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 후회했다

포카라 '외국인거리'에서 나는 어리버리한 '촌놈'이었다

등록 2016.07.27 17:58수정 2016.07.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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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드룩에서 만났던 네팔 모자. 낯선 이방인이 두렵기도 했던 시골 촌놈이었던 내 어렸을 때 모습이 저랬을 것 같다. ⓒ 송성영


다친 무릎 때문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포기하고 일주일 넘게 룸베이, 톨카, 란드룩 산악지대 마을을 배회하다가 포카라로 다시 돌아왔다. 산악지대에서처럼 포카라에서 또 다른 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포카라의 외국인 거리에서는 한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꼬질꼬질한 옷차림에 가장 값싼 음식과 숙소를 찾아다니고 있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인 나를 지나가는 개 보듯 했다.


사실 나 또한 포카라의 페와 호수 주변에 자리한 외국인들의 거리, 레이크 사이드(Lake Side)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온갖 외국인들과 먹을거리가 널려있는 화려한 식당과 기념품 상점으로 넘쳐나는 이곳은 그동안 내가 만났던 순박한 미소로 반겨주는 네팔이 아니었다.

외국인 거리에서도 간혹 네팔의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네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바구니에 무거운 곡식을 이마에 메고 다니는 그들은 대부분 산악지대의 농민들이다. 뼈 빠지게 땀 흘려 거둔 농산물을 값싸게 내다 팔아 외국인들과 똑같은 가격으로 생필품을 구입해야 할 것이었다. 더러는 일당벌이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리의 빈민자로 떠돌고 있었다.

포카라에서 '아름다운 인연' 기대했지만....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식당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란드룩에서부터 지프차를 함께 타고 온 수줍은 많은 네팔 모자가 떠올랐다. 이들 모자의 아버지이면서 남편되는 사람 또한 도시에 방 한 칸 마련하기 위해 일당벌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 식당은 외국인 거리의 중심지에서 조금 외떨어져 있었다. 식당 안에는 30대 중반의 남녀가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시죠?"
"예."
"여기 찾느라 한참 헤맸네요."
"포카라는 처음이시죠?"
"그런 셈이죠. 란드룩 가기 전에 잠깐 들렀던 것이 전부니까요."


북인도 알모라에서부터 한국인 여성 '달려라 하니'와 헤어져 네팔에 이르기까지 2개월 넘는 여행기간 중에 한국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두 번째였지만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안나푸르나 가는 길목인 톨카 숙소 앞에서 히말라야 트레킹 중인 한국인 여성을 만나 간단한 인사말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였다.

나는 네팔을 여행하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국인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네팔에 온 것이 외국인 여행자들이나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카라에서 한국인 식당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무작정 인연 닿는대로 떠돌고 있는 네팔에서 딱 한 군데의 목적지가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점찍어 온 박타푸르라는 도시였다.

하지만 포카라에서 박타푸르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네팔 현지인들을 만나 영어로 몇 마디 물어봤다. 하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했거나 알고자 하는 속 시원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메뉴판을 내미는 식당 여주인에게 다짜고자 물었다.

"박타푸르로 가려 하는데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합니까?"
"포카라에서는 박타푸르 가는 버스 편이 없습니다."

한국인 식당 주인은 박타푸르를 다녀와 본 적은 있는데 박타푸르에서 내가 찾아갈 최종 목적지인 '비욘드 네팔'을 알지 못했다. 비욘드 네팔(Beyond Nepal)은 한국인 여성과 변호사 출신의 네팔 남자가 운영하는 엔지오 단체다.

'비욘드 네팔'에서는 지속가능한 농업기술 보급 등을 통해 농민을 지원하고, 대안생리대 제작·보급('써질로 냅킨 프로젝트'), '럽시 캔디' 판매망 구축 등을 통해 네팔 농촌 여성과 청년들을 지원해오고 있는데 그동안 벽돌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와 도서관을 세우고, 친환경 화장실 설치와 태양광 조리기 보급 등을 통해 위생조건을 크게 향상시켰다고 한다.

나는 거기서 네팔 비자 만료 기간인 10여 일 꽉 채워 머물면서 10여 년 간의 지속 가능한 유기농을 추구해왔던 경험과 마을 도서관 설립 경험 등을 살려 그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더불어 그들의 일상생활을 취재하고 싶었다.

"박타푸르로 가려면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합니다."

한국인 식당 주인은 포카라에서 박타푸르로 직접 가는 버스 편이 없다며 자신들로부터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빵 몆 조각 과일 몇 개로 때우고 있던 터라 뱃속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를 내며 뭔가를 먹고자 재촉했다.

식당 주인에게 얼큰한 것을 먹고 싶다했더니 육개장을 권한다. 계산할 때 보니 이 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었다. 무려 500루피. 네팔에 와서 가장 비싼 음식을 먹었다. 거기다가 한국인 식당에서 알려준 값싼 게스트 하우스는 하루 묵는데 500루피에서 700루피. 안나푸르나가 올려다 보이는 톨카나 란드룩 숙소의 열 배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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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포카라와 산악지대 중간 지점인 룸베이 마을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네팔 청소년. 대처로 나서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표정이 외국인 거리에서 어리버리한 촌놈이었던 나를 닮았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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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로 다가오지 않는 포카라의 외국인 거리 ⓒ 송성영


좀 더 값싼 숙소를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여장을 풀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절룩거리며 여기 저기 싸돌아다닐 기운이 없었다. 포카라에서 하루만 신세지면 된다는 심정으로 여장을 풀고 고양이 세수로 지내온 꼬질꼬질한 몸과 옷을 빨았다. 땀에 절어 있는 몸에서는 손끝만 데도 때가 밀려나왔다. 옷에서는 검은 때 구정물이 줄줄 나온다.

두 벌이 전부인 옷을 개운하게 갈아입고 다시 한국인 식당을 찾아갔다. 네팔 아줌마 혼자서 식당 입구의 작은 텃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일단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표를 구하고 '비욘드 네팔'에 전화 통화를 하고 싶었다. 전화 한 통 때문에 네팔의 심카드를 갈아 끼울 수 없어 한국인 식당에서 돈을 내고 통화를 하기로 했는데 한국인 주인은 둘 다 출타 중이라고 한다.

다시 숙소에 들어와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늦은 저녁 무렵에 다시 한국인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 주인이 두 명의 한국인 관광객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별로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포카라에 널리고 널린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듯 소 닭 보듯 건성으로 인사를 받는다. 식당 주인이 자리를 내주며 앉으라 했지만 나는 그냥 멀뚱히 서서 계면쩍게 입을 열었다.

"박타푸르, 아니, 거시기... 카트만두 가는 버스표를 구하려 합니다."
"내일 아침에 떠나신다고 했죠? 너무 늦게 오셨네요."
"아까 왔다갔는데 두 분이 자리에 없어서..."
"어쩌죠? 오늘은 버스표를 구할 수 없네요."

이미 매표 업무가 끝난 상태라고 한다. 나는 적당히 할 말이 없어 별 뜻 없이 식당 주인에게 때 빼고 일주일째 입고 있던 옷을 빨았더니 아주 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색을 하며 포카라는 지금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어 숙소에서 빨래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럼 어디서 빨래를 해야 한단 말인가. 대꾸를 하려다가 부질없는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마뜩찮아 가볍게 한마디 건넸다.

"안나푸르나 쪽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던데... 물 부족 사태를 몰랐던 것이 다행이네요. 알았으면 엄청 미안했을 텐데..."
"모르는 게 죄죠."
"예!?."

한국인 식당 주인의 시비조의 말투에는 '이 딱한 인간아, 모르는 게 뭐가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그따위 변명을 늘어놓나. 지금 물 부족으로 네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이나 알어?'라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내가 당황스러워하자 옆에 앉아 있던 식당 여주인이 동거남의 도발적인 말투가 무안했는지 중간에 끼어들었다.

"물이 부족한지 모르셨으니까 그러셨겠죠."
"내가 빨래를 한 지 오래돼서요..."
"먹는 물도 부족한데 빨래를 하는 건 자제해야 합니다."

남자 주인이 더 이상 변명 따위를 듣고 싶지 않다는 투로 내 말꼬리를 싹둑 잘라 말했다. 언어가 통한다는 것이 이토록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먹는 물조차 부족한 사태에서 물을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억울했다. 나만큼 물을 적게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었다. 아마 나는 나를 몰아붙이고 있는 식당 주인보다 물을 수십배 정도 덜 쓸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래왔듯이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빨래와 샤워를 하던 나였다. 그는 내게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성인들의 말씀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술을 마시던 고급스러운 등산복 차림의 한국인 남자 둘이 나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그들의 표정은 돈도 없는 놈이 네팔까지 와서 구질구질하게 거지꼴로 싸돌아다니며 한국인 망신주지 말라는 표정이다.

웃음기 없는 이들과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 나왔다. 식당을 빠져 나오면서 '그만 가보겠다, 맛있게 드시고 가라'는 나의 인사말에 그들은 가거나 말거나, 곁눈질로 인사를 받았다. 거의 2개월 만에 만난 한국인들의 인상이 그랬다. 그들 앞에서 나는 '촌놈'이었다. 어쩌다 서울에 가게 되면 전철 방향을 거꾸로 타곤 했던 나는 포카라 외국인 거리에서도 어리버리한 '촌놈'이었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저들, 식당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의 모습이 내 자신과 겹쳤다. 까칠한 저들의 표정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대했을 또 다른 내 모습이기도 했다.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숙소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네팔 텔레비전 방송을 처음 본다. 인도와 채널이 크게 다르지 않은 위성 방송이다. 바퀴벌레 몇 마리가 침대 머리맡에서 얼쩡거린다. 네팔 시골에서 본 바퀴 벌레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인다. 잘 먹고 잘사는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처럼 이곳 바퀴벌레 또한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다. 이곳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어진다.

카트만두로 향하는 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기사에게 '이곳, 외국인 거리는 네팔이 아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포카라의 외국인 거리는 관광차원에서 먹고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지만 가난한 여행자들에게는 숨 막히는 곳이다.

그렇다고 가장 싼 숙소와 가장 싼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가난한 배낭 여행길은 고행길이 아니다. 가난한 네팔 서민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여행하다보면 네팔을 좀 더 깊이 만나게 된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

외국인 한 명 보이지 않는 낯선 소도시에서 지칠대로 지쳐있던 내게 물 한 잔을 권했던 네팔 여인, 버스 안에서 만나 자신의 고향집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던 네팔 경찰 아르준, 아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그 귀한 석청을 내주었던 란드룩 마을의 아버지, 그 지옥 같은 지프차 짐칸에서 생면부지의 나를 20대 청춘으로 되돌려 놓았던 유쾌 발랄한 네팔 예비 여선생들이 그랬듯이 돈과 상관없는 네팔의 진면목, 네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한 미소와 순박한 심성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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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외곽에 자리한 버스 정류장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팔고 있는 네팔 사람들. ⓒ 송성영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몇몇 네팔 사람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디 갑니까?"
"카트만두!"
"카트만두 가는 버스표 있어요."

한국인 식당에서 알려준 7시 30분발 버스 보다 일찍 출발하는 버스 편이 있었다. 아마 내가 잘못 알았거나 잘못 알려준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내가 집요하게 다가와 버스표를 내민다. 카트만두 가는 버스가 6시 50분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각 6시 45분. 출발 5분 전이다. 급한 마음에 매표소를 찾아갈 짬도 없이, 한국인 식당에서 제시했던 700루피짜리 버스표를 600루피에 구입했다. 담배 한 대 피울 짬도 없이 곧장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버스는 7시가 다 되어 출발했다.

버스가 포카라 중심지를 벗어나자 잘 꾸며놓은 영화 세트장처럼 들어서 있는 외국인 거리와는 전혀 다른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거리 곳곳에서 한뎃잠을 자는 몇몇 소년들이 보인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아이들일 것이다.

길거리에 누워 있는 아이들과 란드룩에서 포카라 가는 지프차 안에서 만난 교복 입은 산악지대 아이들과 겹친다. 평등한 교복을 입고 다들 함박웃음을 웃고 있었다. 언젠가 란드룩의 아이들 역시 불평등한 도시, 포카라로 나올 것이다.

더러는 꿈과 희망을 찾아 좀 더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을 하거나 또 더러는 포카라 빈민촌에 방 한 칸을 얻어 값싼 임금노동자로 생활하거나 체력이 좋은 아이들은 외국인들을 뒤치다꺼리하는 포터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집안에서 점찍어 놓은 남자를 만나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시집을 갈 것이었다.

한뎃잠을 자고 있는 소년들 주변에는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네팔 청년들이 건들거리고 있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들처럼 건들거리는 눈빛에서 자본의 피폐함이 느껴진다. 차창 너머로 과일들이 널려있는 시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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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중심지에서 벗어나면 서민들의 생생한 삶을 만날 수 있다. ⓒ 송성영


시장을 지나쳐 버스 정류장 앞에 한 사내가 서 있다. 그 사내 옆에는 짐 꾸러미가 있다. 싱글싱글 미소 짓고 있는 사내는 어딘가 모르게 들떠 보인다. 사내의 짐 꾸러미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나는 온갖 상상에 빠져든다.

히말라야 트레킹족들을 위해 짐을 나르던 사내는 어제 늦은 오후 포카라에 도착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두툼한 수당을 받아 어제 밤 가족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사 놓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잠을 설쳤을 것이었다. 사내의 짐 꾸러미에는 부모와 아내를 위한 과일 몇 개와 양고기 몇 점이, 아이들을 위한 사탕과 과자가 들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짐 꾸러미 속 어딘가에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옷 한 벌이 몰래 숨겨져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 상상 끝에 한때 객지 생활을 했던 우리 아버지가 떠올랐다. 사업에 실패하고 타지를 떠돌며 일하러 나갔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도 짐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그 짐 꾸러미 속에는 가족들을 위한 오만가지 선물이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살이로 접어들 무렵, 농사로는 먹고 살 수 없어 하루 사나흘 집을 비우고 밥벌이 나서는 일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아이들을 위해 작고 소박한 선물을 준비하곤 했었다. 때로는 잔치 집에서 떡이나 고기 몇 점 얻어 오기도 했다.

나는 행복에 겨운 발걸음으로 그 작은 선물이나 먹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내게는 두 아들이 전부였지만, 아버지에는 7남매 자식들이 있었다. 힘들고 버거운 7남매였지만 아버지의 짐 꾸러미는 그만큼 더 행복했을 것이었다. 정류장에 서 있던 네팔 사내의 짐 꾸러미에도 그런 행복이 담겨 있을 것이었다.

그 행복감은 가난한 삶을 살아본 자들만이 알 것이다. 소박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가는 그 길이 얼마나 행복한 길인가를. 행복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가난한 길을 걸어가 본 사람들만이 알 것이었다.

한국인들 중에는 더러 돈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귀족 트레킹족'들이 있다고 한다. 포터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이들은 거의 에베레스트 원정대 수준이라고 한다. 이들을 위해 음식 파트, 텐트 파트, 배낭 파트, 기구 파트 등으로 일꾼들이 분야별로 나눠져 있을 정도라고 한다.

지팡이 하나 달랑 들고 산을 오르는 이들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일꾼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천막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김치와 고추장, 된장은 물론이고 돼지고기, 소고기, 한국식으로 요리한 음식에 디저트로 커피와 과일까지 제공받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정류장에 서 있던 짐 꾸러미의 네팔 사내는 귀족 트레킹족들의 수발을 들었던 짐꾼이었을지도 모른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귀족 트레킹족들은 저 네팔 사내의 소박한 짐 꾸러미 속의 행복을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욕망이 작을수록 행복은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네팔 #포카라 #한국인 식당 #바퀴벌레 #선물 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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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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