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먹는 하마가 진짜로 있다면?

[한국소설이 건네는 이야기 27] 손솔지 <먼지 먹는 개>

등록 2016.08.03 16:41수정 2016.08.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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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NS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 사진을 봤습니다. 사진에서 코끼리는 안면이 베인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사진엔 코끼리 옆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그 옆모습에는 코끼리 코도, 눈도, 입도, 상아도 없었습니다. 상아 때문이라고 했어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상아를 얻으려 밀렵꾼들이 무자비하게 코끼리를 죽인 거라고요.

또 다른 사진에는 죽은 코끼리를 뒤에 두고 상아를 번쩍 들어 올린 채 환하게 웃는 젊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남자의 웃음 이면에 어떤 삶이 있고, 그 삶이 그를 어떤 식으로 압박하고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는 어쩌면 먹고살기 위해 무감각을 익혀야 했는지도 모르지요. 무감각의 힘으로 겨우 잔인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간에, 눈 앞 생명체의 고통엔 아랑곳하지 않고 웃음 짓는 한 인간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인간 외의 모든 것들은 희생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누군가의 태도는 우리를 부끄럽게도 하지요. 그래서 때론 부끄러움이 너무 커져 인간인 우리가 우리를 혐오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라진 개, 어디로 갔을까 


a  책표지

책표지 ⓒ 새움

소설가 손솔지의 <먼지 먹는 개>에 나오는, 대중이라 이름 붙은 인간들에게, 우리는 부끄러움과 혐오를 느끼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에서 인간들은 '고작' 편의를 위해 동물을 죽입니다. 인간을 위해서라는 명분. 이 명분에 취해 동물을 연민 없이 학대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를 고민하게 하지요. 인간을 위한다는 명분엔 과연 한계란 없는 것일까 하고요. 

소설은 지후의 애완견 후가 사라지면서 시작합니다. 지후와 이름을 나눠 가졌던 후는 덩치는 크지만 순한 눈을 지녔던 사랑스러운 개였습니다. 지후는 마치 동생을 잃은 것처럼 큰 슬픔에 빠져 정신없이 후를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지후는 후를 쉽게 찾지 못합니다. 후는 어디로 간 걸까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책임지는 이야기 줄거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후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됐나.

소설의 제목이 <먼지 먹는 개>인 이유도 여기에 있겠지요. 그런데 이 책 제목이 참 독특하지 않나요. 책 제목을 처음 딱 들으면 하마를 내세운 한 습기 제거 제품이 떠오를 텐데요. 어쩌면 저자도 그 제품에서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제품은 우리의 보송보송한 일상을 위해 기꺼이 습기를 먹어주는 귀여운 분홍빛 하마를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지요. 만약 소설가가 그 제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맞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했을 것 같습니다.

그 하마가 '진짜' 하마라면 어떨까 하는. '진짜' 하마가 여름 내내 우리 집에 앉아 쉬지도 않고 열심히 습기를 먹어준다면 어떨까 하는. 그렇게 습기를 먹고 또 먹다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준다면요. 그리고 그 효과가 다른 어느 제품보다 뛰어나다면요. 우리는 이 '진짜' 하마를 사서 쓸까요?

우리는 우리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동물을 쉽게 이용하지요. 일도 시키고, 먹기도 하고, 가죽도 쓰고, 털도 씁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에서 우리는 그다지 별 감정을 느끼진 않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히 누려왔던 일상이라서 일 거예요. 익숙한 것들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곤 하지요.

인간은 동물을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소설은 우리를 새로운 상황으로 던져 놓고,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살아 있는 동물을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는 위해, 동물을 제품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까. 상상 속 '진짜' 하마처럼. 불편한 마음 하나 없이.

소설가는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상상력을 가동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더스트'라는 화학 약물을 만들어 내지요. 더스트는 동물의 DNA와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약물입니다. 이 약물로 노벨화학상을 거머쥔 인간은 더스트를 물고기에 주입합니다. 그러자 물고기는 청소에 아주 유용한 제품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더스트 빈'이라는 이름과 함께.

더스트를 주입한 물고기 더스트 빈은 그 순간부터 제가 속한 액체와 공간에 서식하는 온갖 병원균을 빨아들이고 흡착한다. 마치 끝없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좀비처럼 '흡착'이라는 명령만이 그들의 DNA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런 뒤에 병원균의 구성과 물고기의 종에 따라서 다르지만 약 1시간에서 5시간 사이에 더스트 빈은 물에 녹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 본문 중에서

'더스트 빈'의 성공 여부는 사실 의문이었습니다. 인간의 '도덕적 양심'이 동물을 제품으로 인정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청소에 그만이라는 '더스트 빈'은 출시되자마자 대형마트의 인기 상품으로 떠오릅니다.


환경단체와 동물보호연대의 시위로도 대중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더스트 빈'을 구입한 사람들은 변기 속으로, 개수대 속으로 물고기들을 던져 넣습니다. 비누처럼 물에 녹아 사라지는(그러니까 죽어가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그저 청결한 환경만을 기대하는 거지요. 

이로써 인간의 "도덕성 따위는 호기심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세상은 이를 증명한 인간과 이들을 혐오하는 인간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소설은 여기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점점 더 강도 높은 질문을 내놓습니다.

더스트를 주입할 다음 동물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물고기가 괜찮았다면, 쥐는 어떨까? 쥐 다음엔 고양이, 개는 어떨까? 인간이 더럽혀 놓은 환경을 깨끗이 청소할 수만 있다면, 동물을 좀 이용해도 되는 것 아닐까? 인간을 위해서라면, 동물은 좀 죽어도 괜찮은 것 아닐까?

결국, 더스트를 주입한 쥐가 상품화되고, 언젠가부터 고양이, 개 등의 동물이 눈에 띄게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짐작하게 되지요. 후가 사라진 이유도 이와 관련돼 있을 거라는 걸요.

저자 손솔지의 말처럼, 그 어떤 소설도 독자에게 특정 행동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이 소설 <먼지 먹는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질문하게 만들 뿐이죠.


이런 식으로요. 물고기는 되는데, 쥐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고기도 안 된다면, 인간을 위해 동물은 아예 이용하지 말자는 것인가. 이용은 해야 한다면, 어디까지 이용해야 한다는 것인가. 동물원 동물들은 어떤가. 공장식 가축 사육은 어떤가. 가죽 가방은 어떤가. 상아는 어떤가. 이용당하는 동물 앞에서 나는 어디까지 웃을 수 있는가.
덧붙이는 글 <먼지 먹는 개>(손솔지/새움/2016년 06월 24일/1만2천8백원)
개인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먼지 먹는 개

손솔지 지음,
새움, 2016


#손솔지 #먼지 먹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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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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