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인사 대신 증명사진 건넨 남자, 왜?

버스에서 만난 네팔 경찰 아르준 고향 마을에서의 하루

등록 2016.04.29 15:27수정 2016.04.2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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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준의 가족. 노부모, 제수씨와 조카. ⓒ 송성영


버스에서 만난 네팔 경찰, 아르준네 집으로 들어서자 뜰 마루에 앉아 있던 노부모가 반긴다. 눈망울이 커다란 아이를 품에 안고 있던 젊은 여인도 낯선 이방인을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아르준의 조카와 제수씨라고 한다. 그녀의 화사한 옷차림이 인상적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곳 네팔 여인들 또한 인도의 여인네들처럼 대부분 전통의상인 사리를 일상복으로 입고 생활한다. 한국에서는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한국의 전통은 장롱 깊숙이 모셔져 있다.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 날에 꺼내 입는 예복이 된 지 이미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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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형제를 길러낸 아르준의 고향집. ⓒ 송성영


납작한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벽체와 나무를 이용해 지은 아르준의 고향집은 이층 건물이다. 아래층은 노부모가 생활하는 작은 방 한 칸과 부엌, 곡식창고가 들어서 있다. 지붕 또한 북인도 산간지방에서처럼 납작한 돌을 얹혔다. 지붕을 버티고 있는 서까래가 훤히 들어나 있는 이층 공간은 창고나 다름없다.

아르준은 다섯 형제 중에 셋째라고 한다. 세 개의 목조 창을 뚫어놓은 이층에서 다섯 형제가 살을 맞대고 생활했다고 한다. 아래층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지만 이층은 텅 비어 있다. 장성한 다섯 형제 모두가 분가하여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어렸을 때 집도 아르준네 집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방 세 칸에 사랑채가 딸려 있었다. 거기서 7남매 9식구가 오글오글 생활했다. 사랑채는 우리 형제들의 공부방이었는데 농한기인 겨울철이 되면 동네 어른들이 화투판을 벌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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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옆에 자리한 닭장.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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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옆에 자리한 외양간. 물소는 다랑이 논밭을 일구는 큰 일꾼이다. ⓒ 송성영


아르준네 집 마당 한옆에 작은 닭장이 있고 그 아래에는 외양간이 있다. 외양간 바로 앞에 밭이 있어 거름내기가 수월할 것이었다. 외양간에는 두 마리의 검은 물소가 있었다. 인도의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네팔의 시골 농가 역시 소를 길러 우유를 짜내 유제품을 만들어 쓰고 있다 한다.

물소는 다랭이 논밭으로 이뤄진 이곳 산골 마을의 큰 일꾼이다. 논밭에서 쟁기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농기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대로 농토를 일궈 생활해온 아르준네 집안은 힌두교를 믿고 있다고 한다. 네팔에서는 약 87%가 힌두교를 믿는다. 힌두교의 나라, 인도보다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힌두교인들은 소를 신성시 여기지만 물소는 도축이 허용되어 있다. 아르준네 집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가 늙으면 어떻게 합니까?"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거나 농사일을 할 수 없는 소는 도축장에 팝니다."

본가 근처에 따로 집을 장만해 살고 있다는 아르준의 동생이 형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말끔하게 생긴 아르준 동생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지를 돌며 노동일을 하여 결혼 자금을 모아 분가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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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산골 농가의 점심식사. 시래기국과 콩자반, 나물 무침. ⓒ 송성영


아르준 동생과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르준의 제수씨와 어머니가 이른 점심밥을 내왔다. 식판에 밥과 함께 시래기국과 콩자반, 나물 무침이 나왔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곳에 오기 전 포카라의 한국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김치찌개를 먹은 지가 세 시간도 채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추장이 들어간 매운 비빔국수를 몇 젓가락조차 뜨지 못했던 아르준은 배가 무척 고팠을 것이었다.

포카라에서 먹은 것이 소화가 채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의 어머니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식판을 비우기로 작정했다. 옆에서 내내 지켜보고 있던 아르준의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맛이 어떠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시래기국이며 나물 무침이며 쌉쌀하니 맛이 좋다고 말해줬더니 환하게 웃는다. 밥을 먹는 내내 아르준 형제는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해왔다.

"한국은 부자의 나라가 아닙니까?"
"네팔보다 부자의 나라지만 잘 사는 나라는 아닙니다."
"나는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습니다."
"한국에 가면 돈을 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행복한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 버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어 행복할 시간이 없는 것이지요."

아르준 형제가 내 말을 다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말에 의아해했다.

"돈을 벌 수 있는데 어째서 행복할 수 없나요?"
"아르준, 당신은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님을 찾아뵙는다고 했지요?"
"예."
"한국에서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일 년에 서너 차례 찾아뵙는 것이 전부입니다."

나는 아르준 형제에게 한국은 그 돈 때문에 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고 또한 그 돈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잃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국에 가면 네팔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심성이 좋지 않은 한국 사람을 만나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된다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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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 고향집을 떠올리게 하는 수돗가의 수채 구멍. 허드렛물조차 함부로 하지 않고 텃밭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 송성영


식사를 마치자 아르준의 제수씨가 집 앞에 설치되어 있는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했다. 수돗가 앞에는 허드렛물이 흘러드는 수채 구멍이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집집마다 들어서 있는 수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거지한 허드렛물은 이 수채 구멍을 통해 텃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옥수수가 심어져 있는 텃밭은 혼작을 하고 있었다. 옥수수대 사이사이에 호박과 감자, 열무를 심어 놓았다.

나의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그랬듯이 허드렛물마저 함부로 버리지 않고 텃밭으로 흘려보내 작물을 키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과 땅이 내준 것 중에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버릴 것은 하늘과 땅이 내준 것을 함부로 하는 생활습관이다. 자연에서 얻은 것을 자연으로 되돌려 놓을 때 자연은 끊임없이 먹거리를 내줄 것이다. 돈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다보면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먹거리가 돈이 아닌 자연이 내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게 된다.

아르준은 나를 마을 앞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했다. 식당을 겸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허름한 여인숙이나 다름없었다. 작은 방을 150루피에 묵기로 했다. 싼 방을 얻고 나니 나의 본래 생활로 되돌아 온 느낌이 들었다.

얇은 벽을 통해 옆방에서 말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심지어 볼일 보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문짝조차 없는 공동 화장실에 낡은 창고나 다름없었던 인도 국경도시 반밧사의 300루피짜리 숙소보다 훨씬 좋았다. 비좁은 방이지만 멀쩡한 침대에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까지 들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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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이 논에서 쟁기질 하는 물소.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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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먹이를 이고 가는 아르준의 늙은 아버지. ⓒ 송성영


숙소를 잡아 놓고 아르준과 함께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 옆에 딸려 있는 밭에는 한국의 강원도 산간마을에서처럼 대부분 감자나 옥수수, 콩을 심어 놓았고 집 담장 주변에는 자두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마을 언덕 너머 산비탈의 다랑이 논에서는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몬순을 앞두고 모내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논 한옆에는 모가 자라고 있었고 그 주변에서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고 있었다.

산 아래 낡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 비좁은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배구를 하고 있었다. 낡고 허름한 건물은 아르준이 다녔던 학교라고 한다. 저 건물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학교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아르준의 늙은 아버지가 소 먹이를 한 짐 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올해 74세라는 아르준의 아버지는 앞니가 죄다 빠져 있었지만 정정했다. 아르준의 늙은 아버지가 그렇듯이 이곳 산골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남자들이었다. 내가 40일을 머물렀던 북인도 산골 마을, 코사니에서는 남자들이 가축의 먹이나 땔감을 지고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가축을 기르고 땔감을 구하는 것은 순전히 여자들의 몫이었다.

아르준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도로 옆에 술병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네팔의 거리는 인도의 거리보다 깨끗한 편이다. 하지만 네팔사람들은 인도사람들과는 달리 한국 사람들처럼 술을 즐겨 마신다.

인도에서는 술을 판매하는 곳을 찾기 힘들었는데 이곳 네팔 시골 마을에서는 구멍가게에서도 술을 팔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을 펼쳐놓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다 늦은 저녁 무렵 옆방에 몇몇 사람들이 입실했다. 이들은 술을 마셔가며 밤새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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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히말라야 설산,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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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꼬리를 닮은 마차푸차레. 세계 3대 미봉에 속한다. ⓒ 송성영


다음날 새벽, 아르준과 약속한 시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산책길을 나섰다. 운동복 차림의 그와 함께 마을 옆 산을 끼고 삼십여 분을 걸어가니 저만치 히말라야 설산이 아침 햇살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르준이 손짓을 하며 내게 말했다.

"저 산이 당신이 보고 싶어 했던 안나푸르나입니다."
"아!"

안나푸르나 오른쪽에는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솟은 설산이 보였다. 언젠가 히말라야 사진을 통해 본 기억이 있어 그에게 물었다.

"저 산도 안나푸르나입니까?"
"아니요. 저 산은 마차푸차레입니다."
"아, 마차푸차레!"

쿰부히말라야의 아마다블람(6812m), 알프스 마터호른(4478m)과 함께 세계 3대 미봉(美峰)으로 꼽히는 마차푸차레(Machapuchare, 6993m). 네팔인들이 신성시하는 산으로 등반이 금지되어 있는 마차푸차레는 히말라야 유일의 미등정 산으로도 유명하다. 1957년 지미 로버트가 이끄는 영국등반대가 정상 50m 앞까지 등반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

두 개로 갈라져 있는 봉우리의 모습이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네팔어로 마차푸차레는 '물고기의 꼬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여 영어로 '피쉬테일(Fish Tail)이라 부르기도 한다. 내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 그가 말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당신이 가고 싶어 하는 안나푸르나까지 갈 수 있습니다."
"무릎이 아파서 걸어 갈 수 없는데, 버스가 있습니까?"
"버스는 없습니다. 지프차로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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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준의 노부모와 조카. ⓒ 송성영


아르준은 아침 식사를 하고 포카라로 나갈 것이라며 내게 함께 갈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젯밤 술을 마시고 떠들어 댔던 숙소 옆방 사람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숙소에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점심 무렵에 당신 부모님 집으로 찾아가겠습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 숙소 식당에서 볶음 국수, 자오민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숙소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담배 한 보루와 사과 주스를 사들고 그의 부모님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이미 떠났다고 한다. 그의 동생 말로는 포카라가 아닌 그의 처자식이 있는 집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서로 영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가 오늘 포카라에 볼일을 보러나갔다가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더 묵고 내일 출발하는 줄 알았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지갑에서 그의 증명사진을 꺼냈다. 오늘 아침 그가 펜팔 친구처럼 내게 전화번호가 적힌 자신의 증명사진을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가 증명사진을 건네준 것은 그 나름의 작별인사였던 것이다. 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네팔로 들어오면서 인도의 심 카드를 네팔 심 카드로 바꾸지 않아 전화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네팔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증명사진을 건네주었던 순박한 그를 떠올릴 것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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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작별 인사 대신 증명사진을 건네주었던 순박한 사내, 아르준. ⓒ 송성영


#네팔 산골마을 #아르준의 고향집 #수채구멍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증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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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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