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낭푼밥상, 본상 차림
송지영
다섯 번째로 나온 음식은 삼색전과 간장젤라틴이다. 고사리 해물전에 무메밀전 그리고 미수전이 나온다. 미수전은 '머리와 꼬리가 없는 전'이라는 뜻으로 잔치 때 쓰고 남은 돼지고기를 잘게 다져 달걀로 만든 작은 완자전에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공평하게 나눠먹도록 만든 향토음식이다.
여섯 번째로 나온 음식은 전복양념찜과 날초기(생표고)구이다. 전복껍질 바닥에 깔린 간수를 뺀 소금은 바다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간이 심심한 사람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일곱 번째로 나온 음식은 한치성게물회로 제주 바다 제철 재료다. 작고 소담스러운 그릇에 담겨 나온 물회는 날것을 못 먹는 내가 그릇의 반쯤을 덜어내고 국물 맛을 봐도 여느 물회집과 달랐다. 비릿한 냄새가 전혀 없는.
여덟 번째로 나온 음식은 맥적과 수박초절임이었다. 처음 갔을 때 맥적이라는 돼지고기 요리가 궁중음식이란 설명을 들었다. 두 번째 가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레시피 여러 가지를 보고 갔지만, 이 집의 맥적은 인터넷에서 볼 수 없는 레시피였다. 숙성방식과 구이방식이 전혀 달랐다. 수박초철임은 애월읍 제철 과일인 수박의 껍질을 초절임한 것으로 신 맛과 달달한 맛이 돼지고기와 환상의 궁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본상, 낭푼밥상은 지슬(감자)을 얹어 심심하지 않은 보리밥에 그 비싸다는 구살(성게)이 잔뜩 들어간 미역국과 제철쌈채소와 자리젓 멜젓이 기본으로 나온다. 수박무생채, 녹차나물, 가지김치, 콜라비깍두기, 매실과 곰피(해산물) 장아찌 그리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제피된장이 같이 나온다.
오미자보리수단과 금귤정과 그리고 꿩엿을 곁들인 송애기떡이 나오지만, 후식에 관한 이야기는 애써 참기로 한다. 가보지도 않고 읽은 것과 사진만 가지고 맛을 보고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놓기로 한다.
'건강식'+'제주'를 위와 마음에 담는 시간이었다.
'낭푼밥상이라는 제주 서민밥상을 대표하는 명칭은 왜?'점심 이후 육지에서 온 두 후배와 함께 명칭 '냥푼밥상'에 관해 얘기하게 되었다. 제주를 사랑하는 두 후배는 서민들의 밥상이란 상징적 명칭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데 의견이 일치 하고 있었다.
아직 정식 오픈도 하기 전부터 명칭에 관해 말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냥푼밥상"은 제주의 문화를 대표적으로 담은 밥상이다. 여성들이 바쁘기 때문에 단촐한 밥상이며. '바릇잡이'한 제철밥상이며, 당시 척박한 제주 환경이 만든 건강한 밥상이다. 제주의 향토요리 전문점이기에 쓸 수 있는 명칭이라 생각한다.
제목은 그럴 듯 하지만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먹을 수 있는 고춧가루 범벅의 조림과 돔베고기, 구이 등의 코스요리에 1인당 4만 원을 내는 제주 향토요리전문점은 더 이상 추천할 이유가 없다.
"상호를 낭푼밥상이라 작명한 것은 제주음식문화의 전통성을 지켜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상호와 상품을 동일하게 여기고 상품으로서의 낭푼밥상을 기대하신 분들이 가격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시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양용진 제주향토요리연구원장 페이스북 글 인용)하지만 '왜?' '낭푼밥상' 말고 제주를 상징하는 밥상에 관한 용어가 따로 있을까?
비록 서민의 상징성을 사용했지만 이 음식점의 상품(商品)은 '상품(上品)'-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60년대 제주인들이 즐겨드셨다는 "낭푼밥상"을 최고의 영양밥상이라 생각한다-이고 체험해보고 나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여행을 가면 담아오고 싶은 그 지역의 소울푸드를 담는 시간이었다.
내 집에 온 손님에게 최선을 다한 음식을 내놓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제철에 나온 재료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식으로. 내 집이 아니고 내가 사는 제주라면 낭푼밥상을 추천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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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좋아 제주도에 눌러 앉은 이주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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