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안산역 앞에 있는 한 파견업체의 인력모집 광고판. 2016년 최저임금인 시급 6030원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 조건이 눈에 띈다. 지난해 최저임금인 시급 5580원에 맞춘 급여조건으로 보인다.
선대식
그는 근무조건을 설명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일해요. 이곳 사무실까지는 7시 30분까지 나와야 해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특근해요. 한 달에 28,29일 일하는 '풀근무'예요." 그의 말에 머리가 띵했다. 위장취업에 나서면서 주말 근무는 각오한 일이다. 하지만 일요일에도 일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와 돌을 갓 지난 아이 얼굴이 스쳤다. 자연스레 박노해 시인의 시 <휴일 특근>이 떠올랐다.
너만은 훌륭하게 키우려고네가 손꼽아 기다리며 동그라미 쳐논빨간 휴일날 아빠는 특근을 간다발걸음도 무거운 창백한 얼굴로화창한 신록의 휴일을 비켜특근을 간다.이 시가 담긴 시집 <노동의 새벽>은 1984년에 나왔다. 3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시는 유효하다. 나도 모르게 "일요일은 못 쉬나요?"라고 되물었다.
"일요일에 쉰다고 하면, 회사에서 안 받아줘요."앞서 들른 여러 파견회사에도 장시간 노동을 강조했다. "생산직 안 해봤으면, 다 됐고요. 힘들어요. 자기 시간이 없어요. 하라는 건 무조건 해야 해요"라는 으름장을 들었다. 한 파견회사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출퇴근 시간까지 생각하면, 하루 15시간 이상을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해요. '일찍 퇴근해서 여자친구랑 놀고 싶다'라고 한다면, 그 길로 퇴사하시면 돼요. 생산직은 부지런해야 해요. 일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합니다. 공장에서는 무시당하고, 막말도 들을 거예요. 대우 좋다고 하는 곳에 가서, 속아도 봐야 해요."최저임금에서 에누리 10원도 없다이렇게 일하면 얼마를 받을까. 그는 "시급은 6030원"라고 말했다. 정확히 올해 최저임금이다. "주차·월차 수당도 있으니까, 한 달에 240만 원 정도는 돼요"라는 말이 이어졌다.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 아니냐는 말투였다.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포기하고 받는 돈 치고는 적은 것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장기 근무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당연하다"였다. "공작기계를 가진 회사는 대기업으로부터 계속 주문을 받을 수 있다. 최신 스마트폰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계속 일할 수 있다"고 했다.
파견법은 결원이 생겼거나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에서 파견노동자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파견회사에서 파견법은 휴짓조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제조업을 뜻하는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하겠다며 파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면, 불법이 하루아침에 합법이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을 잘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파견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굴레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 말을 들었을 수많은 파견노동자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서늘했다.
고심 끝에 이곳에 취업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파견노동자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신분증을 복사하고 연락처, 계좌번호를 받아 적은 그는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파견회사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를 깜빡한 게 생각났다. 발길을 돌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가 답했다.
"네? 그런 거 없는데요."[클릭]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기획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