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당'을 달리는 네팔 지프차

비좁은 짐칸에서 부르는 흥겨운 노래... 꽃보다 아름다운 인연들

등록 2016.07.16 13:21수정 2016.07.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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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 네팔 예비 여선생들 틈에 꼼짝없이 갇혀야 했지만 행복한 여행길이었다. ⓒ 송성영


란드룩에서 나흘을 보내고 이른 아침 짐을 꾸렸다. 나홀로 숙소를 지키고 있는 젊은 엄마에게 숙식비를 지불한 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자 등짐을 가득 실은 조랑말들이 힘겹게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 비좁은 길 옆으로 한 무리의 안나푸르나 트레킹족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트레킹족들은 평생에 한두 번 만날 수 있게 될 히말라야 설산, 안나푸르나를 향해 서둘러 길을 나서고 있었지만 안나푸르나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란드룩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평생 살아갈 일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포카라로 떠나는 지프차 주변에는 등교를 준비하는 아이들과 대처로 나가는 란드룩 주민 몇몇이 짐을 챙기고 있다. 그 옆에서 흑백 칩을 이용한 캐런볼이라는 놀이를 하고 있었고 한 아낙네가 한가로이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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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차를 타고 포카라로 나서거나 평화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란드룩 사람들 ⓒ 송성영


지프차의 맨 앞좌석에는 운전기사와 조수가 타고 그 뒷자리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앉았다. 그리고 맨 뒤 짐칸에는 양편으로 세 사람씩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었는데 나와 함께 어린 아이와 젊은 엄마가 앉았다. 지프차가 란드룩 마을을 벗어나자 안나푸르나가 저만치 멀어져 갔다.

안나푸르나는 신성하고 아름답다. 아름답고 신성한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그 평화로운 마음이 세상으로 번져나갈 때 세상은 좀 더 살만해 진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거나 품에 넣게 되면 그 아름다움은 꽃처럼 시들게 된다.

아름다운 것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신성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신성한 것을 범하게 되면 그 빛을 잃게 된다. 아름답고 신성한 것은 신성한 대로 거리를 두고 마음으로 품을 때 오래토록 간직할 수 있다.

지프차가 덜컹덜컹 울퉁불퉁한 산길을 내달리기 시작하자 어린아이는 젊은 엄마의 손을 꼬옥 잡고 낯선 이방인의 시선을 피해 그 큰 두 눈을 껌벅 껌벅거렸고 젊은 엄마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창밖을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어딜 가세요?"
"......"
"포카라 가세요?"
"예. 포카라."

이들 모자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나와 함께 이 지프차의 마지막 종착지인 포카라에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며 행복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산문 밖으로 나가는 일이 처음일지도 모를 어린아이는 엄마 손을 꼬옥 잡고 콩딱 콩딱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 것이었고 젊은 엄마는 포카라로 돈 벌러 나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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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차에 우르르 올라타는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네팔 아이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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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네팔 아이들 ⓒ 송성영


지프차는 곳곳에서 멈춰 섰다. 그럴 때마다 등굣길에 나서는 해맑은 아이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조수는 차비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짐칸 좌석에 앉은 아이들은 대부분 여학생들이다.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을 배려한 모양이다. 남자 아이들이 지프차 뒤꽁무니에 매달리자 지프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학교가 가까워졌는지 학생들이 곳곳에서 몰려오고 있다. 안나푸르나 가는 길목에 자리한 마을인 톨카와 란드룩 주변은 삼삼오오 마을을 이루고 있는 산악지대다. 어디에서 이 많은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학교 근처에서 지프차가 멈추고 코밑이 거뭇해지고 있는 한 남자 아이만 남고 짐칸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지만 차비를 받지 않는다.

참새들처럼 흥겹게 재잘거리는 아이들로 꽉 들어차 있던 지프차 짐칸은 10여 분 만에 다시 헐렁해졌다. 다시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내달린다. 내 앞에 앉아 있는 모자의 표정은 여전히 행복해 보인다. 내가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며 맨 처음 숙박을 했던 톨카를 지나 얼마쯤 가서 한 무리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지프차 짐칸에 올라탔다.

하나 둘 셋... 셈을 해보니 여덟 명이다. 내 입에서 '어이구'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여섯 명이 겨우 어깨를 포개 앉을 자리에 무려 열한 명이 앉았다. 아이는 이미 엄마 무릎에 앉았고 몇몇은 서로 짐짝처럼 포개 앉았다. 의자와 의자 사이의 맨 바닥에도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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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하나 꼼지락 거릴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지프차 짐칸에 아리따운 네팔 아가씨들이 우르르 올라 타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송성영


짐칸 맨 안쪽에 몸체를 옆으로 돌려 앉은 나의 두 다리는 영락없이 꼼짝마라 자세다. 그 불편함을 전혀 개의치 않고 서로 포개 앉은 아가씨들을 생각하면 불평불만을 쏟아낼 수 없다. 지옥이 따로 없다. 하지만 '흥겨운 지옥'이다. 아가씨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지프차에서 내내 흘러나오고 있는 흥겨운 노래를 따라 합창하기 시작한다.

잘생긴 버스 차장과 선글라스를 멋지게 쓴 운전기사가 덩달아 흥겨워하며 아가씨들이 요구하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준다. 하지만 나는 꼼지락거릴 수조차 없어 고통스럽고 다친 무릎을 꼼작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 자칫하면 아가씨들의 몸에 손을 댈 수 있어 지프차가 덜컹 거릴 때마다 벌 받는 자세로 두 팔을 올려 천장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 나는 음악소리가 잠잠한 틈을 타서 옆에 앉아 있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다들 어디까지 갑니까?"
"포카라요." 
"나도 포카라까지 가는데... 여기서 포카라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죠?"
"두 시간 이상 가야 합니다."

이런 꼼짝 마라 자세로 두 시간 이상을 더 버텨야 한다. 하지만 고통스럽다는 마음을 먹은들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이 더 커진다. 인도 자이나교의 고행자들이 제 몸을 혹사시켜가며 온갖 기괴한 자세로 명상을 하듯 최악의 자세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불처럼 솟구치는 마음을 물처럼 가라앉힌다. 하지만 지프차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박수까지 쳐가며 따라 부르는 아가씨들의 노래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흥겨워진다.

나는 울퉁불퉁한 산길에 흔들리는 지프차의 율동과 아가씨들의 노래에 몸을 떠맡긴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그 노래 소리에 맞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옆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씽긋 웃는다. 그 어여쁜 미소가 내게 들어와 사춘기 소년의 가슴처럼 콩당콩당 거린다. 아가씨의 미소와 마주치는 순간 아마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나는 아가씨의 시선을 피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건넸다.

"불편하지 않습니까?"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걸요."
"학생들입니까?"
"아니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예비 선생들입니다."
"아이들은 좋겠네요. 흥겨운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녀의 해맑은 미소와 마주보고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앉은 자리가 더 이상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불편해도 참을 만했다. 산악지대를 벗어나자 더 이상 안나푸르나가 보이지 않는다. 안나푸르나가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점점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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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지프차가 출발하기 전에 잘생긴 조수에게 단체 사진을 부탁했다. ⓒ 송성영


내가 버스에서 무작정 따라나섰던 네팔 경찰 아르준의 고향, 룸레이 마을 앞 식당에서 지프차가 멈췄다. 산악지대 마을에서는 아직 옥수수 열매가 맺히지도 않았는데 룸레이 마을의 옥수수는 수염발을 날리며 익어가고 있다.

다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지프차에서 내렸다. 나와 란드룩에서부터 함께 왔던 모자만 남았다. 이들 모자는 점심을 먹을 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없거나 포카라에서 남편을 만나 즐거운 식사를 할 모양인가 보다. 딱히 입맛이 댕기지 않았지만 이들 모자를 두고 식사를 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 식사를 같이 하자는 아가씨들의 손길을 놓고 근처 상점에서 사 온 과자를 이들 모자와 나눠 먹으며 한 끼 식사를 대신했다.

네팔 사람들 역시 인도사람들처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지프차가 출발하기 전에 예비 선생님들이 잘생긴 지프차 조수에게 자신들의 사진기를 건네줘 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 역시 사진기를 그에게 건네줘 예비 선생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 지프차가 출발하자 멈췄던 카세트가 작동했고 다시 흥겨운 노래판이 벌어졌다.

나는 아리따운 아가씨들, 네팔의 예비 선생들에게 동화되어 어느새 그 유쾌발랄 흥겨움에 끼어들고 있었다. 이들은 포카라 근교의 한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며 뒤풀이를 하고 포카라로 되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동안 말수가 거의 없는 조용한 시골 네팔 여성들을 몇 차례 만난 것이 전부였다. 도시 내기 여성들이라고는 하지만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카스트제도가 공존하는 네팔에서 여성들이 이토록 자유롭고 흥겨운 감성을 지녔는지 상상조차 못했다.

"좀 더 사진을 찍어도 되죠?"
"그럼요! 얼마든지요."

몸을 뒤틀고 어렵게 사진기를 꺼내 더없이 불편한 자리를 흥겨운 노래로 풀어나가는 아가씨들을 담아내다가 순간, '지옥과 천당은 공존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과 천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불가에서 흔히 쓰고 있는 일체개고(一切皆苦)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떠올렸다. 일체개고, 일체유심조는 이 짐칸에도 있었다.

무아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에 집착하여 온갖 고통에 빠져 있음을 이르는 일체개고,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화엄경의 핵심 사상인 일체유심조. 지프차 짐칸에서 내가 처한 상황이 그랬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벗어나는가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유쾌 발랄한 예비 선생들은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아이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포카라 외곽에서 우르르 내렸다. 또다시 나와 두 모자만 남고 짐칸이 텅 비었다. 그제야 나는 이미 무감각해져 버린 다친 무릎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몸은 한결 편해졌지만 저들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프차에서 내려 내게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따라 내리고 싶어졌다.

행복은 완성체가 없다. 평생 마주칠 일이 없는 저 인연들과의 짧은 만남이 그렇듯이 언제 어느 상황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이 꽃비처럼 내리다가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포카라 중심가로 들어서고 있는 지프차에서는 여전히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허전한 가슴 속으로 외로움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하지만 지프차에서 내릴 무렵 또 다른 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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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차에 내려 내게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었던 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따라 내리고 싶어졌다. ⓒ 송성영


#안나푸르나 #지옥과 천당 #일체개고 #일체유심조 #아름다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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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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