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이나 표선에 볼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지나치는 녹산로
이영섭
서울의 운전문화가 서울사람들의 생활습관과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듯 제주의 운전문화 역시 그들을 온전히 닮아있다.
처음 제주에 집을 계약 후 이런저런 하자들이 발생해 관리소장님과 현장소장님, 관련 기술자분 등 제주 토박이분들에게 하자보수 요청을 할 일이 많았다. 도시에서의 잘 짜여진 고객응대 프로세스에 익숙한 내게 그들과의 대화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단 무슨 요청을 해도 '안 된다' 혹은 '싫다'고 하는 법이 거의 없다. 1차 대답은 거의 대부분 "알았다"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도대체 언제 올 것이냐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저 "알았으니 가겠다, 다만 언제 갈지는 나도 모른다"가 일반적인 반응이다.
방문하시기 전 꼭 연락을 달라고 해도 도통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대부분은 일단 문 앞에 와서 벨을 누른 후 사람이 없으면 그제야 전화를 하는 게 보통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자보수를 요청한지 근 한 달 만에 담당 기술자 분이 방문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어 그냥 돌아갔단다. 그런데 육지를 왔다갔다 하는 분이라 다음 방문 예정일은 며느리도 모른단다.
처음에는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꽤나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곤 했지만 이제는 이런 제주만의 불편함이 오랫동안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 제주의 고객 응대 프로세스가 도시의 그것처럼 편리해질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제주의 운전문화가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서울의 그것과 똑같아졌음을 의미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