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끌고 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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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 버클리에 오고 나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거리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 명도 만나지 못하는 날이 대다수였는데, 일주일간 통계를 내보니 여기선 하루에 4~5명꼴로 만나는 듯싶다. 미국 장애인 비율이 한국 장애인 비율보다 높은가 해서 찾아봤더니 미국이 4배 정도 높긴 했다. 1)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있을 때 하루에 1~2명씩 만난 건 아니기에 이건 단순한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는 정상(normal)과 비정상(abnormal)을 규정하는 사회구조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다.
거리에 휠체어가 아예 없는 사회와 한 개 있는 사회는 사회 전반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휠체어가 있다는 것은 그 길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 모교인 포스텍은 휠체어가 다니기 최악의 구조다. 공학동과 학생회관에 가기 위해서는 78계단 또는 높디높은 폭풍의 언덕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은커녕 엘리베이터가 너무 작아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는지조차 의문이다. 강의실 문도 너무 좁다. 그나마 학생식당이 휠체어를 위한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기숙사는 그렇지 않으므로 휠체어를 탄 학생이 지내기는 힘들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학교에는 스티븐 호킹이 절대 방문할 수 없을 거라 말하는 게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나에겐 공기와 같은 일상이 누군가에겐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고민하게 만드는 장벽이 될 수 있다.
반면에 UC버클리는 거의 모든 곳에 휠체어를 위한 장소가 있다. 모든 화장실에 장애인 전용칸이 있고, 계단 바로 옆에는 휠체어 전용 도로가 있다. 강의실 엘리베이터도 널찍한 편. 모든 지역이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되어있다.
이런 차이는 누구를 '정상(normal)'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한국이 규정하는 '정상'의 벽은 미국보다 훨씬 높아서, 한국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이 '베푸는' 보살핌을 받는 '그들'로 타자화된다. 이러한 인식은 사회 제반 시설에 그대로 반영된다. 학교, 도로, 화장실 등의 시설에 장애인을 위한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그 시설을 논의했던 주체에 장애인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즉,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정치적 주체가 아니다. 시설을 마음껏 이용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또다시 사회에서 배제되고 또 다른 위계질서의 하위에 놓인다. 미국 기술철학자 랭던위너가<길을 묻는 테크놀로지>에서 '기술은 정치적이다'라고 말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만약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학생이 포스텍에 면접을 보러 온다면 그는 면접을 보기도 전에 진학을 포기할 수도 있다. 지금 나의 눈에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비단 장애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가족, 사랑,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등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있는 모든 범주에 해당된다. 2) 그 경계 속에서 무엇인가는 끊임없이 지워지고, 잊히고, 사라지고 있다. 어떤 것이 보이고 어떤 것이 보이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이 가라앉고 있는 모든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1) 미국 통계국 2010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19%가 장애를 앓고 있고, 한국의 경우 2011년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장애인 숫자가 251만9241명쯤이므로 대충 인구를 5천만 명으로 가정한다면 5% 쯤이다. 그런데 이 통계만 보고 명확히 비교하기는 힘든데, 모든 종류의 장애인이 포함되었고, 수치를 산정한 두 단체의 기준이 같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인 등록 절차에 따라서도 등록 비율이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대략적인 비교의 지표로만 생각하자.
2) 이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내가 자꾸만 '우리'라는 단어를 쓴다는 점이었다. '우리'라는 말은 '그들'이란 개념을 만들고 타자화시킬 위험이 있다. 역시 20년의 사회화는 이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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