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김정애, 그들은 동창들 사이에서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행복하단다.
박도
그의 전화가 나를 추억의 세계로 이끌었다. 1980년 여름방학 중에 우리학교(이대부고) 2학년 학생들은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하필 방학 중에 수학여행을 간 사연은 이랬다.
그 무렵 이대부고는 남녀공학 학교로 1학년 네 학급 240명 학생의 자그마한 학교였다. 하지만 남녀공학에다가, 남녀가 반까지 함께 쓴다는 점이 그 당시로선 특이했던 점이다.
나는 1976년 이 학교에 부임했다. 이전 학교와는 달리 여러 모로 이상적인 학교였다. 정말 학생들을 위한, 학생을 존중하는 학교로서, 다양한 교내 행사는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소질과 적성을 발굴케 했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 신입생 환영 구기대회, 합창경연대회, 등산소풍, 생활훈련, 부활절 예배 등의 교내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한 행사가 끝나면 이 학교 최대 축제인 10월 24일 유엔의 날에 치러지는 '모의올림픽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이대부중·고 전교생을 6대 주로 나눠 출전케 하여 이대 대운동장에서 치러지는 이 모의 올림픽대회는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들까지도 참여하는 큰 잔치였다.
그 행사가 끝나면 연말 마무리 겸 성탄예배로, 학교는 1년 내내 크고 작은 행사가 줄을 이었다. 그러자 밖에서 이대부고는 공부는 하지 않고 '노는 학교'라는 비판이 들리기도 했다.
1980년에 부임한 제6대 정식영 교장선생님은 취임 일성으로 교내 전 행사를 대폭 정비한바, 모든 교내 행사는 수업시간과 수업일수를 침해하지 않는 교과시간 내 이루어지게 특단의 긴급조치를 내렸다. 그러자 학생회와 교사들의 학년 담임회에서 일부 행사의 부활을 끊임없이 건의했지만 교장선생님의 방침은 요지부동이었다.
1980년 그해 나는 2학년 2반 담임을 했는데 어느 하루 용감하게 교장실로 갔다.
"교장 선생님 갑자기 학교행사를 대폭 폐지하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마치 숨통을 조인 것처럼 매우 힘들어 합니다. 저희 2학년 가을 수학여행만은 허락해 주십시오.""안 됩니다. 수업일수를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수학여행도 수업의 연장입니다.""잘 알고 있습니다. 하기는 모든 학교 행사가 수업의 연장이지요."그 순간 나는 묘안이 떠올랐다.
"그럼 수업일수는 침해치 않고 수학여행을 가겠습니다.""네?""여름방학 중에 가겠습니다.""….""개학 3일 전에 수학여행을 가면 수업일수도 침해하지 않습니다."한동안 생각에 잠기시던 교장 선생님은 마침내 입을 여셨다."박 선생이 책임지고 갔다 오시오."한 여학생을 업다그래서 그해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의 설악산 수학여행이 성사되었다. 그때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통한 산과 바다 등 대자연에 대한 감상보다 여행 중 특히 밤 행사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들은 여행 중 두 밤에 있을 행사 준비로 여름방학 중에도 등교하여 준비를 했다. 조별 장기 대회, 촌극대회, 미스유니버스대회 등과 행사 피날레인 포크댄스 등으로 주객이 전도된 수학여행이기도 했다.
그해 수학 여행 첫날 행사는 조별 촌극 및 미스 유니버스대회로 밤 10시 무렵에야 끝났다. 숙소 아래층은 여학생, 위층은 남학생으로 분류하여 취침을 시켰지만 학생들은 잠자려고 수학여행을 왔느냐며 밤새 노는 바람에 교사들조차도 거의 뜬 눈으로 지샜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궂은비가 쏟아졌다. 오전 비가 잠시 그친 틈에 설악산 비룡폭포를 등반한 뒤, 오후에는 계속 비가 내려 울산바위 등반 계획 중, 계조암(흔들바위)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우산이나 우의를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 계조암에 오르자 갑자기 또 폭우가 쏟아졌다. 잠시 비를 피한 뒤 하산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심한 오한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그새 비를 흠뻑 맞아 입술이 파랬다. 아마도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데다가 오전 등산으로 지친 듯했다.
그는 내 반 학생은 아니었지만 등에 업었다. 다행히 그는 몸집이 가벼웠다. 그의 담임선생님이 뒤따르면서 서로 교대하여 우리 두 사람은 설악산 소공원 평지까지 그를 업고 내려왔다.
다행히 이튿날은 날씨가 화창하여 여정대로 전 코스를 답사한 뒤 무사히 귀가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해단식을 하자 남학생들이 몰려와 나를 번쩍 들어 헹가래를 쳤다. 하지만 나는 그 일로 한 사흘 종아리 근육통을 앓았다. 아무튼 악천후 속에 강행한 수학여행이었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온, 참 즐거웠던 수학여행이었다.
제자 둘, 잉꼬부부로 나타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