서 연락 왔다고 들었고, 아버지도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고 했어요. 저에게 직접 연락 온 적은 없어요. 일베에 안 좋은 댓글도 달리고 했다던데, 전 신경 안 써요. 유명해지고 싶어서 한 일 아니라서 인터뷰 안 한다고 했어요. 제가 한 말이 꼬투리 잡혀서 이용될까 봐 걱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도 그렇고 담임선생님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있는 그대로' 기사를 내 줄 거라고 생각해서 인터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한 사람이 확실히 맞는지 아버지에게 확인전화를 하고 있는 전지환군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한 사람이 확실히 맞는지 아버지에게 확인전화를 하고 있는 전지환군송태원

- 학생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하자는 게 제가 대자보를 쓴 이유입니다. 야당에 투표하자고 대자보를 적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나 자신의 의견 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맞잖아요.

- 어른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꿈이 있나요?
"특별한 꿈은 아직 없어요. 한가지 꿈을 정해놓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많아요. 여행 많이 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 만나고 세상을 직접 가까이서 보고 싶어요. 그런 제 이야기를 글로 적고 싶어요. 작가나 사회복지사도 되고 싶고... 정치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싶어요.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게 꿈이라면 꿈입니다.

- 주위의 반응은 어때요?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너도 고2면 다 컸다. 네 생각대로 행동하며 살면 된다'고 하고, 친구들은 기사에 이름 나왔다고 부러워하는 애도 있어요. 댓글도 많이 달렸다고 하던데, 전 안 봐요. 선생님들은 걱정하시는 것 같고... 전 학급의 반장이니까 계속 반장으로서 역할 열심히 하려고요. 주위 반응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안 써요. 그 전처럼 매일매일 열심히 생활하려고요."
덧붙이는 글 부산교육청 블로그 뉴스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전지환 #투표독려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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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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