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 시험장 중 하나였던 성균관 비천당.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소재.
김종성
대다수 양반 아버지들은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윤원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기 아이들에 대한 차별을 없앤 그는 세상 모든 서얼들을 구제하기 위한 운동에 착수했다. 서얼에게도 무과·문과 응시의 기회를 제공하는 개혁을 추진한 것이다.
윤원형의 행동은 서얼을 둔 다른 아버지들과 비교할 때 대단한 것이었다. 다른 양반 아버지들도 서얼 자녀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자식이 자기 앞에서 노비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좋을 아버지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양반 아버지들은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서얼 자녀가 불쌍하기는 하지만, 문제를 고치려고 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을 지배한 남자들은 대개 다 양반가에서 적자로 태어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서얼 형제들이 차별을 받는 것을 보면서 성장했다. 서얼에 대한 차별을 전제로 살면서, 공부하고 출세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서얼 차별이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 기득권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자기의 서얼이 겪는 애환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문제를 개혁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원형은 자신이 정권 실세가 된 점을 활용해서 개혁에 나섰다. 이 개혁은 당연히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다. 재야 선비들뿐 아니라 정부 신하들의 대부분도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소수의 신하들만 찬성했을 뿐이다. 하지만, 윤원형은 문정왕후를 움직이고 명종을 움직일 수 있는 위치를 활용해 개혁을 성사시켰다. 이때가 명종 재위 8년인 1553년이다.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며 통과된 개혁이라, 100% 만족스러운 개혁이 될 수는 없었다. 반대파의 정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개혁은, 서얼의 손자 또는 증손자 때부터 무과 및 문과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서얼 본인은 여전히 응시할 수 없도록 하되, 서자의 경우는 손자 때부터, 얼자의 경우는 증손자 때부터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도 조건이 있었다. 서얼이 양인 여성과 혼인한 경우에만 손자 또는 증손자 때부터 응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누더기 개혁이라는 느낌이 드는 개혁이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반대파의 목소리를 완전히 제압할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원형의 개혁은 서얼들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하고 감사할 만한 일이지만, 대다수가 양반가의 적자 출신인 선비들한테는 정반대 일이었다. 이들한테는 윤원형이 악당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비들은 윤원형을 욕하고 깎아내렸다. 위에서 소개한 <명종실록>의 사관은 윤원형이 개혁을 추진한 동기를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
"자기 첩이 낳은 자식들을 모두 다 사대부 가문과 결혼시켰다. 자기가 죽은 뒤에라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을까봐, 첩의 자식도 벼슬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밀어붙였다."선비들 입장에서는 첩의 자식이 양반가의 자식과 결혼하는 것은 사회악이었다. 그런 사회악을 범한 윤원형이 자신의 죄악을 감추고자 서얼 문제 개혁을 추진했다는 게 사관의 주장이다. 그런 다음에 사관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 외에도 (윤원형의) 흉악한 죄들은 머리털을 뽑아 헤아린다 해도 다 셀 수 없다."서얼들에게 과거 응시의 기회를 제공한 것도 '흉악한 죄'에 포함된다. 이 정도로 당시 선비들은 윤원형이 과거시험 경쟁률을 높인 것에 대해 분개했다. 이것은 윤원형이 사후에 악당이란 평가를 받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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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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