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갑에서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당선인이 14일 오전 당선 후 첫 일정으로 안산 화랑유원지내 세월호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 당선인을 환영하고 있다.
권우성
20대 총선에서 박주민 후보는 서울 은평갑에 출마해 당선했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의 전략 공천을 받았던 그는 '세월호 변호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지난 1월 25일 더민주에 입당한 그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던 그의 성향으로 미루어 진보정당에 입당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었다.
박주민 후보가 더민주보다는 진보 정당에 어울린다는 것은 그의 이력이 말해 준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의 법률 대리인을 맡기 이전부터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들의 법률지원을 맡아왔다.
또한 경찰차벽과 야간시위 금지조항 등 논쟁적 이슈들의 헌법소원을 제기해 각각 위헌과,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진보적 가치의 구현을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던 그가 진보정당이 아닌 중도성향의 더민주에 입당했으니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민주 입당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자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의혹 어린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때문'이라고.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하면 당연히 '세월호 지우기'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면 현실적으로 더민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의 답은 이처럼 아주 단순명료했다.
세월호가 지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보다 강한 야당의 힘이 필요했다던 박주민 후보는 결국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최홍재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그가 승리하자 언론의 관심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러나 그의 당선보다 더 큰 화제거리는 따로 있었다. 박주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인형탈을 쓰고 선거운동을 했던 분들이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들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 것이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희생자의 부모들은 박주민 후보 선거사무소의 청소일을 도맡다시피 했고, 매일 시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이 한 마음으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죽했으면, 그리고 얼마나 절실했으면. 심연 가득히 채워져 있을 간절함과 절박함, 진상 규명을 위한 끝모를 허기가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일 것이다. 국가, 정부, 의회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은 박주민 후보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졌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세월호 마케팅'에 주력했던 박주민 후보는 지역민의 선택을 받고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