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고, 학번 높은 게 자랑인가요?

'상호반말, 상호존대' 원칙을 세우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등록 2016.05.03 15:29수정 2016.05.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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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말이야?" ⓒ 무한도전 갈무리


최근 한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있었던 '막걸리 세례'가 논란이 됐다. 다른 대학교에선 복학생의 예비군 훈련 뒤풀이 자리에 1학년 여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나이와 학번에 근거한 위계질서는 한국사회에서는 낯익지만, 때로는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내가 나이와 학번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부수게 된 이야기를 끄적여본다.

#2010년_4월

"아~ 나랑 그냥 점심 먹자. 밥 약속 전날 후배가 연락 안하면 파토지."

2011년 무렵 한 학번 위의 선배에게 들은 말이었다. 난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약속 전날 선배에게 먼저 연락을 안 한 '무개념'(처럼 느껴지던) 동기 대신 공짜 점심을 얻어먹었다. 후배가 선배에게 연락을 하는 게 당연하고 예의인 문화가 당시의 나에겐 너무나 익숙했다.

#2010년_7월

몸담았던 학교 응원단은 훈련 기간 동안에는 학번을 매우 중요시했다. 몇 살 차이가 나든 동기끼리는 철저히 말을 놓아야 했고, 내가 나이가 많을지라도 선배에게는 깍듯한 존대를 해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문화는 나이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았다. 나중엔 같이 응원단을 하는 같은 과 동생이 "일석아~"라고 불러도 어떤 거부감도 없었다.

#2015년_1월


싱가포르 교환학생 생활에선 존대법이 없는 영어를 써야 했다. 존대의 꺼풀을 벗겨내니 그 사람 자체가 더 잘 보였다. 21살의 재슬린은 교환학생 기간에 가장 가까웠던 친구였다. 서너 달을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이를 잊고 그녀를 대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학과에서 그녀와 동갑인 친구들은 나를 고학번 선배로 생각해 대부분 어려워했는데, '나이가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 앞으로는 '상호존대', '상호반말'만 쓰겠다는 다짐을 썼고, 이후 4~5살 차이가 나는 과후배들과 말을 놓았다.

가까운 한 후배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저는 이제까지 선배들에게 말을 놓아본 적이 없어 불편해요." 카톡으로 한참 실랑이를 버리다가 결국 내가 졌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후배에게 어떤 형식을 '강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언어는 사람의 무의식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실제로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 가다.

내가 반말을 쓴다 해도 그를 인격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대하면 큰 문제는 없다. 반대로 존댓말을 써도 상대를 얕잡아보거나 무시한다면 그 형식은 의미를 잃는다. 이런 생각을 거친 후 나는 기존의 인간관계들은 상대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된다면 '상호존대', '상호반말'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상대가 불편함을 표하면 원래대로 하되,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이에 대한 편견을 더욱 경계하며 상대를 대했다. 새로운 관계의 경우 처음부터 서로 높임이나 낮춤으로 시작을 했다.

#2016년_5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난 대부분의 한국인들에 비해 나이에 근거해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중학생이든, 또래든, 칠순의 노인이든 그 사람 자체를 예전에 비해 조금 더 온전히 보려 노력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는 내가 나이에 대한 편견이 문제라고 인식하자마자 된 것은 아니었다.

수험생활 동안 배웠던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과 같이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한순간에 올지 몰라도, 그것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데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약 1년 동안 많은 실수를 했고, 지금도 가끔은 말을 뱉고서 '아차!'하곤 한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는 내 문제를 인식하는 것, 주변의 조력자 혹은 지지자들의 도움, 그리고 노력해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당장 바뀌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끊임없이 예민해지고 인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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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2016년 #2015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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