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처음 공개된 프리다 칼로의 일기

일기 책으로 출간, 원본 일부는 8월 말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등록 2016.06.09 16:28수정 2016.06.0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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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출신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전시회는 한국에서도 여러 번 열렸다. 그러나 세간에는 알려져 있었지만 그가 인생 후반 십여 년 동안 쓴 일기장은 얼마 전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그의 일기장 전체가 최근 한국어로 번역 정리되어 책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도서출판BMK)로 출간되었다.

예술가이며, 민족주의 혁명가였던 그가 1944년부터 죽기 전인 1954년까지 썼던 일기장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오직 자기 내면과의 소통을 위한 기록이다. 이는 그동안 어떤 자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기장은 잠든 모습처럼 찍힌 9살의 자신을 봉헌하듯 배치한 데서 시작한다. 사진 속의 칼로는 앞으로 다가올 힘겨운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정원 바닥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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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의 표지. ⓒ 도서출판 BMK

아울러 일기장 속 그의 그림과 글에서는 인간에 대한 문제와 내면의 깊은 성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예술적인 자아확립 등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일기는 이미 그 자체로 예술이며, 죽기 전 십여 년 간의 사랑, 행복, 애증, 예술혼 등을 반영하고 있다.

일기 전문을 번역한 안진옥 선생의 칼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담긴 부연의 글과 함께, 행여 누가 볼까 중간 중간 지우기도 하고, 암호를 써 가며 감춘 일기에는 때로는 무의식으로, 때로는 스스로 상상하여 만든 신화로 편하고 자유롭게 그린 그림으로 그의 정신과 혼이 발현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일기장은 칼로라는 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언제나 그는 "나는 내 현실을 그린다"라고 말했다. 사실 독자라면 누구나 그가 말한 그 현실과 사랑, 그림, 남미에 대한 애정 등을 알고 싶어 자연스럽게 일기장을 읽게 된다. 

그의 일기는 사실 너무나 솔직하고, 즉흥적인 면이 강하다. 특히 수많은 그림들은 무의식적인 사고를 그대로 표출하는, 일종의 자동기술법을 이용한 듯 거칠고 강렬하다. 번지기, 물감 뿌리기 기법 등을 이용한 것은 물론, 일기장을 덮으면서 생긴 얼룩을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이용하여 또 다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한 장에 그린 그림의 물감이 뒷장에 배어나온 것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초현실주의 풍의 그림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브레통은 "그의 작품을 초현실주의에 속한다"고 평했다.

일기 속의 다양한 그림은 그러한 성향이 한층 깊게 배어 나온다. 절제나 계산, 조절 없이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미지로 자유롭게, 아무런 구속 없이 표현했다. 천천히 그의 일기를 읽고 있자면 칼로의 육체는 늘 고통 속에 살았지만, 영혼은 구름처럼 하늘처럼 자유로웠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다. 


교통사고와 거듭된 수술로 몸이 좋지 않았던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의 엄청난 독서량은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여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일기를 써가면서 그림과 글로 인생의 고통과 고뇌를 자유롭게 표현하여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그림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일기는 구름이며 하늘이었다. 그는 가슴에 늘 깁스를 했고, 서른 두 번의 수술을 거쳤으며, 욕창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일기는 그 고통을 이겨내는 수단이며 도구였다.

늘 혼자였던 그는 일기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었고, 신비로운 무의식의 세계로 인도되었다. 블랙유머를 통하여 슬픔을 극복하고, 아이러니컬한 행동으로 삶을 희극화 하는 재주가 있었던 그는 죽기 전 십여 년 동안, 몸이 망가져 가는 와중에도 일기를 완성하며 떠나갔다.

평생 남긴 쉰다섯 점의 자화상 대부분에서는 망망한 허공을 응시하는 칼로의 강렬한 눈망울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모습은 삶의 고통과 아픔을 짊어지고, 인생과 정면으로 대치하며 살았던 여인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일기장을 읽고 있으면 기구한 삶과 슬픈 인생 및 그림을 자꾸만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 인생은 마치 그가 예술가로 만들기 위해 혹독하게 매질을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상처 입혔다.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그는 삶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예술혼이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2016년 헬조선(Hell朝鮮)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의 강한 기(氣)로서 위로받고 싶기 때문일까? 비굴함과 굴욕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달리 그는 삶에 대한 에너지와 의지가 넘치는 힘 자체였다. 여인으로 화가로 혁명가로 그는 너무도 강하고 열정적으로 세상을 살았다.  

어쩌면 그는 악마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었으며, 누구에게든 직설적으로 말했고, 그로 인해 그가 가진 개성의 힘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말투는 느렸고, 어떨 때는 남자처럼 느껴질 만큼 중성적이었다. 거기에 묘한 매력이 있었다.

칼로의 일기장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요소들을 손꼽자면 그가 인생 전반부에 걸쳐서 겪어야 했던 심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아즈텍, 마야 등의 고대문명과 '프레 콜럼비언 문화(Pre-Columbian,1492년 콜럼버스가 미대륙 도착 이전의 원주민문화의 총칭)'에 대한 관심과 남편 디에고에 대한 사랑을 꼽을 수 있다. 그에게 멕시코라는 국가의 뿌리는 바로 자신의 뿌리이기도 했다.

특히, 디에고와의 사랑은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이상한 한 쌍'이라는 제목으로 "외눈박이는 덥고, 활기찬 어떤 달에 굉장히 아름다운 네페리시스(neferisis, 대단한 현자)와 결혼했다. 이 부부는 자식을 낳는다. 이상한 얼굴의 남자 아이가 태어났고, 다들 그를 네페루니코라고 불렀다. 그는 로쿠자라는 마을의 설립자이다"라며 자신의 남편인 화가 디에고를 마치 '네페리시스(neferisis)'라고 하는 '미(美)와 풍요를 상징하는 창조신이자 현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 네페리시스는 칼로가 스스로 만들어낸 신의 이름이다. 이런 남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21살이나 차이 나는 유부남이었던 남편 디에고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한 이유다.

일기장이 칼로의 것인 만큼, 일기 주제가 자기 자신이 될 때도 많았다. 일기 중에 한 여인은 기둥 위에 허리가 걸쳐 있고, 한쪽 다리가 없으며, 팔과 손, 얼굴 등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고독이 깊게 묻어나는 얼굴은 자신의 처참히 부서진 육체에 대해 무력하게 체념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림 바로 위에는 '나는 붕괴 자체이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데, 부상으로 인한 칼로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이 그림의 복사본을 만들어 따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영혼이 남다른 여성이었던 칼로는 일기를 통하여 "죽음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나는 죽음을 놀리고 비웃는다"는 자세로 자신의 슬픈 삶을 자화상에 고스란히 반영하였다. 또한 그의 그림 속에는 어머니의 나라인 멕시코의 고대 아즈텍 문명의 계승자로서의 정체성 또한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어 더 대단하다.

1995년에 발견된 칼로의 일기장 전문은 스페인, 라틴 미술 전문 기획가이자 갤러리 반디 트라소의 대표 안진옥이 옮기고 엮었으며, 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아울러 그의 일기장 일부는 지난 5월 28일부터 오는 8월 28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展'에서 전시되고 있다.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지음, 안진옥 옮기고 엮음,
비엠케이(BMK), 2016


#프리다 칼로 #도서출판 B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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