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생리대의 흡수력 광고. 푸른빛 물감을 사용하여 흡수력을 표현했다.
LG유니참
나는 생리를 하지 않는 남성이다. 이 말은 곧 생리에 대해서 배우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뜻이 된다. 사실 어릴 적 모두가 받는 성교육에서도 생리에 대해서 배운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최근 여성 지인을 통해 들은 바로는, 체육 시간에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러 나가 있는 동안 교실에서 몰래(?) 생리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생리를 하게 될 당사자가 아닌 남학생들에게 생리에 대한 교육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겼던 건지 아니면 떳떳하고 공공연하게 교육을 할 만한 주제가 아니었다고 본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에 교실에서는 비밀스러운 생리 교육이 있었다니 정말 놀랄 따름.
학교에서 생리에 대해 배우지 못한 나 같은 학생이 생리를 처음 접한 계기는 누가 뭐래도 생리대 광고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 사춘기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성교육을 꺼리는 부모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대중매체는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일단은 그나마 나은 자료가 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게 답은 아니다. 오히려 생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위험성도 다분하다. 어릴 적 생리대 광고를 보았던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나 역시 생리혈이 파란 색인 줄 알았다. 붉은색 물감을 쓰면 진짜 피 같아 보여서 혐오감을 조장한다나 뭐라나.
게다가 많은 생리대 광고가 생리 중의 편안함을 강조하는가 하면 생리가 떳떳한 게 아닌 비밀스러운 것임을 강조한다. 이런 광고를 보게 될 남학생들이 생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하지 않을까. 생리대 광고는 비당사자인 남성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로 나이를 먹었다.
"너 생리하냐?".... 배우지 못한 남자들의 언어결국 생리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었다. 그 무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이 "너 생리하냐?"라는 말 아닐까. 물론 이 표현은 정말 너 생리를 하는 중이니? 라고 묻는 게 아니다. 매사 왜 그렇게 예민하게 행동하는 거냐,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표현, 정작 여성 당사자들은 불쾌해한다는 사실을 남자들은 알까? 여성이 느끼는 다양한 층위의 감정들이 있을 텐데, 이를 '예민함'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묶는 것과 동시에 생리라는 생물학적 특성을 적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게다가 이 언어는 대상이 확장되어 남성에게도 쓰인다. 생리에 대해 잘 모르기는 매한가지인 내 동성 친구들이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내가 '그런 표현은 올바른 게 아니니 안 썼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스러운 경험을 조롱거리로 삼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남성 집단이 인구의 절반이 평생에 걸쳐 겪는 일에 무지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지 않는가? 이게 이해가 안 된다니. 그런데 정말로 그렇다니까.
나조차 생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남성 역시 무지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여성학자 박이은실의 <월경의 정치학>(2015)을 읽고 나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이후에 나는 생리와 관련된 논의를 위해서는 이 책을 자주 인용하며, 사람들에게 추천하곤 한다. 물론 희망 독자는 남성이다. 당사자성이 없다면 당사자들의 경험이 녹아있는 텍스트를 읽어보는 수밖에. 적어도 그 정도의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여성들이 평생 겪는 일에 귀를 기울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