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활동>은 '요리'로 대변되는 일상, 그리고 일상에만 머무르지 않는 사상의 실천으로서의 '활동'을 연결하는 독특한 에세이다.
포도밭
개인적으로도 3년 6개월 협동조합 일로 이직을 해오며 많은 일들이 있었고, 현실은 마냥 아름답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그렇기에 작은 선의에 덧붙여 일희일비하지 않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요리활동>(박영길, 포도밭, 2016)은 이 꾸준함이 일상에서 나온다고 얘기한다. 땡땡책협동조합 활동을 하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저자는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전업 활동가이다. 낮에는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대표로서, '지역 꼬뮌학교 동동'의 진행자 등으로 바쁘게 일을 하고, 밤에는 사회적기업 '삶과 환경'의 수거원으로 일한다.
이밖에도 땡땡책협동조합 이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북평등지부 삶과환경 분회 사무장 등 여러 활동들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개인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도대체 잠은 자고 생활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한 활동을 꾸준히 하는 비결이 '요리'란다. 이 요리는 일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그만의 비결이다.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면서도 작은 일상들을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어울리고 연대하며 새로운 것들을 꿈꾸는 생성의 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11페이지)이 요리를 통해 일상을 재구성하는 이유이다.
또한 요리라는 일상으로부터 그만의 활동에 대한 철학이 나온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살펴보자. 50인분 가량의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준비하면서 양념을 망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휩싸인다. 잔뜩 긴장을 한 채 요리를 하면 하는 사람도 피곤하고 즐거움도 사라지는 대목이 나온다.
저자는 얘기한다. "내 감을 믿는 것이다. 그래야 요리가 피곤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내게 힘을 준다. 요리의 첫발은 함께 먹을 누군가를 책임질 만큼의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29p)"고. 사실 함께 한다는 것은 늘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에 실수투성이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내 감을 믿으며, 책임을 지며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더 나가보는 것이 공동체를 만드는 비결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자세히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저 요리와 관련한 경험과 추억을 나누고 자기만의 생각을 툭툭 던져놓는데 거기엔 모두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노하우, 오랜 활동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그만의 비결이 담겨있다. 그래서 요리를 통한 활동이고, 요리와 활동의 결합이다. 요리라는 일상적이고 사적인 영역이 활동이라는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영역과 결부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마저도 인위적인 구분이다. 일상이 곧 활동이고, 활동이 곧 일상이기 때문이다. 유린기를 소개하며 그는 다시 얘기한다.
"9가지 이상의 재료를 섞어야 본연의 맛이 나는 유린기 소스처럼, 삶 본연의 맛도 다양한 경험과 공부와 관계 속에서 우러나는 게 아닐까?"(174p)협동조합은 사회적경제의 한 방식이다. 내가 이해한 사회적경제란 요리활동처럼 우리의 일상을 바탕으로한 사회의 변화이다. 각자도생으로 뿔뿔히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여 사회를 이루고 같이 경제활동을 하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의 일상이 변해야 한다. 그러한 일상의 변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말과 글은 시간이 지나면 공허해지고 저자의 말대로 "아집과 때로는 타협과 배반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얘기를 다른 책에서도 보게 된다. <심야인권식당>(류은숙, 따비, 2015)에서 저자는 인권연구소 '창'을 운영하면서 회의와 공부모임 등이 열릴 때마다 밥 때에는 밥을, 술 때에는 술을 대령하며 술방의 주모 역할을 자처한다. "술방의 주모를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요한' 일에 대한 나의 판단 때문이다. 나는 일상성에 중요한 것이 묻혀 있고 일상에서의 움직임에 중요한 것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먹고 마시고 치우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일들이 내겐 멋진 글을 쓰고 발언을 하고 특별한 자리에 나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15p)." 최근에 본 영화 <트럼보>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