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은임 아나운서
MBC 웹진 언어운사
8월 4일, 오늘은 MBC FM의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영화음악'(아래 정영음)으로 유명한 정은임 아나운서의 (12주기) 기일이다. 그는 나와 동시대에 교감했던 인물은 아니다. 그가 90년대에 진행한 정영음을 듣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2003년에 정영음이 부활했지만, 새벽 3시라는 시간은 학생이 듣기에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런 내가 뒤늦게 그의 목소리를 찾아 듣고, 마음속에 새기게 된 것은 순전히 '이주연의 영화음악'(아래 이영음, FM4U 오전 2시) 덕분이었다. 이영음의 팬으로서 자연스럽게 '전설'이라고 불리는 정영음을 접하게 된 것이다.
2003년 부활한 정영음은, 1년도 안 돼 폐지됐다. 그리고 4개월 후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2년 뒤 이주연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살아난 '영화음악'은 방송이 폐지되고, 디제이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부재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뒤늦게 찾아들은 정영음은 단순히 영화를 주제로 한 라디오프로그램이 아니었다. 90년대 씨네필들의 '해방구'가 될 자격이 있었다. 정영음에서는 디제이, 게스트, 청취자 모두가 영화에 대해서는 시시하게, 가볍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와중에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아주 길게, 동시에 단호하게 이야기하면서 그 유명한 '정성일 키드'를 만들어 갔다. 요즘에 이렇게 '멘트 많은'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또한 한진중공업 김주익씨의 이야기를 하며 화제가 된 오프닝처럼, '영화음악'은 새벽시간대(90년대는 오전 1시, 2000년대는 오전 3시) 방송이라서 그런지 지상파치고는 거침없는 발언들이 많았다. 일일이 기억하진 못하지만 정영음과 뒤를 이은 이영음 역시 시대의 부조리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득권층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MBC 노조 여성지부장이 됐던 것과, 이주연 아나운서가 만삭의 몸에도 파업에 참가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단순한 영화 프로그램이라기엔, 영화음악은 뭔가 달랐다. 일종의 '기조'가 있다고 해야 하나. 이렇듯 정영음과 이영음은 내게 라디오가 시대정신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알려줬다.
문득 정은임 아나운서가 지금의 MBC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싶었다. 한때 최고의 방송국으로 불리던 MBC는 이명박 정부 이후 '어용화' 되면서, 유능한 기자와 PD들이 잘려나갔다. 과거 진실 보도를 위해 싸웠던 교양국은 없어졌고, 라디오마저 '시사풍자'를 했다는 이유로 10년도 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디제이를 하루아침에 잘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방송사가 퇴보하고 있는 모습, 그에겐 참기 힘든 모습일 거다. 그나마 '할 말도 못 하게 하는' MBC에서 자신의 후배인 이주연 아나운서가 '할 말은 해서' 고맙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1993년 6월 20일 정영음 오프닝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당시는 금강산 댐의 위험을 과장해서 평화의 댐을 만들자고 주장했던 노태우 정부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그가 오프닝 말미에 "세상이 야비하다고 느껴진다" 라고 말하는 부분은 듣는 사람까지 서늘하게 만든다.
"여름, 햇볕이 뜨거울 때는 말 한마디 없이 그늘로 숨어있다가 어스름 해질때야 여름 땡볕을 유혹하면서 슬금슬금 나오기 마련입니다.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완전히 물에 잠긴 아파트와 반쯤 잠긴 63빌딩을 모형으로 봤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큰일났다고 거품을 물었습니다. 그때 아니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뭔지도 모르고 성금을 모았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들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입을 열고 있네요. 매스컴도 언제 거품을 물었냐는 듯이 이제 반대쪽에서 당시의 세도가들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금강산댐이 정말 위험한지 아닌지 고매하신 학자들께서 다시 연구하시겠지만요 세상이 참 야비하다는 느낌만은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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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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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아나운서, 지금의 MBC 본다면 뭐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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