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 집을 청소하며 버린 톱밥 더미에서 돋은 해바라기 싹과 옥수수 싹.
김현자
올 봄, 봄비 그친 어느 날. 텃밭 한 귀퉁이에서 전혀 뿌린 적 없는 싹들이 돋아났다. 햄스터 집을 청소하며 생긴 톱밥을 모아 부추밭가에 버렸는데, 그에 섞여 있던 해바라기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처음엔 댓 개 돋아나더니 며칠 사이에 스무 개 정도로 늘었고, 봄비가 내릴 때마다 눈에 띄게 자랐다.
다람쥐는 겨울에 먹을 양식을 가으내 바쁘게 끌어 모은단다. 워낙 많이 끌어 모으는 데다가 건망증이 심해 다 찾아먹지 못한단다. 이와 같은 다람쥐 덕분에 참나무나 밤나무는 자신의 어미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쉽게 이동해 싹을 틔운다. 한 나무에서 태어난 형제들끼리 경쟁하지 않아 더욱 건강하게 자라는 행운을 갖게 된다고 한다.
참나무나 밤나무 같은 나무들이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의 건망증을 이용해 번식하고자 그 동물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열매로 맺는다는 것을 오래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햄스터가 묻어놓고 잊어버린 덕분에 생명을 얻은 싹들을 보며 이와 같은 다람쥐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 작은 공간에서 훗날을 위해 먹이를 묻는 것으로 본성을 다하려 했던 녀석이 새삼 대견스럽게 와 닿았다. 녀석이 묻어놓고 미처 먹지 못한 것에서 싹이 튼 것이라 남다르게 와 닿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톱밥쓰레기에서 돋은 싹들이 그저 신기하고 대견해 틈만 나면 그곳으로 달려가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은 싹이었다.
아이들 역시 톱밥 쓰레기더미에서 돋은 싹들이 신기한지 친구들에게 햄스터와 해바라기 싹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들려준 다람쥐 이야기와 함께. 생명의 힘에, 자연의 순리, 그런 것들에 대해 감동의 표현을 하면서. 늦은 밤 귀가한 아이들은 대문을 열기 전 해바라기 싹들이 자라고 있는 곳을 쳐다보곤 했다. "싹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따뜻해진다"며.
봄비가 내린 5월 중순 어느 날. 옮겨 심어도 될 만큼 충분히 자란 해바라기 모종 다섯 포기를 해바라기 새싹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감동하며 모종을 꼭 나눠달라던 분께 보낸 후 나머지 열한 포기를 대문 밖 텃밭 가에 옮겨 심었다.
우리 집으로 올 때 이미 3년 넘게 살아 한 달 밖에 못 살 거라던 녀석은 그 말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쌩쌩하게 우리 집에서 1년을 살다가 5월 말 어느 날 밤 11시에 죽었다. 죽기 30분 전까지 쌩쌩하게 쳇바퀴를 돌리다가. 가족이 모두 있던 시간에 이별인사라도 하는 듯 내 손바닥에서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맥을 놓는 것으로.
그로부터 한 달 쯤 지난 6월 말 어느 날. 그 햄스터가 남기고 간 해바라기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해바라기는 처음으로 키워봤다. 해바라기를 지척에서 바라본 적은 많지만 처음 키워 보는 것이라 깊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거기다 녀석이 남기고 간 해바라기라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남다르게 와 닿았다. 당연히 해바라기 앞에 서는 날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