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조금 더 살 거래... 키우면 안될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햄스터는 꽃을 남긴다

등록 2016.07.26 17:06수정 2016.07.26 17:0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둘째를 가졌을 때 목감기를 심하게 앓은 이후 걸핏하면 목이 잠기곤 한다. 그래서 집안에서 어떤 동물이든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도 밖에서 풀어놓고 키우자'는 과라 개를 좋아함에도 마당 사정이 여의치 못해 그간 키우지 못했다. 지난 십수 년 간 아이들이 "우리도 강아지 키우자"며 떼를 쓸 때마다 이런 저런 온갖 핑계를 끌어다 모면하곤 했다.


"친구가 키우던 햄스터를 이젠 더 이상 키울 수 없어서 내가 좀 맡아줬으면 좋겠다는데…. 햄스터 수명이 길어야 3년쯤인 거 알지? 3년 정도 키웠대. 그래서 한 달 조금 더 살 거래…. 불쌍하지?…. 엄마가 신경 쓰지 않게 청소도 다 해주고 내 방에만 둘게. 안될까?"

지난해 5월 어느 날, 아들이 내 반응을 살피며 이처럼 조심스럽게 말했다. 집안에서 동물이라면 뭐든 키우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것을 잘 알면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개도 못 키우는데 햄스터를 키우자니! 어떤 사정을 떠나 내키지 않았다.

마음이 변해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은 친구가 "사정 때문에 못 키운다"며 동정에 호소해 꼬드기는 것을 스물넷이나 된 녀석이 순진하게도 믿어버린 건 아닌지 지레짐작까지 들어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1년 살다간 햄스터가 남긴 해바라기가 큰 접시만한 꽃을 피웠다.
1년 살다간 햄스터가 남긴 해바라기가 큰 접시만한 꽃을 피웠다.김현자

아이들이 어렸던 1990년대 중반, 아이들 애원을 거절하지 못하고 햄스터 한 쌍을 키웠었다. 그때 겪었던 것들도 떠올랐다. 뭣보다 걸핏하면 저희들끼리 물고 뜯고 싸워서 피를 흘리던 것은 끔찍했다. 어느 날 귀가 물어 뜯겨 상처가 선명한 채로 뻣뻣하게 죽어 있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유쾌하지 못하다.

결국 유쾌하지 못한 채로 기억에 남아 햄스터를 볼 때면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한 달 밖에 살지 못하는 햄스터를 키우자니! 살만큼 살아 수명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녀석을 키운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키우지 못할 사정이 정말 있을 거란 생각과 함께 여하간 주인에게 버림받게 될 그 햄스터가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 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한 후 한동안 떠오르곤 하던 버려진 햄스터 한 마리도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에 반대도 수긍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들은 달려 나가더니 30분도 채 안되어 햄스터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것도 이미 염두에 다 뒀었는지 몇 만원이나 들여 새집부터 이런저런 용품들과 해바라기씨를 비롯한 먹이까지 거창하게 장만해 들고서.


얼마 전 내 생일에는 저 좋아하는 케이크 하나 달랑 안기고 말더니 한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햄스터를 위해 몇 만원을 아낌없이 썼음에 좀 화가 났다. 한 달 어쩌고 한 것은 어떻게든지 키우고 싶어서 거짓말 한 거란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내가 좀 치사하다는 생각과, 햄스터를 질투하는 꼴이 되고 말 것 같아 그냥 꾹 참고 말았다.

십수 년 전 그때처럼 나를 뺀 가족 3인은 햄스터를 무척 좋아했다. 집에 오면 다들 가장 먼저 녀석에게 인사를 했다. 시시때때로 달려가 핸드폰으로 찍어대며 "귀엽다!"며 호들갑 떨곤 했다. 청소도 알아서 다 하겠다던 아들은 예뻐만 했지 톱밥을 헤집으며 방바닥으로 떨어뜨린 톱밥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햄스터 집 청소는 자연스럽게 남편 차지가 되었다.

녀석은 내가 저를 그리 탐탁해 하지 않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쳇바퀴를 돌리다가도 달려와 머루처럼 새까만 눈을 반짝이며 아는 체를 하곤 했다. 유독 내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리 오래지 않아 나도 햄스터를 보러가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 쳇바퀴만 돌리는 녀석이 측은해 짝을 데려오자고 할 정도로 녀석과 정이 함박 들었다.

 햄스터 집을 청소하며 버린 톱밥 더미에서 돋은 해바라기 싹과 옥수수 싹.
햄스터 집을 청소하며 버린 톱밥 더미에서 돋은 해바라기 싹과 옥수수 싹.김현자

올 봄, 봄비 그친 어느 날. 텃밭 한 귀퉁이에서 전혀 뿌린 적 없는 싹들이 돋아났다. 햄스터 집을 청소하며 생긴 톱밥을 모아 부추밭가에 버렸는데, 그에 섞여 있던 해바라기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처음엔 댓 개 돋아나더니 며칠 사이에 스무 개 정도로 늘었고, 봄비가 내릴 때마다 눈에 띄게 자랐다.

다람쥐는 겨울에 먹을 양식을 가으내 바쁘게 끌어 모은단다. 워낙 많이 끌어 모으는 데다가 건망증이 심해 다 찾아먹지 못한단다. 이와 같은 다람쥐 덕분에 참나무나 밤나무는 자신의 어미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쉽게 이동해 싹을 틔운다. 한 나무에서 태어난 형제들끼리 경쟁하지 않아 더욱 건강하게 자라는 행운을 갖게 된다고 한다.

참나무나 밤나무 같은 나무들이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의 건망증을 이용해 번식하고자 그 동물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열매로 맺는다는 것을 오래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햄스터가 묻어놓고 잊어버린 덕분에 생명을 얻은 싹들을 보며 이와 같은 다람쥐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 작은 공간에서 훗날을 위해 먹이를 묻는 것으로 본성을 다하려 했던 녀석이 새삼 대견스럽게 와 닿았다. 녀석이 묻어놓고 미처 먹지 못한 것에서 싹이 튼 것이라 남다르게 와 닿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톱밥쓰레기에서 돋은 싹들이 그저 신기하고 대견해 틈만 나면 그곳으로 달려가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은 싹이었다.

아이들 역시 톱밥 쓰레기더미에서 돋은 싹들이 신기한지 친구들에게 햄스터와 해바라기 싹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들려준 다람쥐 이야기와 함께. 생명의 힘에, 자연의 순리, 그런 것들에 대해 감동의 표현을 하면서. 늦은 밤 귀가한 아이들은 대문을 열기 전 해바라기 싹들이 자라고 있는 곳을 쳐다보곤 했다. "싹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따뜻해진다"며.

봄비가 내린 5월 중순 어느 날. 옮겨 심어도 될 만큼 충분히 자란 해바라기 모종 다섯 포기를 해바라기 새싹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감동하며 모종을 꼭 나눠달라던 분께 보낸 후 나머지 열한 포기를 대문 밖 텃밭 가에 옮겨 심었다.

우리 집으로 올 때 이미 3년 넘게 살아 한 달 밖에 못 살 거라던 녀석은 그 말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쌩쌩하게 우리 집에서 1년을 살다가 5월 말 어느 날 밤 11시에 죽었다. 죽기 30분 전까지 쌩쌩하게 쳇바퀴를 돌리다가. 가족이 모두 있던 시간에 이별인사라도 하는 듯 내 손바닥에서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맥을 놓는 것으로.

그로부터 한 달 쯤 지난 6월 말 어느 날. 그 햄스터가 남기고 간 해바라기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해바라기는 처음으로 키워봤다. 해바라기를 지척에서 바라본 적은 많지만 처음 키워 보는 것이라 깊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거기다 녀석이 남기고 간 해바라기라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남다르게 와 닿았다. 당연히 해바라기 앞에 서는 날이 많아졌다.

 텃밭의 해바라기. 앞에 수북한 것은 상추꽃이다.
텃밭의 해바라기. 앞에 수북한 것은 상추꽃이다.김현자

 장마 중에 수정을 끝낸 해바라기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 사진을 찍은지 일주일 지난 지금은 더 많이 수그리고 있다. 무심코 봤던 것인데...
장마 중에 수정을 끝낸 해바라기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 사진을 찍은지 일주일 지난 지금은 더 많이 수그리고 있다. 무심코 봤던 것인데...김현자

장맛비에 '수정도 못하고 꽃잎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 조바심 내던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마 중에 수정을 마친 해바라기들은 이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씨를 여물게 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눈치다. 자연은 언제나 경이롭고 감동스럽다. 이처럼 감히 인간이 어떻게 결론 내려선 안 되는 그 무언가를 주곤 한다.

해바라기들이 차례로 꽃을 피우며 벌을 모으던 보름 정도 꽃 덕분에 행복했음은 물론이다. 아니 초봄부터 지금까지 해바라기 덕분에 기분 좋고 가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마도 해바라기 덕분에 늘 바쁜 내게 어느 정도의 여유가 흘렀을 것이고, 덕분에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도 희석된 그만큼 내 몸의 면역은 좀 더 강해졌으리라.

우리 집 햄스터가 사람으로 치면 무병장수한 것이라, 죽는 복까지 누렸다고 생각한다. 녀석이 오기 전까진 끝이 그리 좋지 못했던 오래전 그 햄스터들이 생각나 기분이 별로였다. 아이들도 잊지 못하고 있었는지 할인마트 햄스터 파는 곳을 지나며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젠, 덕분에 아이들이나 내게 오랫동안 찝찝하게 남아 있던 기억보다 더 아름다운 햄스터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갖게 됐다.

뭣보다 아이들이 생명과 자연의 힘, 그리고 순리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 그것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게 체험으로 알게 되어 좋다. 햄스터가 고맙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우리 집 햄스터는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가슴에 꽃을 남겼다. 해바라기처럼 밝고 환한, 그래서 생각하거나 볼 때마다 가슴 따뜻해지고 기분 좋은 그런 꽃을. 해바라기를 만날 때마다 생각나리라.
#햄스터 #해바라기 #반려동물 #생명 #자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AD

AD

AD

인기기사

  1. 1 은퇴로 소득 줄어 고민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도 방법 은퇴로 소득 줄어 고민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도 방법
  2. 2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3. 3 서울중앙지검 4차장 "내가 탄핵되면, 이재명 사건 대응 어렵다" 서울중앙지검 4차장 "내가 탄핵되면, 이재명 사건 대응 어렵다"
  4. 4 32살 '군포 청년'의 죽음... 대한민국이 참 부끄럽습니다 32살 '군포 청년'의 죽음... 대한민국이 참 부끄럽습니다
  5. 5 소 먹이의 정체... 헌옷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왜? 소 먹이의 정체... 헌옷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