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반대 의견 듣겠다'는 교육부, 제정신인가

[주장] 성교육 표준안 공청회 같은 공공 행사에서 혐오 발언을 막아야 하는 이유

등록 2016.07.18 11:46수정 2016.07.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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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도 '동성애 확산 반대' 성소수자들의 문화행사인 제16회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이 열린 지난 2015년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마부대 봉사단을 비롯한 기독교 신도들이 모여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
기독교 신도 '동성애 확산 반대'성소수자들의 문화행사인 제16회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이 열린 지난 2015년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마부대 봉사단을 비롯한 기독교 신도들이 모여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유성호

모든 혐오는 무지와 편견에서 출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가 과학과 이론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등장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생학이다. 우생학의 과학적 근거는 취약했지만 학문의 이름으로 우생학 이론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우생학은 20세기 전반에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같은 현상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에서는 우생학이 공고했던 인종 차별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우생학의 영향력이 강했던 당시, 미국은 '피가 섞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이민제한법을 통과시켰고, 수용소에 수감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 시술을 했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독일의 사례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유태인들을 열등한 민족으로 지목했고, 이는 잘 알려져 있듯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혐오가 과학이나 하나의 의견이 될 때, 이런 끔찍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가 된 교육부 공청회

지난 15일 교육부는 '학교 성교육 자료 보완 및 표준안 운용실태 연구'라는 공청회를 개최했다. 교육부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 검토 결과를 공유하고 교육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가 공유한 검토 결과에는 교육 현장의 실태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공청회 자체도 기습적으로 발표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현행 성교육 표준안이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고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청회 개최 자체의 의의는 있었다.

하지만 교육부가 부적절한 토론자를 초빙함으로써 이 공청회는 그나마도 가지고 있던 의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토론자로 성소수자 혐오 단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단체의 교재를 집필한 사람을 섭외한 것이다.


일례로 토론자로 참석한 김지연 한국성과학연구협회 교육국장은 기독자유당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했다. 기독자유당은 지난 총선에서 '동성애 반대'를 구호로 내걸어 문제로 지목된 바 있다. 또한 한국성과학연구협회는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성 행태'로 지목하며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문제가 된 또 다른 토론자인 박세나 서울성모병원 촉탁의는 이 단체가 출간한 성교육 교재의 저자이다.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현장에서 '남성 간의 항문성교가 에이즈나 암 등을 유발한다'는 식의 혐오 발언을 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주최하는 공공 행사에 성소수자 혐오 인사가 초빙되는 사례는 기존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주에서 열렸던 '광주 학생인권 개선 방안 모색 정책토론회'이다. 이 행사에도 성소수자 인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초빙되었고, 이들은 학생인권 조례의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 조항을 문제 삼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15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공청회 (토론자) 섭외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주최한 것이므로 토론자의 면면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특정 사상을 갖고 있다고 해서 토론회 참석자로 자격이 모자란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해명했다고 한다.

공공행사에서 혐오 발언을 막아야 하는 이유

 2016년 6월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2016년 6월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희훈

과연 교육부 관계자의 말처럼, 그저 '사상이 다른' 이 사람들이 토론회 참석자로 나서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첫 번째 이유는 전문성의 결여다. 이 사람들은 성(性)이나 교육의 전문가임을 자처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이론적 근거가 취약하거나 편견에 기반을 둔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령 한국성과학연구협회는 누리집에서 '동성애는 치료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미 미국 심리학회나 미국 아동 정신과 협회는 '전환 치료'가 우울증과 자살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전환 치료' 자체도 이론적 근거가 없거나 근거가 부풀려져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외에도 협회가 내세우는 주장들은 이미 다른 전문가 집단들이 근거가 없거나 옳지 않다고 비판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렇게 자격이 없는 사람들의 의견이 제도에 반영될 가능성이다. 실제로 교육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해 성교육 표준안을 개편하겠다고 언급했는데, 만약 전문성도 없는 토론자들의 의견이 표준안에 반영된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혐오와 편견이 제도적 틀 내부로 진입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일은 이미 벌어졌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 발표한 성교육 표준안 연수 자료집에서 성소수자와 다양한 성적 지향에 대한 지도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성교육 표준안 자체도 이성애자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다양한 성정체성, 성적 지향을 지닌 학생들을 포용해야할 교육부가 성소수자 학생들을 제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이런게 혐오가 아니면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이 위험한 비전문가 집단이 가지게 될 사회적인 영향력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초빙되는 공공 행사에 혐오성 인사들이 섭외되는 것은, 이들이 초청된 다른 인사들과 대등한 전문가라는 제스처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청회에는 교육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성폭력 상담소의 사무국장,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의 센터장과 같은 전문가들이 토론자로 함께 했다.

혐오가 가져올 끔찍한 비극

서두에서 언급했듯, 우리는 이미 혐오가 하나의 학문이 되고 그 이론이 영향력을 가질 때 펼쳐지는 비극을 경험했다. 대량 학살, 합법화된 부당한 구금, 차별과 혐오의 확산이 그 결과물이다. 때문에 우리는 혐오가 과학이나 이론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확산되는 것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 그것이 혐오 단체의 사이비 전문가들이 공공 행사에 초청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교육부의 공청회는 이와 정반대의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문제적이다.
#성교육 표준안 #교육부 #성소수자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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