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북인사묘' 관리인 부부가 대접해 준 낙도주와 토종감자.
신은미
'재북인사묘'는 60대로 보이는 한 부부가 관리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소를 겸하는 살림집 주위에 밭과 작은 과수원을 가꾸면서 살고 있다. 묘지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자 남편 되는 분이 집안으로 들어가 술 한 병을 들고나온다.
집에 붙어 있는 과수원에서 키우는 복숭아로 담근 '낙도주'라는 술이다. 떨어질 '낙(落)', 복숭아 '도(桃)', 술 '주(酒)', 즉 나무에서 떨어진 복숭아로 담근 술이란 뜻이다. 저절로 나무에서 떨어진 어린 복숭아와 나무를 발로 차 떨어진 복숭아를 주워 담근 술이라고 한다. 와인보다는 쎄고 소주보다는 약하다. 복숭아의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번엔 부인이 뭔가 담긴 쟁반을 들고 나온다. 살구와 찐 감자. 감자는 어렸을 적 먹어봤던 토종 감자다. 작은 것은 살구보다 조금 크고 기껏 해봐야 계란만 하다. 이것들이 박바가지 안에 담겨있다. 우리 할머니들이 깨지면 실로 꿰매 쓰던 바로 그 바가지. 쟁반 위에 함께 있는 소금은 엷은 회색빛이다. 처음엔 후춧가루를 뿌린 소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염전 소금이란다.
얼른 작은 감자 하나를 집어 들고서 거칠어 보이는 소금을 찍어 냉큼 베어 물어 본다. 흙냄새와 어우러진 구수한 감자맛이 나를 반세기 이전으로 되돌린다. 어린 시절 외가 향취가 물씬 풍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