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들로 인산인해, '통인시장'에 얽힌 사연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20]

등록 2016.05.10 11:07수정 2016.05.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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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대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우측 4층 건물)와 시인 김광규 생가 터(좌측 2층 건물)
국내 최대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우측 4층 건물)와 시인 김광규 생가 터(좌측 2층 건물)유영호

청전 이상범의 집에서 나와 다시 옥류동천 물길을 따라 걸어 보자. 그런데 물길로 다시 접어 드는 순간 이곳 한옥주택가 치고는 꽤 큰 4층짜리 건물이 눈에 띈다. 이곳은 현재 국내 최고 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는 '참여연대'이다. 1994년 300여 명 회원이 '참여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사회 건설'을 목표로 시작한 시민단체였지만 2007년 8월 지금 보이는 커다란 건물을 신축하여 사용할 만큼 크게 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서울시장, 서울시교육감, 국회의원 등을 배출하며 자신들 꿈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편, 참여연대 건물 바로 왼쪽 여러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선 2층 슬라브건물(통인동74)은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광규의 집터이다. 역시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중인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서촌에는 여전히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예술인들 집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蘭以證交(난이증교), "이 난초로 사귐의 증표를 삼는다"

뿐만 아니라 참여연대 뒤편에 위치한 한옥(통인동128)은 윤복영의 집이다. 윤복영은 우당 이회영이 독립운동을 할 당시 그의 제자이자 동지였다. 이회영이 군자금 마련을 위해 조국에 돌아왔을 때 항상 몸을 피하던 곳이기도하다. 이런 인연으로 석파란(石坡蘭·흥선대원군의 난초 그림)의 대가였던 이회영은 그 감사의 표시로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는 부채에 난을 친 뒤, '蘭以證交(난이증교)'라는 글을 남겼다.

조국해방의 뜻을 품고 싸웠던 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으며 그들의 후손들만 남았지만 그 동지적 인연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09년 윤복영의 아들 윤형섭 전 교육부장관은 우당 이회영으로부터 받은 난초그림을 그동안 가보처럼 지켜왔지만 두 분의 아름다운 인연을 후세에 알리고자 우당기념관에 기증하기로 하였다.

우당 이회영 일가는 만주로 항일운동을 떠난 뒤 집안의 호적조차 이곳 윤복영의 집에 올려놓았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이런 사연으로 인하여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전 국정원장 이종찬과 현 국회의원 이종걸의 원적은 바로 이곳 통인동 128번지로 되어 있는 것이다.

낡아서 오히려 아름다운 '대오서점'


 조대식, 권오남 부부의 이름에서 한자씩 뽑아 지은 가게이름으로 1950년 문을 연 ‘서울의 오래된 가게’가운데 하나이다
조대식, 권오남 부부의 이름에서 한자씩 뽑아 지은 가게이름으로 1950년 문을 연 ‘서울의 오래된 가게’가운데 하나이다유영호

이런 아름다운 인연을 생각하며 옥류동천 물길을 따라 걸으려니 이내 물길 좌측 무척이나 낡은 기와지붕 아래 서점간판이 보인다. 최근 '서울의 오래된 가게' 가운데 하나로 소개된 '대오서점'이다.

2013년 TV드라마 <상어>에서 조해(손예진분)가 죽은 줄 알았던 한이수(김남길 분)와 재회한 곳이 바로 이곳 대오서점이다. 이제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굳이 이런 역사가 없어도 이 낡은 서점은 그 풍모 자체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곳은 1950년 서점으로 문을 열었고, 가게 이름인 '대오'는 이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 조대식과 권오남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것이다. 이 작은 책방을 통해 자식들 교육을 모두 시켰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옛날 참고서나 흔한 소설책을 그대로 안고 대오서점은 나이를 먹어 서촌 명소가 되었지만 이제는 막상 책을 사러 오는 사람은 없다. 고민끝에 다섯째 딸이 가게를 이어받아 북카페로 고쳤다.

이름조차 정겨운 '반달물길'

 '물길'에서 '골목길'로 변한 반달물길의 흔적
'물길'에서 '골목길'로 변한 반달물길의 흔적유영호

한편 대오서점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직선상의 길은 더 이상 물길이 아니다. 이곳부터 옥류동천은 대오서점 앞 작은 골목길을 따라 흐르고 있다. 물길을 따라 만들어진 골목길이다 보니 좁을 뿐만 아니라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이다. 속칭 이 길을 '반달물길'이라 부른다.

이 반달물길을 따라 걸으면 이내 이 길은 '통인시장'안으로 안내한다. 그러니 옥류동천 상류로 오르는 길에 있는 통인시장 일부도 물길 위에 있는 셈이다. 이렇게 물길을 따라 통인시장을 빠져 나오면 시장 입구는 그야말로 여러 맛집들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제2공설시장 '통인시장'

이곳 서촌의 맛집 골목으로 유명해진 통인시장.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시장이라 지명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동네시장에 불과하지만 이제야 서촌, 특히 옥류동천 물길이 관광단지로 개발되어 이곳에 거주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시장이다.

게다가 지난 2012년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들의 설 준비를 탐방하고자 어린 손녀를 데리고 찾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서민들의 설준비를 살펴보며 소통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함께 간 손녀의 옷이 고가 명품 몽클래어의 패딩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일으켰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의 통인시장 이야기는 접어두고 좀 더 과거로 돌아가보자. 본래 이곳 시장은 1941년 6월 인근 효자동 일대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을 위하여 개설한 제2 공설시장이다.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당시 인근 통의동에는 동양척식회사 관사가 들어섰으며, 1926년 총독부, 1939년 총독관저 등이 남산일대에서 경복궁 터로 이전해 오면서 효자동 일대에는 조선총독부 관료 등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편의를 위한 시장이 필요했다.

일제는 병술국치 이후 토지조사사업과 회사령을 통해 조선의 농업과 산업구조를 바꾸며 수탈의 법적근거를 마련했듯이 같은 시기 조선의 상업구조에 대한 재편을 목적으로 시장조사를 하였다.

그리고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36호로 '시장규칙'을 반포하여 조선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 조선의 재래시장은 제1호 시장으로 묶어 놓고, 일제의 새로운 신식시장으로 제2호, 제3호 시장을 추가 편성한 것이다. 제2호 시장은 일반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시장이며, 제3호 시장은 지금의 도매시장 또는 경매시장과 같은 것이다.

특히 통인시장과 같은 제2호 시장은 "현실적으로는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 생활 편의를 제공하려는 목적이 우선적이었다." 그리고 공설시장은 시장규칙에서 정한 제2호 시장에 속하며, 이에 일반적으로 2호 공설시장으로 불렀다.

이러한 총독부의 시장재편 전략에 따라 1919년 명치정(명동2가 25번지)과 종로(견지동 110번지)에 공설시장이 처음으로 생기고 이후 확산되면서 점차 조선의 시장을 장악해 들어갔던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이곳 통인동에도 제2 공설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1941년 6월 일본인들을 위한 제2공설시장으로 개설된 통인시장을 1960년대 개축한 모습(우측 효자상가아파트)
1941년 6월 일본인들을 위한 제2공설시장으로 개설된 통인시장을 1960년대 개축한 모습(우측 효자상가아파트)유영호

일제강점기 세워진 통인동 제2 공설시장은 현재 통인시장 입구 북측에서 있는 '효자상가아파트' 건물이다. 하지만 당시 공설시장으로 개설된 건물은 단층건물로 낡고 좁아 1960년대 후반 5층건물로 재건축 하였다. 현재 지하층과 지상 2층까지만 상가로 사용되고 있으며 3층 이상은 주거지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은 약 50년이 지난 건물로 낡았지만 준공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건물로 청와대직원들과 연예인 등이 거주했을 만큼 고급주택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역사 속에서 탄생한 통인시장이 이제는 서촌여행자들에게는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운 맛집 골목으로 변화한 것이다.

참고로 이곳 통인동에 만들어졌던 공설시장의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1941년 당시 전국적으로 이런 공설시장은 53곳에 설치되었으며, 서울에는 남영동 27-4번지에 1922년 10월 설립된 '용산공설시장'이 아래 사진들처럼 여전히 당시의 건물 모습을 갖고 있다.

 1922년 10월에 설립된 용산 제2공설시장의 현재의 모습
1922년 10월에 설립된 용산 제2공설시장의 현재의 모습유영호

 1922년 10월에 설립된 용산 제2공설시장의 현재의 모습
1922년 10월에 설립된 용산 제2공설시장의 현재의 모습유영호

 1922년 10월에 설립된 용산 제2공설시장의 현재의 모습
1922년 10월에 설립된 용산 제2공설시장의 현재의 모습유영호

#서촌기행 #통인시장 #공설시장 #반달물길 #옥류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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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2015), 『서촌을 걷는다』(2018) 등 서울역사에 관한 저술 및 서울관련 기사들을 《한겨레신문》에 약 2년간 연재하였다. 한편 남북의 자유왕래를 꿈꾸며 서울 뿐만 아니라 평양에 관하여서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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