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인생살이에 대한 조언을 해 준 최영석 부선장(중앙)과 루슬란(왼쪽) 카슴(맨 오른쪽)
오문수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루슬란이 "영어할 수 있어요?"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입국한 지 두 달 밖에 안 된 그에게 "영어할 수 있다"고 하자 말문이 터졌다.
루슬란은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적에 상트테르부르크로 이민 갔다. 페트로콜리지 관광학과 3학년을 휴학하고 1년간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온 그는 대학생답게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 여행업을 하다가 여행사를 차릴 계획인 그가 입을 열었다.
"한국인들은 러시아 사람들이 무례하고, 알콜 중독자가 많고 부패가 만연한 나라로 알고 있지만 소수의 사람만 그렇습니다. 한국인들은 미국과 러시아 중 어느 나라를 더 좋아합니까?"질문에 웃음이 나왔지만 한국인들이 러시아보다 미국을 선호하는 이유를 정중하게 설명해줬다. 한국전쟁 당시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을 지지했고 미국은 남한을 지지했다는 걸.
궁금한 게 많은 루슬란이 "한국인들이 장수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 한국인들은 채식위주의 식생활과 의료환경이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80세까지 코리아나 운영하겠다"는 정채호 선장정채호 선장이 코리아나와 맺은 인연을 설명했다. 그가 요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전남대 여수캠퍼스에서 4년간 무역실무와 회계사 강의를 하던 그가 요트탈줄 알고 일본말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요트선수를 인솔하고 일본 사가현 가라쯔시에 가게 됐다.
일본에서 돌아와 요트협회를 창단(1983년)하고 협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옵티미스트급 5명 중 3명이 그가 길러낸 선수들이다. 그해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세계 옵티미스트급 요트선수권 대회 인솔단장으로 참가했었던 정 선장.
그는 전라남도 요트선수를 이끌고 전국체전에서 16년간 우승을 하기도 했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를 여러 명 배출시켰다. 1994년도에 한국 해양대학교 요트부 동아리 담당교수로부터 코리아나호를 인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구매 상담 중에 민선 초대 여천시장에 당선됐고 당선 이틀 후에 코리아나호를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