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로 포섭? 유죄 인정된다면 사법부의 수치"

검찰,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 구형

등록 2016.04.26 00:49수정 2016.04.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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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가 만든 오해로 가득한 사건이다. 오해로 유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증거도 전혀 없다" (문현웅 변호사)

"만약 유죄가 인정된다면 사법부의 수치이자 대한민국의 수치다. 기막힌 현실이다. 억울한 누명을 풀어 달라" (장경욱 변호사)

25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316호 법정(제 1형사부, 재판장 윤승은). 피고인을 변호하던 두 변호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 두 변호사는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날 피고인석에는 수의 차림의 40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반국가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간부에게 포섭돼 자신의 지인에게 북한을 찬양하는 의식화 교육을 시킨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돼 지난 해 12월, 1심에서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손씨는 2001년 9월,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시로 유학을 떠났다. 이 곳에서  일본어 어학연수원 기숙사에서 지내며 일본어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면서 지하철 역 입구에서 타코야키(밀가루 반죽 속에 잘게 썬 문어를 넣어 동그랗게 구워 파는 간식) 장사를 하는 한국인 A씨와 자주 어울렸다. A씨의 아들은 한국 대학에서 유학중이었다.

조선총련 분회장과 어울렸다...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죄'

손 씨는 지난 2004년 귀국한 이후에도 지난 2011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일본여행을 갈때마다 A씨를 찾아갔다. 손씨는 한국 친구 3명과 함께 일본여행을 하다 A씨의 집에서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지난 해 손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북한 공작원이자 조총련 간부인 A씨에게 포섭돼 사상교육을 받았다는 게 첫 번째 혐의였다. 친구들과 함께 일본여행을 간것도 A씨의 지령을 받고 관광을 빙자해 일본으로 유인, A씨에게 인계하려한 유인행위로 간주했다.

A씨의 집에서 빌려온 <불가사리>라는 북한영화를 본 것은 손 씨가 사상교육을 받은 증거로 채택됐다. 영화 <불가사리>는 신상옥 감독이 만든 것으로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쇠를 먹고 자라는 불가사리라는 괴물을 소재로 한 영화다. 조선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를 빌려 읽은 것도 사상교육을 받은 증거로 인정됐다.


손씨는 1심 법정에서 "조선총련이 북한에 우호적인 단체로만 알았을 뿐 반국가단체인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항변했다. 또 "A씨에게 영화(불가사리)와 신문(조선신보)을 빌렸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고 지령을 받거나 북한을 찬양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친구들과 일본여행? "A씨 지령 받고 인계하려한 유인행위"

손 씨는 이날 변호인의 질문에 "A씨에게 조선신보를 빌린 것은 일본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과 검찰 조사 내용에 대해서도 "A씨를 간첩이자 일본 경시청이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부정적으로 말하고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추궁하고 압박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허위로 진술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A씨와는 순수한 관계였고 전혀 의도한 게 없었다"며 "A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재판정에 서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이어 "이 일로 중형이 선고되더라도 A씨를 만난 데 대한 후회는 없다"며 "다만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검찰은 "피고가 저지른 범행은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구형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손 씨에 대해 "조선총련 간부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 국민을 일본으로 유인해 회합하고 이적표현물을 취득·소지했다"며 "국가 안보에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범죄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변호인 "분단체제가 낳은 오해로 가득 찬 사건"

이에 대해 손 씨의 변호인들은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문현웅 변호사 : "검찰의 공소내용을 보면 손 씨가 북한을 위해 주요한 활동을 하는 조총련 간부인 A씨에게 포섭됐고, A씨의 지령에 따라 한국인 친구들을 데리고 가는 포섭 활동을 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A씨가 북한을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사실 입증이 전혀 없다. 지령을 내렸다는 증거도 없다. 북한을 찬양 지지했다는 행위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입증되지도 않았다.

A씨가 조총련 샷포르 분회장이라고 하는데 현장조사를 위해 가서 살펴보니 상호 부조를 하는 계모임 수준으로 분회원도 소수였다. 조총련 활동을 한 실적도 없었다. 오히려 A씨는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게다가 지령을 내리고 누구를 포섭할 지위도 아니었다. 이 사건은 분단체제가 낳은 오해로 가득 찬 사건이다. 수사기관에서 통신감청까지 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오해로 유죄판단해서는 안 된다.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해 달라"

장경옥 변호사: "이 사건은 우연한 계기로 자연스럽게 동포간의 정을 나눈 일일 뿐이다. 이걸 왜 법정에서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심지어 경찰은 A씨의 일본인 친구에 대해서까지 내사를 하고 A씨의 연락책으로 묘사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불가사리'라는 괴물 영화를 보고 포섭됐다? 만난 지 몇 개월만에 포섭됐다? 만약 이게 유죄로 인정된다면 사법부의 수치이자 대한민국의 수치다. 기막힌 현실이다. 억울한 누명을 풀어달라"

손 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내달 27일 오후 열릴 예정이다.
#국가보안법 #조선총련 #대전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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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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