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모인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일베 회원 등이 나타나 '여성혐오' 등에 대해 입장을 드러내며 추모객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충돌을 우려해서 경찰 수십명이 출동해 현장에 배치되었다.
권우성
이런 이간질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낀 게 사실이다. 여성 차별과 혐오에 찌든 세력이 언론, 포털, 교육 등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여성 차별과 혐오는 마치 공기처럼 우리 모두에게 스며든다.
일상 생활에서, 광고에서, 드라마에서, 재밌는 짤방과 각종 유머를 통해서도 말이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존재를 미처 느끼지 못할 정도다. 반면 남성에 대한 멸시,비하는 바로 주목과 반발을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이 여성차별·혐오 사회는 수많은 남성과 여성들을 각자의 성역할에 맞게 길러진다. 남성들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의 남성에게 당한 무시는 참아도 여성에게 당한 무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느끼도록 길들여진다.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더구나 이 헬조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취업난, 저임금, 불안정 노동, 주거난 등에 고통받고 있다. 이런 불만이 더 약자를 향하도록 하는 게 지배층의 주특기다. '여혐이 어디 있냐? 너희부터 남혐하지 마라. 아프다고 징징대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강남역에 일부 남성들이 나와서 이렇게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런 구조의 반영이었다. 결국 이런 현상 자체가 이 사회가 얼마나 여성 차별과 혐오에 물들어있는지 보여 준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특히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진보진영 일부까지 부적절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에 있다. 여성 차별·혐오를 과소평가하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여성혐오는 과장이다', '당신들이 아픈 것은 혐오 때문이 아니다'라며 가르치는 태도로 나타났다.
주된 문제를 '주류화된, 분리주의 페미니즘'에서 찾는 태도도 나타났다. 모든 페미니즘이 주류화된 것도, 분리주의도 아니고 '페미니즘이 싫다며 IS 가입하는' 일까지 일어난 상황에서 그야말로 '표적을 잘못 잡은' 것이다. 서로 손가락질하며 "훈수와 훈계를 두는 방식"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자며 손을 내미는 것"(손희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말이다.
다른 사안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의아스러운 일이었다. 예컨대 노조 탄압으로 노동자가 자결해서 분노한 사람들이 '노조 혐오가 낳은 살인이고 방관하면 우리도 공범이 될 수 있다'며 싸운다면 '노조에 대한 탄압을 넘어서 혐오는 가능하지 않고, 방관자를 공범으로 모는 것은 단결에 해가 된다'는 설교가 나왔을까?
여성 혐오,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적 징후 '여성혐오'가 무엇이고, 왜 생겨났으며 어떠한 구실을 하느냐는 중요한 물음이다. 이 나라는 이 단어가 사전에 등재돼 있지도 않다. 이것 자체가 여성 차별의 반영으로 보인다. 옥스퍼드 사전 등에 따르면 여성혐오(misogyny)는 "여성에 대한 증오와 멸시, 그리고 편견을 포함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뜻한다. '여자를 성적 도구로만 생각하고,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며 남성의 소유, 이용, 혹은 학대의 대상으로 보면서 여성의 자율성과 활력, 감정이나 주체성을 부인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조건 또는 사회적 기회에서 주어지는 차별"인 '여성 차별'과는 구분된다. '여성혐오'는 여성차별의 구조, 제도, 관행을 뒷받침하는 감정, 정서, 문화를 더 넓게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여성혐오는 여성을 무시, 비하, 조롱, 모독하는 발언으로 드러나며 나아가 폭력적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어휘는 이미 역사적·전세계적으로 쓰여 왔고 특히 한국에서는 이번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통해 더욱 명백한 사회적 의미를 얻게 됐다.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는 아래로부터 저항이 폭발하면서 새로운 어휘와 의미를 창조해 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혐오가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걸까? 이미 엥겔스는 사유재산과 가족이 등장하며 여성이 비천한 처지로 전락한 "세계사적 패배"를 언급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자신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성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한 산아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자본주의 들어서 더욱 악화됐다.
이윤만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자체가 인간성의 부정이며 끝없는 차별을 낳지만, 여성혐오는 특별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특히 자본주의 탄생기를 주목해야 한다. 약탈, 학살, 노예거래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기에 여성혐오와 마녀사냥이 넘쳐났다. 이를 통해 공동체 파괴, 성역할 강요, 여성에게 출산, 육아, 가사 부담 전가 등이 이뤄졌다.
이처럼 여성 차별과 혐오는 자본주의 탄생과 역사 속에 새겨진 특징이다. 2차 대전 이후 장기 호황과 복지국가의 시대에 여성운동의 성장 속에 이 문제가 약간 가려지긴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반동과 함께 '혐오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신자유주의는 복지를 축소하고 돌봄 부담을 개별 가정과 여성에게 떠넘겼다. 여성운동이 쌓아 온 성과를 빼앗으려 했고, 여성을 주 타겟으로 삼아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대폭 늘렸다. 고삐풀린 시장 논리는 성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를 강화했다. 불만을 돌리고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도 필요했고 여성은 성소수자, 이주민, 무슬림과 함께 표적이 됐다.
이 모든 것이, 가사와 육아는 당연히 여성들이 도맡아야 하고, 여성이 하는 노동은 별 가치가 없으며, 여성은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 존재하고, 내 고통과 어려움은 무임승차하는 저 '김치녀'들 때문이라는 논리와 주장들이 커지는 배경에 있다.
이것은 여성을 2등 인간으로 보도록 만들고, 무한 경쟁 속에서 낙오한 일부 남성들이 '내가 갖지 못한 저 전리품이 나를 무시하기까지 한다'며 병적 혐오를 표출하도록 만든다. 즉, 여성혐오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두드러진 병적 징후이다.
이 속에서 여성들은 '성형을 안 해도 예쁘고, 재능있으면서 남자의 기를 살릴 줄 알고, 순진하면서 섹시하고, 애도 잘 보고 돈도 잘 벌고, 개념도 있으면서 착해야 한다'는 끔찍한 굴레 속에 사지가 묶여 있다.
이것이 이 헬조선에서 특히 더 심각하다는 것은 여러 수치가 증명한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0%이고, 비정규직의 70%는 여성이고, 기업 임원과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20% 이하이고, 성별 경제·정치·교육에 대한 참여 기회와 권한은 모두 세계 최하위다.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 인터넷상 여성 관련 연관어 1위는 '폭력·범죄·살인'이었고, 2위는 '여혐·비하'였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여혐' 언급량은 무려 21.5배 증가했다. 일베 게시물 중에 욕설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여자'였다. 여기에 남편이나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여성이 2.4일에 한 명꼴이라는 통계(한국여성의전화)까지 더하면 여성혐오에 대한 과소평가는 더 설 자리가 없다.
공감하고, 성찰하고, 배우고, 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