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음, 범인 찾기보다 중요했던 건

[한국소설이 건네는 이야기 26] 정재민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

등록 2016.07.13 15:09수정 2016.07.13 15:09
0
원고료로 응원
초등학교 저학년쯤에 퀸(Queen) 노래를 처음 들었던 듯합니다. 어느 날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라면서 퀸을 소개해 줬어요. 전축에 LP판을 올려놓고 바늘을 걸자 제겐 너무나 생소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익숙히 들어오던 노래가 아니었는데요, 그중엔 '보헤미안 랩소디'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이 노래가 가장 좋다고 했어요. 들뜬 목소리로 좋은 이유 몇 가지를 말해주기도 했고요. 저는 이유야 어떻든 엄마가 좋다니깐 이 노래가 마냥 좋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헤미안 랩소디'는 제게 엄청 좋고, 엄청 길고, 엄청 웅장하고, 엄청 특별한 노래로 오래도록 기억되었습니다.


나중에 커서야 이런 가사였다는 걸 알고 충격을 좀 받았지만요. 엄마랑 같이 앉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듣던 노래는 이렇게 거친 듯 애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던 겁니다.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엄마, 내가 그를 죽였어요. 그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죠. 이제 그가 죽었어요.)"

a  <보헤미안 랩소디> 책 표지

<보헤미안 랩소디> 책 표지 ⓒ 나무 옆 의자

그러니 정재민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의 제목을 보고 제가 이렇게 예상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아, 살인자가 주인공인 소설이겠구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을 펼치기 전에 전 이런 소설들을 떠올리며 분위기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우선 소설엔 살인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보헤미안 랩소디'에서처럼 아들이 나오긴 합니다. 살인자 아들이 아닌 판사 아들. 그 아들 엄마가 오랜 투병 끝에 죽습니다. 엄마가 죽은 뒤 아들은 엄마와 함께 살던 고향 신해시로 와요. 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낡은 집에서 혼자 살아가려고요. 그러다 우연히 엄마의 죽음에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엄마의 죽음, 그 배후를 파헤치는 아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줄 알았습니다. 소설의 3분의 1까지는 이런 이야기가 펼쳐지거든요. 어이없을 정도로 무책임한 의사 우동규. 그 우동규 뒤에 숨어 무지한 대중을 등쳐 먹는 일에 혈안이 된 의료, 법, 종교, 언론계 사람들. 누가 봐도 위법한 일이 이들의 손아귀를 거치자 버젓이 합법이 되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선 그 아무리 법에 빠삭한 판사여도 허무함과 수치심을 느끼게 될 뿐인 현실.


이런 일련의 부조리한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는 기대하게 됩니다. 앞으로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이 뻔뻔한 악의 무리를 해치우게 될지를요. 그런데 소설은 이러한 독자의 예상을 뒤엎고 도리어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요. 거대한 사건 하나를 주인공 외부에 펼쳐 놓곤 (놀랍게도) 바로 그 사건으로 뛰어들지 않는 거죠. 대신 주인공의 내면으로 뛰어듭니다.

악의 무리를 소탕하러 진흙탕 속으로 달려들어야 할 주인공은 소파에 누워 본인의 무의식 속으로 달려듭니다. 이때, 한국 소설에선 생소한 주제인 정신분석학이 소설의 중심부에 정면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꿈을 꾸고, 의사가 그 꿈을 푸는 과정이 꽤 길게 이어져요. 정신분석학을 다루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지요.


엄마의 죽음, 아들이 해야 했던 것

전 이 장면에서 소설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어요. '우리는 정확한 것을 기억하려다 중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전 이 문장을 기억에 국한하지 않고 받아들였는데요. 그간 제 삶에서 정확함을 추구하려다 놓쳐버린 중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니 정신이 다 아득해지더라고요.

이 문장을 이 소설에 대입한다면 '정확한 것'에 해당하는 건 눈에 보이는 외부의 문제들이고, '중요한 것'에 해당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문제들일 겁니다. 우리 내부에 숨 죽인 채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수많은 문제들. 그 수많은 문제들이 풀리지 않은 채 무의식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소설은 정신분석학을 끌고 온 겁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후배는 이렇게 말하지요.

"의식은 마음의 빙산의 일각이야. 마음의 대부분은 의식 아래 가라앉아 있는 무의식이라고. 괜히 어떤 일이 하기 싫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이 싫거나, 원치 않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도 모두 무의식의 작용이야. 그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아들이 먼저 해야 할 건, 엄마와 결별하는 일이었어요. 물리적 결별이 아니라 정신적 결별. 엄마라는 강력한 환경이 아들 내면 깊숙이 심어 놓은 어둠과의 결별. 결별을 통해 아들은 다시 태어나야 했던 거죠.

질릴 만큼 불행했던 엄마는 어린 아들을 따뜻이 품어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엄마의 모습에 아들은 분노하는 대신 죄책감을 느꼈고요. 엄마의 불행히 다 본인에게서 비롯된 것 같았거든요. 소설은 정신분석을 통해 아들이 어린 시절 받아야 했을 관심과 위로를 보내줍니다. 의사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고, 기다려줍니다. 아들의 잘못 때문에 엄마가 불행했던 건 아니라며 끊임없이 말해주면서요.

아들은 서서히 회복의 과정을 밟습니다. 마음의 병을 품은 채 그 오랜 시간을 버텨냈던 아들의 회복 과정은 그걸 보는 우리에게도 어떤 과정을 겪게 하는 듯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겨누고 있는 날카로운 시선을 부드럽게 보듬는 과정을요.

소설은 이제서야 미뤄두었던 사건을 향해 다시 뛰어듭니다. 더는 정신분석이 필요치 않게 된 주인공이 풀어야 할 건 (순서상) 이제 외부의 문제인 거죠. 주인공의 고군분투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소수의 정의로운 사람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악인들. 법은 악인들에게 죗값을 물립니다. 그런데, 전혀 통쾌하지 않아요. 하나의 생명이 숫자로 치환되는 과정을 씁쓸하게 바라봐야 하니까요.

소설은 그냥 이대로 끝이 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설 초반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합법인 행동이 악이고 위법인 행동이 선일 때도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 제목이 바로 이거예요. 'Mama, just killed a man.' 현직 판사이자 소설가인 저자의 결론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선을 지키는 거였다'는 거죠.
덧붙이는 글 <보헤미안 랩소디>(정재민/나무옆의자/2014년 06월 13일/1만3천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재민 지음,
나무옆의자, 2014


#정재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AD

AD

AD

인기기사

  1. 1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2. 2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3. 3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