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해양 조선
KBS1
길을 잃은 조선업, 그리고 갈 곳을 잃은 사람들28일 <시사 기획 창>은 '긴급 르포, 구조 조정 현장에서 길을 묻다'를 방영했다. 프로그램 제목에 '긴급'이란 수식어가 들어갔듯 최근 한국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진원지가 될 조선업의 구조 조정 위기를 다룬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1972년 조선소도 지어지지 않은 울산 백사장에서 현대 조선 기공식으로 첫 삽을 떴던 우리나라의 조선업, 1989년 대우 조선 직장 폐쇄라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2000년 세계 1위의 혁혁한 성과를 이루었던 한국의 대표적 산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니 말이다.
카메라가 처음 향한 곳은 거제의 인력소개소다. 새벽 인력 시장, 카메라가 거기서 만난 것은 'dsme'라는 대우 해양 조선 이니셜이 새겨진 작업복을 아직도 입고 있는, 한때 그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다. 이 새벽 인력 시장을 찾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60%에 해당하던 이들은 대부분 '물량팀'이라는 이름으로 대우 조선 인력의 70~89%를 채웠던 협력업체 직원들이거나, 재하청 계약직들이다.
'구조조정'의 파고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들이닥쳤다. 이제 이들은 조선소에서 일하던 그 복장으로 새벽 인력 시장을 찾는다. 거리로 내몰린 것은 하청업체 직원들만이 아니다.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피해를 감당했던 하청업체들도 휘청거리거나 연쇄 도산 중이다. 그들이 머물던 주거지와 상가 거리는 이제 적막에 싸여 네온사인만 빛난다. 정규직이라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솔선수범'을 외쳐보지만, 하반기부터 들이닥칠 구조조정으로 위기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그저 조선업계의 불황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시사 기획 창>의 진단은 다르다. 이미 <썰전>을 통해 '해먹어도 너무 해먹었다'는, 주인 없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말미암은 총체적 부실은 물론, 근본적으로 '해양 플랜트' 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술력 부족'등으로 빚어진 경영 전략의 부재 혹은 판단 미스는 '분식 회계'를 불가피하게 만들 정도로 너무나 치명적이란 분석이다. 그리고 그런 말 그대로 '부실' 경영은 고스란히 '경영 손실'로 이어지고 이제 '구조 조정'이란 이름 하에 조선업계 노동자들과 그 일가족, 그리고 한국 경제의 몫으로 귀착된다고 다큐는 밝힌다.
심각한 것은 이런 대우 해양 조선의 침체가 그저 한 도시 '거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큐는 거제를 떠나 전남 광양으로 카메라를 돌려, 조선업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하지만 역시나 낙하산 경영진의 무책임한 경영이 문제가 되었던 전남 광양의 포스코로 향한다. IMF 시절에도 불황을 몰랐던 포스코. 하지만 779만톤의 생산 능력을 가진 포스코는 작년 자체 생산량을 577만톤으로 줄이며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체감 온도는 그 지역의 경기로 곧장 전해진다.
하지만 그런 포스코와 달리, 선제적인 구조 조정을 한 '동국제강'은 조선업계의 불황에도 4분기 연속 흑자를 내며, 불황의 늪을 벗어나고 있었다. 결국 세계적 불황이 조선업계 구조 조정의 '면피'가 될 수 없음을 다큐는 밝힌다. 나아가 현재 조선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감당하기 힘든 '해양 플랜트 사업'에 대한 향후 전략과 경영 방식이 현 조선업계 불황 해소의 관건이 될 것임을 다큐는 밝힌다. 덧붙여, 현재 정부가 '능사'로 삼고 있는 '인력 감축' 등의 구조 조정 방식이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