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지난 11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한 것에 대해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희훈
지난 19일,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는 교육부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에 대한 파면 처분을 의결했다.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왔던 이 대사는, 정작 영화가 아니라 이 고위 공직자의 입을 통해 온 국민이 아는 클리셰가 되었다.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 3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부 장관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등을 거친 이 고위 공무원은 어쨌든 이 발언 하나로 공직자로서의 삶을 끝마치게 되었다. 별다른 재심 청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나향욱 전 기획관은 공직자로서의 신분을 잃는다. 5년 동안은 공직에 취직할 수 없으며, 연금은 절반 수준으로 삭감된다.
그러나 우린 고위 공직자가 왜곡된 가치관과 그것이 듬뿍 배어있는 발언 때문에 국회에 불려나가고 직장까지 잃어버린 상황에서, 그 발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으니,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구의역에서 죽은 아이가 어떻게 내 아이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한다면 위선이다.""상하 간의 격차가 존재하는 사회가 합리적인 사회다."발언이 있었던 날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기자들 앞에서 쏟아냈던 말들이다. 비난의 여론이 들끓었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조롱했으며, 누군가는 조소했고, 누군가는 슬퍼했다. 다양한 감정이 버무려져 여론은 '나향욱'이라는, 꽤나 오랜만에 만들어진 공공의 적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발언을 듣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본다고 생각했는가생각해 보자. 300명 넘는 국민을 배 안에 놔두고, 그 배가 며칠에 걸쳐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그 사람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단 한 명 사람을 구하지 못한 국가다. 그리고 그 유족의 진상 규명 요구를 '시체팔이'라 매도한 국가다. 이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본다고 생각했는가.
학생과 교사와 민간 역사학자들은 제대로 된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자질이 없으며, 그 '불온한' 역사관을 타파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역사교과서를 쓰겠다고 나선 국가다. 이 국가가 국민을 어떤 수준으로 본다고 생각했는가.
갓 스물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컵라면 한 그릇 채 비우지 못하고, 달려오는 지하철에 치여 죽어야 하는 국가다. "줄 돈이 없어 보상금을 줄 수 없다"는 사주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취급한다고 생각했는가.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10만의 군중을 차벽과 물대포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다. 복면을 쓰고 시위에 나오면 IS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이다.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몇 개월을 중태에 빠져 누워 있는 농민 앞에 고개 한 번 숙이지 못하는 국가다. 이 땅 위에서 무엇을 기대했는가.
세월호 유가족의 살려달라는 외침에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국회에 입장할 수 있는 대통령. 국민적 합의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반대 세력은 '종북'과 '이기주의'로 몰아세우는 정부. 주민들의 반대 시위에 반사적으로 '외부 세력 개입'을 외치는 경찰.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사람으로 취급받기를 기대했는가.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나는 이것이 결코 실언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발언이다. 이제까지 국가가 국민을 대할 때 적용되던, 아주 당연한 원리다. 우리가 인간이기를 기대했는가? "세월호는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눈에, "유가족이 벼슬이냐"고 소리치는 사람들의 눈에, "미개한 국민"을 말하는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인간이기를 기대했는가. 적어도 나는, 그런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민중은 개돼지 취급해도 좋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