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다, 내려놓아도 될까" 어느 노동자의 마지막 글

삼성중 하청업체 정아무개씨 11일 숨진 채 발견... 대책위 "해고 안돼"

등록 2016.05.12 15:15수정 2016.05.1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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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2일 오후 8시 40분]

"이제 무겁다. 내려놓아도 될까."

거제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반장으로 있다가 보직 변동으로 사표를 낸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아무개(38)씨가 카카오톡 바탕화면에 적어 놓은 글이다.

정씨는 11일 아침 6시 15분경 거제시 고현동 소재 자신의 아파트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하청업체 취부반 반장으로 일해온 고인은 최근 예정된 부서 통폐합과 보직 변동과 관련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a  11일 자신의 거제 아파트 화장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던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노동자 정아무개씨가 카카오톡 바탕화면에 해놓았던 글이다.

11일 자신의 거제 아파트 화장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던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노동자 정아무개씨가 카카오톡 바탕화면에 해놓았던 글이다. ⓒ 삼성중공업일반노동조합


하청업체는 2개반을 1개로 통폐합했고, 고인은 반장에서 조장으로 강등되었다. 정씨는 10일 하청업체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날 저녁 동료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했고, 사직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고인은 부인과 사이에 9살, 7살, 5살의 세 자녀를 두고 있다. 고인은 삼성중공업 하청업체에서 8년간 일했다. 김경습 삼성중공업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은 "고인은 동료들을 살갑게 챙겨가며 어느 누구보다 우직하고 열심히 일해 왔다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고인의 극심한 스트레스는 약 2개월 전부터 조직개편이 시작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며 "반장에서 조장으로 강등되고, 관리자로부터 그만 두라는 말과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해 부인한테 여러 차례 하소연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그는 "가족들에 의하면, 고인은 10일 출근해서 사직서를 내고, 이날 오후 퇴근해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며 "고인은 동료들과 술자리를 나누고 나서 집에 와서, 자는 큰 아이를 안고서 '아빠가 미안해'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고 했다.

대책위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 결과"


노동․시민단체와 진보정당 등으로 구성된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대책위원회'는 11일 오후 삼성중공업 앞에서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했다. 이날 고인의 어머니와 부인은 길바닥에 앉아 울었다.

대책위는 "고인은 스스로 사표를 써서 제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방적인 직책 강등과 보직변동, 임금 삭감으로 회사에서 쫓겨난 것"이라며 "이는 부실경영의 책임을 떠넘기며 하청노동자로부터 먼저 내쫓는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의 결과"라 밝혔다.

대책위는 "직책 강등은 고인에게 심한 모멸감을 주었고, 임금 삭감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불이익 처우였다"며 "고인은 사표를 쓰며 '개같이 일했고 개같이 쫓겨났다'고 이야기 했던 것"이라 했다.

대책위는 13일 거제 삼성중공업 앞에서 유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a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정아무개씨가 11일 아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이날 오후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대책위원회'는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유가족들이 나와 울기도 했다.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정아무개씨가 11일 아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이날 오후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대책위원회'는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유가족들이 나와 울기도 했다. ⓒ 삼성중공업일반노동조합


a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정아무개씨가 11일 아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이날 오후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대책위원회'는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정아무개씨가 11일 아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이날 오후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대책위원회'는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삼성중공업일반노동조합


정의당 "정부가 나서 시급한 대책 세워야"

정의당 경남도당은 12일 논평을 통해 "사내하청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조선산업 구조조정 정책은 정부와 자본의 타살이다"며 "정부는 시급히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경남도당은 " 현재 조선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불안문제가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 경남도 내 대우조선, 삼성중공업등 중대형 조선소 6개사는 올해 12월까지 2만4412명을 자체 인력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 피해는 고스란히 사내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경남도는 조선 산업 위기극복 종합대책을 통해 고용안정지원과 자금과 세제 등 금융지원, 수주 지원책을 밝히고 있지만 기업살리기 중심의 대책일 뿐 노동자를 살리기 위한 대책은 전무하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경남도당은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은 사회적 타살이라 규정하며, 조선 산업 위기의 책임을 부실 경영의 책임인 기업이 아니라 사내하청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정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정씨 유족들은 회사에 사과와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사측과 구체적인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씨가 소속되어 있었던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대표는 "정씨한테 사표를 쓰지 말고 같이 일을 하자고 설득하기도 했다"고, 원청인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인원 감축은 없고, 원청업체와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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