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개 돼지', '무전유죄 유전무죄'

두 발언이 시대의 언어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등록 2016.07.31 12:41수정 2016.07.3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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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 있다. 특정 순간에 크게 유행하는 발언은 간간히 나오기도 하지만 특정 시기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말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순간 임팩트도 강하면서도 장기간 유행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상징하는 시대의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사회구조적인 배경 속에서 장기간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신전심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배경 요인이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표현 방식이다. 특정 대상을 압축적이면서도 선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때 임팩트가 강해진다. 그래서 위 두 가지가 잘 합쳐질 경우 특정 말의 임팩트는 순간을 넘어 장기 지속되어 역대급 발언 즉 시대의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최근 크게 이슈가 된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은 역대급 발언으로서 지금 시기를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층고착화가 심화되어 '금수저, 흙수저' 담론이 나오는 요즘 시대의 문제점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한 역대급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에 필적할만한 역대급 발언은 뭐가 있었을까? 필자는 '민중은 개 돼지' 발언에 필적할만한 것은 28년전 탈주 인질범 지강헌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고 생각한다. 두 발언은 28년의 시차를 두고 나왔지만, 한국 사회의 시기별 특징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이 시대의 언어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1988년 탈주 인질범 지강헌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했다. 이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훼손당하고 있는 사법정의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발언은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황금만능주의 세태 전반을 비판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1980년대는 3저 호황에 의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가치관의 혼란, 공동체의 붕괴 등의 사회문제가 심화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불균등 근대화 전략에 의해 발생한 각종 소외 문제도 누적되고 있었다. 민주주의 없는 경제발전의 한계가 심화되던 시기가 바로 1980년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그 시대 문제를 표현한 여러 말이 있었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 만큼 임팩트가 강한 것은 없었다. 순간 임팩트만 본다면 비슷한 것도 있지만 장기지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단연 압도적이다.


이 말이 장기지속된 이유는 불완전한 민주화와도 관련이 있다. 1987년 민주화를 통해 절차적 차원에서 민주화의 이행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지체되거나 더디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 유행할 수 있는 기본 토대가 유지되었다. 이와 같은 요인으로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시대의 언어가 된 것이다.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이 시대의 언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면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이 지금처럼 큰 파장을 몰고 온 이유는 무엇이고 이것이 역대급 발언으로서 시대의 언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계급 고착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양극화와 계급 고착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양극화도 문제지만 계층 이동이 어렵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사회의 역동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시대의 우울감을 반영한 신조어인 금수저, 흑수저 등 각종 수저론이 유행하게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각종 수저론이 유행하는 것은 사회적 단절과 분절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사회적 자본은 약화되어 각종 위기 대처 능력이 현저히 저하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회 지도층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헤게모니적 지배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당수 주류 세력들은 계급 지위에 따른 우월감과 차별의식을 내면화한 채 고압적이면서도 권위적인 방식으로 억누르려고 한다.

이는 지배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거친 지배 방식이다. 이것은 현재 상당수 주류 엘리트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은 이와 같은 맥락과 관련이 있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사회통합

이는 부드럽고 세련된 지배와 거리가 멀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개념화한 구별짓기는 계급에 따른 차이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다양한 전략을 총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개념은 피지배계층이 계급적 차이에 따른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동원되기도 한다. 이는 세련된 지배 방식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럴까? 우리는 부드럽고 세련된 것보다 거친 지배 방식이 주로 동원된다. 지속적으로 사회 내 적대 세력을 만들어내고 이들을 소탕해야만 안정과 발전이 온다는 명분으로 요란하면서도 화려한 각종 퍼포먼스만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지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거친 지배 방식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은 개 돼지' 발언 그리고 이것의 파장을 볼 때, 우리 사회는 매우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우리 국민은 뭉쳤고 그 힘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회통합의 위기가 이토록 심각했던 적이 과거에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을 우려하고 있었고 이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에 아파하고 있었다.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은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매우 거칠게 자극한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 갈 것 같다. 난마와 같이 얽힌 여러 과제를 해결하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중은 개 돼지' 발언이 시대의 언어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하는 이유다.
#민중은 개 돼지 #유전무죄 무전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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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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