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에 부쳐- 난파선 선장의 탈출

최은영 전 회장 일가의 주식 매각 논란... 대주주의 초월적 권한이 문제

등록 2016.04.28 09:44수정 2016.04.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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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들을 기억한다. 조타실 문을 걸어 잠그고 배와 운명을 같이하는 선장, 현악기들을 연주하는 악사들... 침대 위에서 생을 함께 마감하는 어느 노부부의 장면도 나온다. <타이타닉>의 기록물로 볼 때 이 노부부는 아마 당시 뉴욕 최대 '메이시 백화점'의 오너인 회장 부부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특등실의 승객들은 우선적으로 구명선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고령의 회장은 젊은 하녀의 생명을 지켜주고자 승선을 포기하고, 부인도 남편을 따라 침실에서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그 하녀가 생존 후 세상에 알린 내용이다. 각 장면들은 영웅적 리더십의 모습들이었고, 세월호 침몰 직전의 선장과 선원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증권시장에서 세월호의 선장과 유사한 일이 또 일어났다. 바로 침몰하고 있는 한진해운의 전 회장과 그 친족 들의 주주 탈출행위다. 그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매도했다. 아니, '팔아먹고 떠났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들의 행위가 시장에 전해지면서 주가가 더 내려 주주들에게 피해를 줬다면 주주에 대한 '절도행위'로 표현해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22일 한진해운은 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정상화를 위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공교롭게도 최은영 전 회장과 두 딸이 보유하고 있던 한진해운 주식 전량을 매각했다고 공시한 다음 날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과 두 딸에 대해 불공정거래에 대한 혐의로 조사에 나섰다. 이처럼 모든 포인트는 내부자거래 및 불공정거래에 맞추어져 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또 한 번 대주주 및 친인척 모럴 해저드 행태의 연장선에 있어 심하게 놀라거나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실은 존재하는데 분명한 물증은 없고, 당사자는 우연의 일치를 주장하면서 면책을 주장하고 있어 대충 넘어갈 것이라 사람들은 예상한다.

이 글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 비난의 숟가락을 하나 더 올리려는 것은 결코 아니며 커튼 뒤에 가려진 시장의 또 다른 면을 들추기 위함이다. 

대주주들이 증권시장에서 수익을 목적으로 주식을 매도하는 행위가 증권거래법상으로 불법은 아니다. 경제학자를 포함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중대한 결함과, 중소주주들과의 비형평성, 더 나아가 세상도리와 물리학의 원리에 어긋나는 현상이 발견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증권시장에서 대주주와 투자자인 중소주주의 관계는 상생, 즉 윈윈을 표방한다. 즉, 기업의 자금조달과 투자자들의 재태크의 결합이다. 여기서 대주주는 증권시장에 상장해 거액을 거둬들이면서 무조건 윈(得)을 달성한다. 문제는 그 반대편에 있는 투자자들이다. 즉, 이들에게 이익으로 돌아오느냐 하는 문제이다.

최초 공모가로 주식을 취득해 상대에게 더 높은 가격으로 팔기 위한 경쟁 과정에서, 특히 불특정 다수의 대중 투자자는 실패한다. 그렇다면 대부분 투자자에게는 증권시장이 구조적으로 '윈-로스(한쪽은 득을 보고 그 반대편은 손해를 보는 현상)'의 성격이 짙다. 대주주가 시장에서 주식을 매도하면 주가가 하락하기 때문에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베푼 자에게 가중 손실을 야기하므로 형평성과 인륜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재화의 사용가치에 관한 것이다. 주식투자자는 주식을 보유하면서 (소액의 배당을 제외하고) 사용가치를 누리지 못한다. 사용가치는 경영권을 지배하는 대주주에게 있다. 주식이 오를 때 대주주는 왕왕 지분이란 이름의 종잇조각을 매도하면서 거액을 챙긴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는데, 심지어는 지분의 반을 팔아먹고도 그대로 사용권을 보장받고 있다. 즉, 지분 50% 감소만큼 경영권의 감소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전가하면서, 안심하고 자신들만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기초수준의 산수의 답과도 다르다. 두 개에서 하나를 빼면 1개가 남아야 하는데, 2개가 그대로 남는 결과가 되어 물리학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대주주들은 대박을 꿈꾸면서 증권시장에 입성한다. 그들의 대박은 제로섬의 증권시장의 구조로 볼 때 곧 투자자들의 쪽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바로 대주주들이 투자자들에 비해 과도하게 누리는 초월적 권력과 비형평성의 탓이기도 하다.
#한진해운 #대주주 매도 #비형평성 #이치에 어긋남 #타이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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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의 소시민입니다.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아 경실련 창립회원으로 활동한바 있고, 중앙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주식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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