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하의 후쿠시마 사진에 '사람'이 없는 이유

[서평] 우리는 후쿠시마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등록 2016.04.22 08:26수정 2016.04.2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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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후쿠시마의 악몽이 재연되는가. '지진 도미노'가 일본을 강타했다. 구마모토 현의 강진 이후 무려 600여 회에 달하는 여진이 계속됐다. 게다가 진원이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강진의 진원지에서 불과 120km 떨어진 곳에 '센다이 원전'이 가동 중이어서 공포는 더욱 확산된다. 또한 전문가들은 쿠마모토 현의 지진이 활단층에 영향을 줄 경우, 시코쿠 활단층 위에 있는 '이카타 원전'도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재앙은 국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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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표지 . ⓒ 반비

5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지진 때문이었다. 사고 이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쿠시마 원전은 하루 300톤 가량의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계속 배출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바다는 오염되고 있다. 흘러드는 방사능 물질로 인해 수산물 안전에도 빨간등이 켜졌다.

30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유라시아 전역에서 150만명이 목숨을 잃고 벨라루스 지역 마을 480여 개가 사라졌다. 방사능 재앙으로 인한 피해는 천문학적이고 광범위하며 지속적이다. 원전으로 인한 재앙은 국경을 넘는다. 후쿠시마 사고를 단순히 알본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책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은 2013년 3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일본 내 6개 지역을 순회한 정주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사진전에 관한 대담을 기록한 것이다. 사진작가 정주하, 역사학자 한홍구,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 다카하시 데쓰야,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매개로 후쿠시마의 시간과 공간을 사유하며 종결되지 않은 재앙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정주하의 카메라에 담간 후쿠시마의 오늘은 대재앙이 휩쓴 지역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운 모습을 띠고 있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서도 나무는 푸르고 풀과 꽃들은 자란다. 그것은 사람의 흔적이 없는 비참함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으로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원전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대자연을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다.


'제 사진에는 사람이 거의 없지요. 제가 사람을 찍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없어서입니다. 이 말의 뜻은 그 당시 현장에서 여전히 살고 계신 분들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고통 속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야 하는데, 제가 그 일을 해낼 자신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저널리스트가 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신 제가 선택한 길은 현장에 사는 분들의 고통이나 파괴된 현장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것 보다는, 이면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어 관람자 스스로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정주하, 184쪽)

대담자들은 "원전 사고 같은 사건을 하나의 국가나 하나의 국민의 이야기로만 가둬서는 안된다"(260쪽)고 입을 모은다. 서경식은 "방사능 재해는 일본이 국책으로 도쿄전력과 함께 전 세계에 끼친 가해입니다. 전 세계의 바다를 더럽혔습니다. 공기도 더럽혔습니다"라며 "그래서 사실은 전 세계를 향해 사죄하고,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 그런 사안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근대 역사를 통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다른 나라를 식민지배하고, 패전 후 소위 말하는 '전후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 온 국책의 결과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라며 "이 사고를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더욱 넓게, 국경을 넘어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86쪽)라고 말했다.

특히 24개의 원전을 가동 중인 핵 밀집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더더욱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남의 집'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 더구나 경상남도 양산과 경상북도 영덕까지 활성 단층이 뻗어 있기 때문에 한국의 원전도 결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후쿠시마는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동아시아적 대처는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었다. 바로 옆집에서 어마어마한 재앙이 터졌는데도 피해 확산과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의 대응이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대담자들은 동아시아의 역사 문제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1920년대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에서 일제 식민지배의 울분과 고통을 노래했다. 정주하가 보기에 원전 사고는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 없이 '전후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국책의 결과물이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로 '들'을 빼앗겼다면, 현재는 원전으로 인해 '들'을 빼앗겼다는 인식이다. 나아가 일본이 이번 재해를 통해 과거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준 고통, 슬픔, 굴욕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고 본다. 정주하가 사진전 제목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경식은 "조선, 한국 사람들이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사건을 상상하고자 할 때, 그 실마리로 식민지 시대 자신들의 경험을 참조한다는 의미이고, 역으로 일본 사람들은 조선인들이 식민지 시대에 받은 마음의 아픔, 상처를 후쿠시마를 실마리로 참조하여 생각한다는, 서로의 상상력을 잇기 위한 시도"(260쪽)라고 평가했다.

'동아시아 전체가 지역의 안전이나 평화를 위해 흉금을 터놓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는데, 그 큰 이유 중 하나는 역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는 일본이 근대 100년의 역사 속에서 침략하거나 식민지 지배를 했던 지역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 지역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역사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 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서경식, 92쪽)

'패전으로 대일본제국은 멸망하고, 일본국이 새로 태어나면서 그 반성과 교훈 위에 '부국'도 '강병'도 중단된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부국'에 대한 국가적 욕망은 원자력 발전이라는 형태로 경제 최우선의 확대 노선을 계속했습니다. 이것이 파탄에 이른 결과가 '후쿠시마'가 아닌가 합니다...(중략)...일본이 군사력으로 영토를 확대하려 한 역사적 과정을 떠받치고 있던 국가적인 욕망이나 사상은 1945년 패전으로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를 경험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기마무라 히데야, 187쪽)

후쿠시마는 일본만의 사고로 국한짓는 위축된 상상력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역사적 확장과 공간적 확장이라는 다층적인 문제 안에 존재한다. 책을 읽으면서 후쿠시마 사고를 내 문제, 내 가족의 문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는 적극적인 사고가 제 2, 제 3의 핵 재앙을 막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핵 재앙에 경계가 없듯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며 역사를 성찰하고 연대하는 일에도 경계는 없다.
덧붙이는 글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정주하, 서경식 외 지음 / 반비 펴냄 / 2016. 3 / 16,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 후쿠시마와 식민주의, 후쿠시마와 연대, 후쿠시마와 예술

서경식.정주하 외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2016


#후쿠시마 #체르노빌 #핵 발전소 #원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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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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