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표지
창비
중학교 3학년생 동호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도청에 남으려 한다.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하지만,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친구 정대를 버리고 도망친 자신을 말이다. 정대는 죽었다. 그의 혼은 아직 그의 육신에서 완전히 떠날 수 없다. 결국 자유로워진 그의 혼은, 그렇지만 갈 곳도 없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갈 수 없다.
은숙은 5.18에서 살아남았다.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결국 살아남았고 그녀의 영혼은 부서졌다. 그렇게 살아남아 출판사 직원이 되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진수는 도청에 끝까지 남아 항전한 이들을 이끌었다. 결국 붙잡혀서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수감되었다. 풀려나고서도 그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다. 유리 조각 같이 산산히 부서진 영혼을 되살릴 방도가 없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6개의 이야기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모두 5.18 당시의 폭력과 상처로 얼룩진 열흘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 아픈 그 이야기들은, 처음엔 살며시 다가와 조곤조곤 가벼울 수 있는 폭력의 기억을 전하다가 갑자기 칼날 같은 그날의 기억을 전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날의 기억이 영혼을 도려내고 부숴버린다면, 그날이 아닌 그날에서 파생된 폭력의 기억은 가볍기까지 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그가 들려주는 폭력과 상처의 서사가 왜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냐는 것이다. 단순히 문장이 가진 아름다움이나 인간의 역사가 아이러니하게도 폭력과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다는 당위론적인 얘기가 아니다.
분명 이 소설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만약 그 잔혹한 참상만을 드러내는 데 천착했다면 이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참상과 폭력에 더해 기억과 상처를 드러냈다. 우린 그 기억과 상처에서 예상치 못한 충격과 더 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원천, '기억의 복원'그렇다면, 바로 그 예상치 못한 충격과 더 심한 고통에서 일종의 가학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한강 작가가 특기를 살려 충격과 고통에 대응하는 극도의 아름다움을 곳곳에 심어놓은 것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이 소설은 다분히 한강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가 그동안 추구했던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그는 그 답으로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게 삶이라고 말해왔다.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없다고도 말해왔다. 이 소설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되는데, 한 단계 더 나아간 듯하다.
태초의 폭력과 고통으로 돌아가서 그 안에 상처받은 존재들을 보듬는, '기억의 복원'까지 진전된 것이다. 바로 그 기억의 복원이 아름다움의 원천이 아닐까. 단지 기억하는 것조차 어려운 그날을, 기어코 기억하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날 광주에는 울려 퍼졌다.
"여러분, 지금 나와주십시오.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기억해 주십시오."
그날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그날 희생당한 사람들을,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사람들을 되살린다.
특히 절대적 피해자였지만 살아서도 가해자로 자신을 인지하고 불우하게 살았던 이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게 크게 다가온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또다시 상처받겠지만, 잊지 말고 그날을 기억해야 한다. 그날은 당사자들만의 기억도, 광주만의 기억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기억인 것이다.
언제쯤 우린 매일 같이 소년이 찾아 와도 웃으며 맞이 하고 그 아픈 기억을 보듬을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그래선 안 될 것이다. 그 아픔은 평생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지하고 기억해야 한다. 다시는 그와 같은 아픔과 상처를 되물림하지 않기 위해.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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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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