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와 향수, 당신이 망각한 두 단어

임수진 전시회 "당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나요?"

등록 2016.05.18 15:34수정 2016.05.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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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일부터 23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아트부산 2016'에 작품을 내놓은 임수진씨.

19일부터 23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아트부산 2016'에 작품을 내놓은 임수진씨. ⓒ 홍성식


굳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수천 년 전 예술에 관해 내린 정의를 여기에 구구절절 옮겨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문학과 회화는 인간의 삶을 모방한다" 혹은, "예술의 지향은 유미(唯美)에 밀착해 있다" 등등.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시학>을 통해 "철학과 시는 현상의 본질을 해석하는 것에 중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서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볼 때 문학보다 더 오래된 예술 장르인 그림의 경우는 어떨까?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수학한 젊은 화가 임수진(28)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필자는 23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쾌한 수사를 다시 떠올렸다. 다름 아닌 '본질에 관한 해석'이다. 어떻게 보면 만화 캐릭터처럼도 보이고, 또 다른 시각에서 살피자면 철없는 아이들의 붓장난처럼 보이기도 하는 임씨의 그림들.

그러나, 해석이 거기서 그친다면 그건 임수진의 일부만을 본 것이다. 커다란 눈망울로 무언가를 직시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화폭 속 형상은 세간의 '보편적 해석'을 거부하는 듯 보인다. "스스로도 명확히 재단할 수 없는 게 인간의 내면이다. 그 내면 해석의 키워드를 찾아내는 게 작가의 역할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임씨.

순정함,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본질로의 여행

그런 고민 속에서 찾아낸 것이 "유토피아에 대한 지향과 노스탤지어로의 귀환"이라고 말하는 임수진.

복마전의 세상을 허위허위 살아온 성인들에겐 이미 잊힌 단어 '유토피아'와 간난신고의 삶이 이어질수록 더더욱 그리워지는 '과거에의 향수(노스탤지어)'에 자신이 지닌 예술적 재능을 투여하기로 결심한 임씨는 두 단어를 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나요?"

이것이 '본질'에 관한 질문이 아니면 무엇일까.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외부적인 곤궁과 내부적인 고뇌의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내 현재까지도 그것의 '온전한 완성'을 위해 진력하고 있는 임수진. 뉴욕에서의 개인전을 포함, 경상북도 구미에 정착한 이후에도 서울과 대구와 경상남도 창원 등지에서 꾸준히 전시회를 열어온 임씨의 작업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리서울 갤러리의 조운조 대표는 "현대미술의 특성인 팝아트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동시에, 동년배 작가들과는 다른 지향의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는 개성에 주목한다"고 임수진을 평가한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다른 길'을 찾는 것은 험로(險路)다. 임씨는 젊음이 가진 힘으로 그 험로로의 탐험을 자처하고 있는 것.

a  노스탤지어와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담아낸 임수진씨의 그림.

노스탤지어와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담아낸 임수진씨의 그림. ⓒ 홍성식


국내외를 넘나들며 자신의 세계 구축 중

사실 임수진은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작가다. 뉴욕에서 임씨의 작품전을 관람한 미국의 미술평론가 조나단 굿맨(Jonathan Goodman)은 임씨의 그림이 "거짓 없는 진정성을 통해 순수의 공간으로 가고자하는 열망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고 해석하며, "어떤 술수로도 이길 수 없는 순정함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끈다"고 호평했다.

바로 이 임수진의 그림을 부산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후원하는 '아트부산 2016'이 바로 그것. 임수진을 포함한 19개국 191개 화랑이 참여해 모두 40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할 이번 전시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19일 시작, 23일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마지막 사족 하나.

딱 한 번 임수진씨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자신의 작품처럼 순수한 웃음을 보여주며, 미술문외한들에게 친절한 말투로 그림에 관한 설명을 들려주던 임씨의 모습에서 '소탈한 예술가'의 풍모를 본 기자는 이런 혼잣말을 했던 것 같다.

"저런 겸양한 태도라면 앞으로도 못 이룰 경지가 없겠구나."

그것이 그림이건, 음악이건, 문학이건 좋은 예술은 좋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다.
#임수진 #아트부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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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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