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허수아비로... 아들 발목 잡은 지독한 어머니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사극 <옥중화> 세 번째 이야기, 문정왕후와 명종

등록 2016.05.28 15:19수정 2016.05.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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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옥중화>
드라마 <옥중화>MBC

예나 지금이나 민간 사회에서는, 어머니와 아들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의 힘겨루기가 더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과거의 왕실에서는 달랐다.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아들이 왕이 된 경우, 아버지와 아들보다는 어머니와 아들의 권력 투쟁이 훨씬 더 많았다.

'훨씬 더 많았다'는 표현도 가능하지만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아들의 권력 투쟁을 조장하는 구조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이 된 아들에게, 아버지가 살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구한말의 고종처럼 아버지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왕이 된 경우는 흔치 않다. 반면에 어머니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왕이 된 아들의 예는 무수히 많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된 아들과 권력투쟁을 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쪽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왕을 아들로 둔 어머니는 대비나 태후의 지위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이런 여성들은 남편이 죽은 뒤로부터 아들이 취임할 때까지 왕조의 비상대권을 행사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 기간에 대비는 임금의 권한을 대행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임금을 결정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대비가 좀더 오랫동안 국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아들이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경우에는 수렴청정이란 대리통치를 통해 수년간 국정을 총괄했다. 수렴청정이 끝난 뒤에도 대비는 이따금 국정에 개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비와 임금의 관계에 놓인 어머니와 아들 간에는 권력투쟁이 일어날 소지가 많았다. 어머니 쪽에도 어느 정도의 권력이 보장됐기 때문에, 그런 힘겨루기가 불가피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모녀 관계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다정다감한 모자 관계도 적지 않다. 아버지와는 편하게 대화를 하지 못해도, 어머니와는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자관계도, 국가 권력이란 게 매개되면 한없이 살벌해질 수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왕실의 일원이라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문정왕후 역할을 맡은 배우 김미숙.
문정왕후 역할을 맡은 배우 김미숙. MBC

아들을 이용해 권력 잡은 문정왕후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드라마 <옥중화>의 시대적 배경인 조선 명종시대가 바로 그렇다. 이 시대는 1545년부터 1567년까지 22년간 이어졌다. 이 시대를 풍미한 대비 문정왕후와 그의 아들 명종의 관계에서 우리는 권력이란 것의 냉혹함을 새삼 느낄 수 있다.


2001년 SBS에서 방영된 <여인천하>에서는 배우 전인화가 문정왕후를 연기했지만, 지금 방영되고 있는 MBC <옥중화>에서는 배우 김미숙이 문정왕후를 연기하고 있다. 두 배우가 문정왕후의 권력욕을 잘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의 문정왕후는 톱 배우들의 연기로도 쉽게 표현될 수 없을 만큼의 권력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문정왕후는 조선 제11대 주상인 중종의 두 번째 왕비다. 그가 아들 명종을 낳은 해는 중종 임금 때인 1534년이다. 이때 첫 번째 왕비의 아들, 그러니까 문정왕후 입장에서 '왕의 전처 자식'이 되는 인종은 나이가 스무 살이었다. 당시 인종은 세자 신분이었다.

명종이 태어날 당시에 인종이 이미 스무 살이고 세자였으므로, 명종이 중종의 후계자가 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동생 윤원형을 앞세워 명종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전개했다.

물론 예상대로 중종이 죽은 1544년에 왕이 된 쪽은 인종이었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이 여린 인종을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괴롭혔다. 인종 입장에서는, 문정왕후가 친모는 아니더라도 법적 어머니였으므로 그의 괴롭힘을 피할 길이 없었다.

결국 인종은 이듬해인 1545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때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다. 문정왕후의 괴롭힘과 인종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은 음력으로 명종 20년 4월 6일자 즉 양력 1565년 5월 5일자 <명종실록>에서 확인된다. 억센 문정왕후가 여린 인종한테 억지를 부리며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 결과로 인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문정왕후가 아들의 왕위 등극을 추진한 것은 결코 아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였다. 이 점은 아들이 왕이 된 뒤에 그가 보여준 행동에서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권력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도 나눌 수 없다'

 문정왕후의 무덤인 태릉.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다.
문정왕후의 무덤인 태릉.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다. 김종성

인종이 죽자 명종이 왕이 됐다. 이때 명종은 열두 살이었다. 나라를 직접 통치하기에는 적은 나이였다. 그래서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의 권한을 얻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아들이 스무 살이 된 1553년까지 수렴청정의 권한을 보유했다. 

하지만 1553년 이후로도 문정왕후의 통치는 끝나지 않았다. 수렴청정이 끝났지만, 문정왕후는 '아직 안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권력을 행사했다. 임금인 명종을 무시하고 자신이 실질적인 임금 역할을 했던 것이다. 수렴청정 이후에도 문정왕후가 권력욕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친동생 윤원형과 친척들을 비롯한 친위세력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정왕후 본인이 권력을 행사하고 싶다고 해서, 또 친위세력이 버티고 있다고 해서 권력을 무한정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합법적인 임금인 아들이 "앞으로는 내 마음대로 하겠다"면서 어머니에게 맞서는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성년이 된 아들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것도 아들이 보통 아들이 아니라 임금 아들이라면,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문정왕후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정왕후는 아들을 계속해서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 조치의 내용이 위의 <명종실록>에 소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문정왕후와 명종 사이에 아래와 같은 일이 많았다고 한다.

"자기 입으로 '왕을 세운 공로가 내게 있다'고 말하고, 이따금 임금에게 '내가 없었다면, 네가 무슨 수로 이렇게 됐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명종에게) 함부로 호통을 치니, 마치 민가의 팔팔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일국의 왕인 자기 아들을 야단치고 꾸짖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아들을 자기 그늘에 묶어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문정왕후는 명종을 무력화시키고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명종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권력욕이 강했으니, 아들도 어느 정도는 그랬을 것이다. 명종도 자기 권력을 찾기 위해 어머니에게 맞섰다. 어머니의 호통을 들으면서도, 틈만 나면 독자노선을 모색했다. 대표적 사례는 처가의 일원인 이량을 중용해서 어머니 쪽을 견제하고자 한 것이다. 처가를 앞세워 외가를 견제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하지만, 명종의 시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545년에 왕이 된 명종은 1565년까지도 실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왕이 된 후로 20년 동안 허수아비로 살았다. 어머니에 맞서 끊임없이 독자노선을 모색했지만, 어머니한테 계속 밀린 탓에 허수아비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명종한테 최대 정적은 왕권을 위협하는 귀족이 아니라 어머니일 수밖에 없었다. 

흔히들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도 나눌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이치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문정왕후와 명종처럼 정치권력이 매개된 모자관계인 경우에는 '권력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옥중화 #문정왕후 #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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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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