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기본소득(Revenu de Base Inconditionne) 찬성 투표를 호소하는 포스터. 기본소득 덕분에 삶을 선택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의 존엄한 삶과 공공적인 삶에의 참여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The basic income must enable the whole population to live a dignified life and to participate in public life.)스위스에서 실시한 기본소득 국민투표 제안문 중 나오는 문구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후자였다. '공공적인 삶에의 참여'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열풍을 넘어 비정상적인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공무원' 혹은 '공공기관'에 취업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윤추구와 상품거래 관계에 기반한 임금노동과 소비,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는 제한된 영역에서의 삶을 탈피해, 사회적인 관심과 공익의 실현을 위한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다.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또한 "모든 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이고, 단순한 재분배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생태적 전환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행전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소위 '마을만들기'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해왔다. 즉 지역사회 주민들이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호혜성에 기반한 공동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사회의 공공성 확장에 기여하길 바랐다. 그러나 항상 걸리는 장벽이 있었다.
바로 "공공적인 삶에의 참여"가 매우 어려운, '다른 영역'을 상상까진 할 수 있지만 실천을 하기는 지극히 협소한 우리 사회의 현실. 각종 생계 불안에 따른 여유의 상실, 지극히 긴 노동시간으로 인한 일상의 실종, 실패를 보듬지 못하는 미흡한 사회보장제도... 특히 삶에서 시간과 자원을 내어줄 여유가 없는 가난한 서민들일수록 이러한 사회적인 참여는 더욱 어려웠다.
'선택의 자유' 없는 우리 사회잠시 멈춰 서서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시장에서의 생산활동 및 임금노동'으로는 포착되지 않고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는 유의미한 일거리들이 참 많다. 꼭 필요한 활동들도 도처에 있다. 예컨대 이웃들과 함께 친환경적으로 텃밭을 가꾸며 관계 복원과 동네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 직업노동으로는 조금 적게 벌더라도 최소한의 인간 존엄은 유지할 수 있는, 공동체와 더불어 사회 혹은 생태적인 공익 실현에 참여하며 살고자 하는 지향, 이런 삶을 원하는 사람에게 작금의 시장사회는 전혀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 '낙오'의 공포만을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