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떠난 지 1년, 아내가 불러주는 '스승의 은혜'

동료교사들의 깜짝방문... 스승의 날, 저는 '큰 선물' 받았습니다

등록 2016.05.15 13:19수정 2016.05.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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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푸른 5월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 텃밭의 작물들도 아침 햇살에 힘을 받은 듯 파릇파릇합니다. 3월 하순에 심은 감자밭이 무성합니다. 처음 자랄 땐 언제 제구실을 할까 싶어도 봄날에 작은 싹이 자라 어느새 탄력을 받아 모양새를 갖췄습니다.


바쁜 직장일 때문에 며칠 관심 밖이던 텃밭을 둘러보며 아내가 호들갑입니다.

"여보, 벌써 감자꽃이 피려나 봐요? 꽃대가 올라오고 있어요. 감자꽃이 피면 밑이 굵어지는 징조인데, 감사 또 감사하네요."

자연의 이치에 감사하는 아내의 얼굴이 사뭇 진지합니다.

스승의 날 맞아 찾아온 선생님들, 참 감사하다

세상을 살며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 일상 속에서의 삶 자체가 감사할 일입니다. 문득 지나치다가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들이 많지요. 그러고 보면 세상에 감사하지 않을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나는 작년에 38년간의 오랜 교직 생활에서 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텃밭을 가꾸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옛 동료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기쁨의 꽃 선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옛 동료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기쁨의 꽃 선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전갑남

지난 11일(수). 그러니까 스승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날입니다. 혼자서 고구마밭에 고구마순을 꽂는데, 핸드폰이 울립니다.


"교장 선생님, 저희 일과 끝나고 지금 출발입니다. 곧 도착할 거니 그리 아세요."
"내비로 어디 찍고 오는 거 알죠? 조심해서 천천히 오세요? 몇 분이죠?"
"저 포함해서 여섯이요."
"네. 너무 서둘지 말고 오세요."

내가 마지막으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 여섯 분이 오셨습니다. 퇴임하고 만난 얼굴들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며 서로 보듬고 생활했던 옛 동료들이라 떨어진 가족을 만난 것처럼 기쁩니다.

한 시간 남짓 거리를 부랴부랴 달려왔다고 합니다. 동료들은 차에서 내리자 여러 말을 쏟아냅니다.

"진즉 찾아뵙고 싶었어요! 저희, 꽃다발과 케이크를 가져왔어요. 교장 선생님 곁에 저희들이 있다는 것이 기쁘실 것 같아서요."
"농사짓느라 얼굴이 많이 그을리셨어요. 그래도 건강해 보이셔요."

"막걸리 지금도 많이 잡수세요?"
"요즘도 글 많이 쓰시죠? 열 꼭지 넘는 이태리 여행기 다 읽었어요."
"이제 책을 내셔야하는 거 아녀요?"

나는 이렇게 얼굴 보여주며, 퇴임한 나를 잊지 않아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직은 참 힘든 일입니다. 선생님들은 애간장을 녹여가며 교육에 전념합니다. '옛말에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렵고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그야말로 속이 썩을 대로 썩습니다. 천방지축인 아이들을 반듯하게 가르치려는 오늘의 선생님들은 그래도 사명감 하나로 견디며 묵묵히 교단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스승을 공경하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해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동료들은 스승의 날이 코앞이라 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고마운지요?

고마운 마음에 나는 아내가 어디서 강의를 하고 받아온 소품들이 있어 약소하나마 선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텃밭에 자라는 채소를 뜯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내가 가꾼 채소를 아주 소중히 여겨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녁을 대접하려고 우리 동네 인근 작은 포구로 갔습니다. 늘 보던 주인은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차렸습니다.

우리는 막걸리를 따라 건배를 했습니다.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나는 이렇게 찾아주어 정말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좋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날 막걸리 맛은 최고였습니다. 일하다 먹는 막걸리 맛도 좋지만, 기쁨과 보람의 막걸리 맛은 또 다른 맛이었습니다.

내가 근무했을 당시의 여러 가지 일을 떠올리며 지난 일들을 회상하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없지 않았지만, 동료 간의 서로 돈독한 우의로 모든 것을 함께 극복했습니다. 열심히 가르쳐 내로라하는 학교와 견주어 앞서가는 성과를 올릴 때는 보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벌써 지나간 일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내가 계산을 하려는데 "오늘만큼은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한사코 선생님들이 손사래를 쳤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답을...

그날따라 아내는 퇴근이 늦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아내는 요즘처럼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찾아주신 선생님들의 순수함과 동료애가 눈물 나게 감동적이라고 합니다.

"여보, 우리 둘이서 촛불을 켜요. 스승의 날을 축하하면서..."

 선생님들이 돌아가고 보내 준 케익에 촛불을 붙였습니다. 아내와 나는 스승의 날을 자축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이 돌아가고 보내 준 케익에 촛불을 붙였습니다. 아내와 나는 스승의 날을 자축하였습니다.전갑남

 아내가 '스승의 은혜'를 불러 주었습니다.
아내가 '스승의 은혜'를 불러 주었습니다.전갑남

아내는 박수를 치며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합니다. 마치 자기가 오늘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셀카를 찍어 우리 아들 며느리에게 전송합니다.

선생님들은 내가 사는 강화 정족산성에 다시 소풍 삼아 오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때 맛난 거 사준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내는 한 가지 덧붙였습니다.

"여보, 그때 감자 캐서 꼭 드립시다."

감자가 빨리 밑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텃밭의 감자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감자를 수확하여 선생님들께 보낼 생각을 하니 빨리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텃밭의 감자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감자를 수확하여 선생님들께 보낼 생각을 하니 빨리 자랐으면 좋겠습니다.전갑남

#스승의 날 #기쁨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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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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